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냐 생명이냐?

[ 생명의양식(설교)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0년 07월 01일(목) 10:18

 ▶ 본문 :  창세기 2장 : 8~17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나는 지혜나무 목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인들은 참 똑똑합니다. 갈수록 똑똑해 집니다. 내가 똑똑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먹지 말라는 지혜나무 열매를 날마다 먹고 있고 교인들에게도 열심히 먹입니다. "지혜로워야 합니다. 세상에서 속지 않고 승리하려면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라며 지혜나무 열매를 먹입니다. 그래서 교인들도 똑똑해 집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똑똑하다 보니 그냥 '아멘'하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하나 따지고 분석하고 비판하고 판단하고 옳다 그르다 합니다. 내가 지혜롭게 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지혜나무 열매를 따 먹고 나니 확실히 지혜로워 집니다. 얼마나 아담이 지혜롭습니까? 그는 논리적으로 하나님을 공격합니다. 참으로 똑똑합니다. 그는 잘못을 따지고 하와를 그리고 하나님까지 정죄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왜 금하셨는가 알게 됩니다. 똑똑하게 되면 분석하고 비판하고 판단합니다. 자신을 절대화하며 나와 다르면 틀렸다고 정죄합니다. 지혜 열매를 먹으면 선악을 아는데서 끝남이 아니라 나와 다른 이를 악하다고 정죄합니다. 자신이 판단의 보좌에 앉습니다. 이것이 교만입니다. 지혜나무는 필연적으로 교만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금하신 것입니다.

나는 동료 목사님들과 이야기하면서 언제나 다른 분들의 잘못을 들추었습니다. 역사의식이 없다, 언행이 일치 안한다, 신학이 없다, 기타 등등. 그러면서 나는 의롭고 역사의식이 있고 기타 등등이 있는 것처럼 했습니다. 나는 판단의 보좌에 나 자신을 앉혀 놓았습니다. 그리고 나를 본 성도들도 어느틈에 그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성도들이 판단의 보좌에 앉아서 목사를 판단하고 우리 목사 몇 점이라고 점수를 매기곤 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그렇게 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이것을 깨닫게 하실 때 참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나는 회개하였습니다. 생명나무 열매를 먹이지 아니하고 지혜나무 열매만 먹이고 있었음을 회개 했습니다. 생명나무가 주는 기쁨 감사 찬송 행복 평안 사랑 용서 대신에 판단 비판 분열 정죄 자랑 다툼 시기만 가득하게 된 것을 회개했습니다. 지혜나무의 독이 모여 쓴뿌리가 되어 나를 괴롭게 하고 남을 괴롭힙니다.

이제 깨닫습니다. 예수님은 생명나무이시며, 예수님만이 해결책이심을 알았습니다. 하늘 아버지는 에덴동산에 두시고 화염검으로 지키신 생명나무를 아들에게 주시어 먹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그의 몸을 먹고 피를 마심은 생명나무 열매를 먹는 것입니다. 참다운 믿음은 생명나무를 붙드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생명나무이신 주님은 판단 정죄 대신에 긍휼 용서 자비 사랑으로 대하십니다.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따지시거나 정죄하시거나 분석하지 않으시고 그냥 사랑하시고 용서하시고 안아 주십니다. 병자들, 죄인들, 세리들, 버림받은 이들, 이방인들을 다 사랑하시고 가슴에 안으십니다. 따지고 분석하고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못난대로 살아가도 하나님은 '괜찮다 괜찮다'고 하십니다. '아, 나도 성도들에게 날카롭게 무책임을 깨우치기 보다는 그냥 안아줄 걸, 못 믿는다고 나무라기 보다는 자비로 용서로 긍휼로 대할 걸' 합니다.

이제는 결코 남을 가르치려고 안합니다. 이제는 말을, 소리를 그냥 듣습니다. 들으며 그냥 아파합니다. 아파하는 형제에게 그러겠다고 주님도 아프실 것이라고 말하며 함께 울어줍니다. 사랑하고 용서하고 포용하고 감싸주고 이해하고 함께 기뻐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매순간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느끼는 것입니다. 올바른 섬김은 주님의 마음으로, 아버지의 마음으로 함께 울어주고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똑 부러지게 일하지 않아도 그냥 함께 울어 주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머리의 신앙에서 가슴의 신앙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명나무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슴을 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주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왜 마음을 다 하라고 하십니까? 지혜나무는 우리의 머리에 심어지고 생명나무는 우리의 가슴에 심어집니다. 성숙한 믿음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엠마오 제자들은 주께서 말씀하실 때 "네 가슴이 뜨겁지 아니 하더냐"고 말합니다. 주께서는 우리의 머리에 대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가슴에 대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니 얻을 것이 없고 황폐하고 인생이 메마릅니다. 가슴으로 받아 '아멘'하면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가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성경을 가슴으로 읽습니다. 예수님의 마음, 아버지의 마음을 읽습니다. 머리가 아니라 뜨거운 가슴으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머리로 행하지 않으십니다. 팔복은 연구실에서 준비하신 설교가 아닙니다. 그들을 보시고 안타가워하시며 가슴에 대고 하신 말씀입니다. 귀먹고 어눌한 자를 만지시며 아픔과 외로움을 느껴보시고, 만찬에서 제자들의 발을 어루만져 주시며 그들이 걸어야 할 길을 가슴으로 느껴 보십니다. 머리만 굴리며 아까워하는 제자들 보다는 마음을 깨서 가슴의 사랑을 쏟아 붓는 여인을 사랑하신 주님이십니다.  

생명나무이신 예수는 우리에게 사랑과 용서를, 이해하고 포용하고 섬김을 보여주십니다. 그럼으로 평화와 기쁨을, 감사와 행복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생명나무 신앙입니다.

이동준목사 / 은광교회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