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1~26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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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6월 16일(수) 14:26

월-사울의 초심
본문: 삼상 8:19-9:14
찬송가: 312장(구 341장)

초심이란, 좋은 뜻으로 새롭게 출발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초심은 사람으로 하여금 좋은 성적을 거두고 좋은 마음을 갖도록 한다.
 
성경은 사울을 준수한 소년, 즉 젊고 보기 좋은 청년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순수한 사람이었으며 전례나 규칙, 명령을 그대로 좇아서 지키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사울의 아버지가 사울에게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아오라 명하자 사울은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사알림 베냐민 땅까지 두루 찾아다녔다(4절). 사울은 그만큼 순종적인 사람이었다. 사실 사울의 아버지는 암나귀를 근처에서 찾아보라고 말했을 것이다. 믿음의 사람은 하라고 한 것 그 이상을 순종하고 따르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작은 것에도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줄아는 사람이다. 사울은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맡겨진 자신의 일을 포기하지 않고 감당해 냈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사람에게 그 길을 묻는 신앙의 사람이었다.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계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고자 하였던 사람이다. 그렇게 사무엘을 만나러 갔다가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던 사울을 하나님은 선택하시고 왕으로 삼으셨다.
 
우리는 사울이 가졌던 초심, 즉 순종하되 끝까지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만약 사울이 암나귀를 잠깐 자신이 돌아볼 수 있는 곳만 바라보고 돌아왔더라면 그가 왕이 될 수 있었을까? 순종은 도중에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데까지 끝까지 감당하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사울이 왕이 되기 전 아버지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책임감을 가지고 순종하였던 믿음처럼 우리도 그렇게 믿음안에서 책임을 다하고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 도 출 목사
비전교회 시무


화-그 땅을 그려오라
본문: 수 18:1-10
찬송가: 302장(구 408장)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 말씀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분배하는 과정 속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스라엘의 열두지파 중에 다섯 지파만이 영토를 분배받고 나머지 일곱 지파는 분배받지 못했다. 이미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임에도 불구하고 그 땅을 차지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우리는 비전(vision)의 부재에서 찾을 수 있다. 땅을 분배받은 유다지파와 요셉지파에는 갈렙과 여호수아라는 지도자가 있었다. 이들은 정탐꾼이었다. 40일 동안 땅을 탐지한 후 다른 10명의 정탐꾼들이 부정적인 보고를 할 때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라고 비전을 가지고 긍정적인 보고를 했던 사람들이다. 비전을 가진 지도자가 이 지파에 있었다는 것이 분배 받지 못한 일곱 지파와 다른 점이다. 분배 받지 못한 지파에게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졌다. 4절에 "그 땅에 두루 다니며 그들의 기업에 따라 그 땅을 그려 가지고 내게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땅을 차지하려면 그림을 그려 오라는 것이다. 이것은 비전을 가지라는 뜻이다.
 
리더십의 대가인 미국의 존 맥스웰(John C. Maxwell) 목사는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차이는 삶의 목적과 비전에 달려있다"고 했다. 비전을 가져야 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빌4:13)"고 바울은 고백했다. 이제 새로운 그림을 그리자. 꿈을 갖고 멋진 인생을 그리자.

오늘의 기도

능력의 하나님!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찬양합니다. 주님은 저희들에게 능력있는 삶을 살라고 하셨는데 오히려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주신 삶에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윤 광 재 목사
노원교회 시무


수-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본문: 요 8:32-36
찬송가: 268장(구 202장)

무언가에 억눌려 고통과 불안 가운데서 허우적대는 인생을 보았는가?
 
첫째, 성경은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은 예외없이 모두 죄의 종이라고 말씀한다.
 
죄를 분별할 판단력이 없어서 속을 수밖에 없으니 죄의 종이고, 죄의 유혹을 이길 능력이 없으니 죄의 종이고, 죄 짓고 죄책감에 짓눌려 살게 되니 죄의 종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면 죄에 대한 분별력이 생기고, 죄의 유혹을 물리칠 능력이 생기고, 과거에 지은 죄까지도 다 용서받으니 자유롭게 된다. 죄가 관영하는 세상 가운데서도 탈진하지 않고 영생의 소망으로 날마다 새 힘을 얻는다.
 
둘째, 영혼이 잘되는 자유가 있다.
 
믿지 않는 종갓집에 시집온 새댁이 완고한 시어머니에게 전도했다. "어머니, 예수 믿으면 깨끗해서 좋아요. 예수님은 최고의 신이어서 예수님만 잘 믿으면 잡다한 귀신들을 더 이상 안 섬겨도 아무 탈 없어요!"  결국 이 가정은 새댁의 지혜로운 전도로 미신을 버리고 제사를 추도식으로 바꾸고 기독교 가정으로 변화되었다.
 
이전에 미신에 매여 산 과거를 억울해 하면서 더 일찍 기독교를 받아들였다면 가정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간증하였다. 그렇다. 예수 믿는 가정과 성도에게 참된 자유가 주어진다. 예수님이 진리다. 믿음으로 사는 성도는 날마다 담대하다. 예수님 이름으로 마귀를 물리치니 영적 자유를 누린다.

