"무대는 나를 전율케했다"

[ 아름다운세상 ] 잃어버린 목소리 회복, 기적의 노래 부르는 배재철집사

김혜미 기자 khm@pckworld.com
2010년 07월 06일(화) 15:45
'그'를 만나는데까지는 기다림이 필요했다.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전화기의 전원이 꺼져있다"는 음성안내만이 반복될 뿐. 공연차 일본을 자주 방문한다는 이야기가 떠올라 메일로 인터뷰 요청을 한 후 답신을 기다렸다.

"어제 돌아왔습니다." 일본 공연을 마치고 귀국한 그를 지난 6월 28일 장천아트홀에서 만났다. 그는 1년에 두차례씩 일본 전국 순회공연을 갖는다고 했다. 아직 객관적인 성악 수준이 한국 보다 앞서있다는 일본에서 그의 노래가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증이 더해졌다.

   
▲그는 다시 무대를 말하기 시작했다. 무대를 말하는 그의 표정에는 생동감이 넘쳤다. 하지만 그는 "기회를 주신다면 언제라도 오페라 무대에 설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해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다.

기적의 오페라 가수 배재철, 그의 노래는 교회에서부터 시작됐다. 소년 재철은 교회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가수'였고 그에게 교회는 연습실이자 놀이터, 활동무대였다. "항상 최고를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내 분야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잘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예술이라는 것은 끝이 없으니까요."

노래를 좋아하던 소년이 자라며 그의 무대도 함께 성장해갔다. 스물 다섯이 되던 해, 그는 헝가리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토스카'의 '카바로도시' 역으로 오페라 무대에 데뷔했다(1998). 피나는 노력의 결과였다. 어느덧 유럽 무대의 기대주로 떠오른 그에게는 '아시아에서 1백년만에 한번 나올만한 목소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무대에 서는 사람들은 정말 박수를 먹고 삽니다. 그 맛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죠. 공연을 마친 날에는 밤에 잠들기가 어려울 정도에요." '무대'를 회상하는 그의 표정에 생동감이 느껴졌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는 마치 잠시 다른 시공간에 머물고 있는 사람처럼 자신에게 되뇌이고 있었다. "맞아 정말 그 맛은…."

서른 여섯. 성악가로서 한창인 나이다. "바로 그때였어요." 이제 원하는대로 소리를 만질 수 있겠구나 싶었던 때, '득음'의 경지에 다다른 그의 목소리에 이상이 찾아왔다. "감기가 걸린 것도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었어요. 이상하게 목소리가 가라앉은 채로 높은 테너 음을 제대로 낼 수가 없었어요."

   
▲ 지난 2001년 핀란드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리골레토'의 두카역으로 열연 중인 모습. 테너 배재철은 이 무대를 발판으로 유럽 각국의 극장과 협회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독일 현지 병원을 찾은 결과, 갑상선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수술이 불가피했다. 3시간 예정의 수술은 8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난 괜찮아." 마취에서 깨어나는 순간까지도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이미 힘이 없었다. "암세포가 생각보다 많이 전이돼있었습니다. 암세포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당신의 성대 신경의 일부가 3cm 정도 떨어져 나갔습니다. 미스터 배, 앞으로 노래를 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주치의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수술의 결과를 알렸다.

"그래, 잠시 쉬자." 의외의 반응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노래가 전부였고, 수술 당시 장래가 촉망되는 성악가이자 한 가정의 가장인 그였다. '목소리'는 다른 무언가로 대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가장 소중한 것이었다. 그는 "목소리의 빛깔이 안좋아지는 것은 노래하는 사람에게 있어 치명적인 일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순간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사람은 자기 열심으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끝맺는 것은 하나님이시잖아요. 평소엔 잘 모르지만 한계에 부딪히게 되면 인정하게 되죠. 성악가로서의 무대는 넓어졌지만 신앙인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멀어졌던 때였어요. 비록 목소리는 잃었지만 '내가 한 것은 없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난 것만 같은 상황에서 새로운 삶은 시작됐다. '주인'이 아닌 '종'으로의 삶의 시작. 2년 후 일본에서 성대기능 회복수술을 받던 날, 그는 수술대 위에서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불렀다. "다시 노래할 수 있게 됐을 때 제일 먼저 부르겠다고 하나님과 약속했었거든요." 그는 이제 '소리'의 핸디캡을 최대한 '음악'에 쏟아붓는다고 했다. 고운 빛깔의 진주처럼 시련을 통해 그의 음악은 한층 원숙해지고 있는 듯 했다. "제가 찬양할때마다 하나님은 목소리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 "한때는 제자들에게 소리를 말로 설명하며 가르쳐야 했어요. 그나마 지금은 비슷하게라도 소리를 내줄 수 있죠." 송파동의 한 연습실에서 개인 레슨 중인 배재철집사.
인터뷰 전날인 지난 6월 27일 국립극장에서 열린 '명인명무전'에는 '1인 창무극'의 대가인 공옥진여사가 5년만에 무대에 섰다. 뇌졸증, 교통사고로 무대를 떠났던 일흔 아홉의 거장은 이날 떨리는 몸짓으로 휘청거리며 춤을 췄다. "무대는 나를 전율케 했다"고 고백하는 오페라가수 배재철씨의 눈에 이 공연은 어떤 모습으로 비쳐졌을까.

"TV에서 공옥진선생님이 다시 무대에 서신 모습을 보는데 울컥했다"고 말하는 그의 눈가가 어느새 촉촉해졌다. 그리고 그는 "무대에 설때 가장 '나'스러워진다"며 다시 '무대'를 말하기 시작했다. 혹시 오페라무대에 다시 서고 싶지 않냐고 묻자, 조심스레 묻는 질문자의 배려가 무색해질만큼 그는 담담하게 답했다.

"기회를 주신다면 언제라도 오페라무대에 다시 서고 싶어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목소리를 회복시켜주셔서 노래할 수 있게 된 것만도 감사한걸요. 욕심을 부리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예전보다 더 좋은 목소리로 오페라무대에 설 수 있다면 제 삶으로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겠죠."

노래를 위한 그의 목소리는 현재 50% 정도 회복된 상태다. 60, 70, 100%…. 훗날 더 멋진 '카바로도시'로 무대에 선 그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기적의 오페라 카수, 배재철
   지난해 출간된 '기적을 만드는 오페라 카수(비전과리더십)'에서 배재철집사(높은뜻광성교회)는 "절망에 빠진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하고 한일 관계에 아름다운 가교가 되기를 바란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그의 이야기는 'NHK 하이비전 특집', 'KBS 스페셜' 등 한일 양국의 방송을 통해 알려져 많은 이들에 감동을 전했다. 일본 공연 마다 그는 수술대 위에서 불렀던 '주 하나님 지으신 세계'를 잊지 않고 부른다. 그리고 "내가 노래할 수 있는 것은 온전히 하나님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그 많고 많은 신들 중에 창조주 하나님만이 참 '신'임을 전하기 위해서"다.
 베르디 국립 음악원 수석 졸업, G.B 비오띠 베르첼리 국제 콩쿨 2위(이태리), 플라시도 도밍고 오페랄리아 국제 콩쿨 최고 테너상 수상(독일 함부르크). 수술 전 그의 화려한 이력이다.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그는 그러나 "아프기 전에는 항상 바빴다. 지금은 연주의 형태도, 라이프 스타일도 완전히 달라졌지만 경쟁에서 자유로워지는 등 오히려 편한 점도 있다"고 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하죠." 현재 그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노래하고 한양대 출강, 개인 레슨 등을 통해 제자들을 가르치는 한편 간증집회 등을 통해 자신의 삶에 일어난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고 있다.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