오늘의 기도

우리를 세상에서 선택하여주시사 자녀삼아주신 예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를 이길 힘과 마귀를 물리치는 능력이 나타나길 원합니다. 날마다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진리가 주는 자유를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추 연 욱 목사
성환중앙교회 시무



목-절대의 가치와 그 섭리
본문: 롬 8:28-30
찬송가: 393장(구 447장)

변화무쌍한 이 세상에서 절대 가치를 찾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여러분은 어디에 절대적 가치를 두고 있는가?
 
바울은 절대적인 가치를 하나님께 두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최선으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할 수 있었다. 감옥에서도 찬송을 부를 수 있었고, 매를 맞으면서도 기뻐할 수가 있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았음을 아는 한, 어떠한 상황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28절 말씀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다. 이 말씀을 얼핏 잘못 보면 오해하기가 쉽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우로 가나 좌로 가나 맘대로 해도 만사가 잘된다는 말씀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런 통속적인 낙관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본문 말씀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도록 '주관'하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주체가 되셔서 그 분의 놀라운 지혜와 능력으로 빈틈없이 역사를 오늘도 진행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선을 이루기 위해서 모든 것을 동원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속했다면 사고도 우연이 아니고, 고난도 불행이 아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아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
 
분명한 것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가장 선한 길을 예비해 두신다.

오늘의 기도

날마다 삶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우리 전부를 맡겨드릴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 동 만 목사
동부교회 시무


금-산 믿음, 죽은 믿음
본문: 야 2:14-26
찬송가: 545장(구 344장)

만약 누군가가 다가와 "당신에게 믿음이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겠는가? 그리고 만약 "믿음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믿음이란 첫째, 알고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고 인정하는 것, 모든 인간의 죄인됨과 그 죄로 인해 멸망할 수밖에 없음을 알고 인정하는 것, 그러나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께서 구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알고 인정하는 것이 믿음이다.
 
둘째, 믿음이란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요, 내가 바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인데 예수님께서 이런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데 그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다.
 
셋째, 믿음이란 결단과 순종이다. 나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여 어떤 명령을 내리시든지 "예 알겠습니다"라고 결단하고 실천에 옮기는 삶이 믿음이다. 또한 말씀을 읽다가 말씀이 깨달아지고 그 말씀에 감동이 왔다면 그 말씀 앞에서 '아멘'하고 결단하고 그 말씀이 요구하는 대로 실천하는 것이 믿음이다.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떠나야 할 자리에서는 당장 떠나고, 정리해야 할 것은 확실하게 정리하는 것이 믿음이다. 결단과 순종이 없는 믿음은 무익한 믿음, 죽은 믿음이다. 이런 믿음은 절대 구원받을 수 없다.
 
나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보자. 진실한 믿음인가 아니면 껍데기 믿음인가? 산 믿음인가 아니면 죽은 믿음인가?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이 세상 그 무엇에 의해서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을 주시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뜻을 분별하여 알며 신뢰하게 하시고 순종함으로 유익한 믿음, 진실한 믿음, 산 믿음의 소유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 삼 균 목사
대성교회 시무


토-신앙의 맛을 내자
본문: 마 5:13
찬송가: 357장(구 397장)

우리가 음식을 먹는 이유 중 하나는 배고픔 때문이기도 하지만 맛을 느끼기 위하여 먹는다. 맛을 내는데 있어서 필요한 요소 중 하나가 소금이다. 소금은 네 가지 미각 중 짠맛을 대표하는 맛을 낸다. 특히 모든 식품에 대하여 그것이 가지고 있는 맛을 더욱 돋구는 구실을 한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녹여 다른 것의 부패를 방지하게 한다. 그러나 소금이 소금으로서 맛을 내기 위하여 녹아 내려져야 한다. 녹지 않고 그대로 있는 소금은 하나의 결정체요 고체 덩어리에 불과하다. 소금이 짠 맛을 내기 위하여 물이나 음식재료에 어우려져 그 속에서 녹아내릴 때 맛을 내는 것이다.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녹아지지 않고 그대로 있는 신앙은 결정체에 불과하다. 신앙이 신앙으로서의 맛을 내기 위하여는 녹아내려져야 한다. 먼저는 내 자신의 생각과 의식과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녹아져야 한다. 그리고 나의 삶의 모습이 나의 삶의 자리에서 녹아내려 그리스도의 맛을 내야 한다. 
 
오늘 본문에서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맛을 잃지 말아야 한다. 바다에 녹아 있는 3%의 염분이 97%의 물을 짜게 하여 짠 맛을 내듯이 내가 속한 가정과 이웃과 직장과 삶의 자리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맛을 내어 세상에서 소금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자.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나의 신앙이 결정체로 머물러 있지 말게 하시고 나의 삶 속에 녹아내려 세상을 향하여 소금과 같이 맛을 내는 신앙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임 채 수 목사
호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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