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삶으로 전한 평화의 메시지

[ 교계 ]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빛난 기독교인들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0년 06월 16일(수) 09:27
   
▲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이들 중에는 크리스찬들이 유난히 많다.
노벨평화상은 국가간의 우호, 군비의 감축, 평화교섭 등에 큰 공헌이 있는 인물이나 단체에게 주어지는 가장 권위있는 상이다. 1901년부터 시상이 시작된 노벨평화상은 전세계 평화를 위해 헌신한 인물을 발굴함으로 전세계인들에게 평화의 이슈를 던져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들 중에는 보통사람으로서는 범접하기 힘들 정도의 희생정신을 통해 인류애를 실천한 이들도 있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오랜 기간 고난을 당한 이도 있으며, 긴장 국면의 국제적 갈등을 해결하거나 완화시킨 인물들도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들 중에는 유난히 기독교인들이 많은 것도 큰 특징이다. 성직자에서부터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헌신적인 활동은 수많은 이들에게 값으로는 따질 수 없는 '평화'라는 보물을 선사했다. 또한, 이들의 인류애와 희생정신으로 인해 만물을 화평케 하는 기독교의 복음은 더 멀리, 더 깊이 전파됐다.
 
먼저, 193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나탄 죄더블룸(Nathan Soderblom)은 교회연합을 통해 세계평화에 기여한 스웨덴 루터교의 대감독이다. 그는 1893년 목사 안수를 받았고, 후에 웁살라의 대감독에 임명되었으며 1914년에는 스웨덴 수석 대감독으로 지명된 인물. 그는 에큐메니칼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의 조직적인 노력의 결과로 1925년 스톡홀롬에서 'Life and Work'를 주제로 제1차 세계회의가 열렸다. 이같은 일련의 회의들은 후에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전통과 하나가 되었다.
 
1946년 수상자 존 모트(John R. Mott)는 미국 감리교 평신도, 복음 전도자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1910년 에딘버러에서 조직된 세계선교협의회(WMC)의 조직위원이었는데, 해외선교 학생자원운동단체(1915~28)와 국제선교협의회(1921~42)의 의장을 역임했으며, YMCA 세계연맹의 총재직(1926~37)을 맡아 국제적인 선교운동에서 쌓은 공로를 인정받았다.
 
1952년 수상자인 알베르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또한 대표적 기독교 인물이다. 독일의 의사이자 신학자였던 슈바이처는 적도 아프리카에 파견된 선교의사로 전세계에 인류애가 무엇인지 각인시킨 인물. 루터교 목사의 맏아들로 태어나 철학박사와 신학박사 학위를 얻은 그는 오르간 연주자로서도 활동했으며 의료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한 후 1913년 의학박사가 됐다. 아프리카의 가봉에 있는 랑바레네에서 원주민들의 도움으로 병원을 세운 그는 제1차 세계대전 동안 그곳에서 적국 외국인(독일인)이라는 이유로 구금되었으며 그 뒤에는 전쟁포로로 프랑스에 억류되기도 했다. 그후 방치되었던 병원을 다시 세우기 위해 1924년 아프리카로 돌아와 병원 터를 잡고 나병환자 거주지도 추가로 세우기도 했다.
 
1958년 수상자 도미니크 조르주 피르(Dominique Georges Pire))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 피난민들의 구호사업을 전개한 벨기에의 목사다. 그는 1949년 난민 원조 단체를 설립해 국적이나 종교에 관계없이 난민들에게 정신적·물질적 도움을 주는 활동을 펼쳤으며, 유럽 전역으로 그 활동 범위를 넓혀나갔다. 1950~54년에에는 피난민을 위해서 벨기에에 4개의 '환영의 집'을 세웠다. 또한 외국인들이 피난민을 도와줄 수 있는 후원제도도 만들었다.
 
1960년 수상자 알버트 루툴리(Albert Lutuli)는 우리에게 비록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종차별정책에 비폭력 저항을 한 아프리카 민족회의 의장이다.
 
그는 미국선교위원회 부설 교사훈련대학을 졸업하고 그리스도교위원회 이사회와 유럽-아프리카 협력위원회의 임원으로 일하는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벌이다가 인종분리정책(아파르트헤이트)를 내세우는 정권이 수립되자 아프리카 민족회의 의장으로 선출되어 이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쳤다.
 
1964년 수상자 마틴 루터 킹 2세(Martin Luther King, Jr.)는 미국 흑인 인권운동의 아버지라 불리는 침례교 목사다. 그는 1950년대 중반부터 암살당할 때까지 미국의 인권운동을 이끌었다. 그는 1963년 워싱턴에서 있었던 대규모 평화행진과 같은 흑인들의 비폭력적인 투쟁을 주도하기 위해 남부 그리스도교 지도자회의(Southern Christian Leadership Conference/SCLC)를 조직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1986년 미국 의회는 그를 기리기 위하여 1월 셋째 주 월요일을 국경일로 지정했다.
 
1976년 공동수상자인 코리건 마기르(Mairead Corrigan-Maguire)와 베티 윌리엄스(Betty Williams)는 북아일랜드 출신으로 얼스터의 교파분쟁을 끝내기 위한 가톨릭ㆍ프로테스탄트의 평화운동단체인 피스 피플 공동체를 창설했다. 이 공동체는 주로 학교, 주택가, 운동 클럽이 합심하여 활동해야만 참된 화해를 이루고 미래의 폭력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에 바탕을 두고 운영되며 평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1984년 수상자인 데즈먼드 투투(Desmond Tutu)는 우리나라 교계에도 많이 알려진 인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성공회 성직자다. 1961년 성공회 교구사제로 임명된 후 활발한 활동을 펼쳐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의장을 지냈으며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요하네스버그 대성당의 수석사제가 됐다. 1978년에는 남아프리카 교회협의회 의장에 임명되었고, 남아프리카 흑인의 권리를 옹호하는 주요대변인이 되었다. 비폭력 저항을 강조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교역국들에게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경제압력을 가하도록 촉구했다. 그는 인종차별 정책의 반대자들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비난하면서, 대신에 흑인 및 백인 공동체 간의 평화로운 협상을 통한 화해를 모색했다.
 
2002년 수상한 지미 카터(Jimmy Carter)는 전 미국대통령으로 퇴임 후 수십 년 동안 민주주의와 인권 향상, 사회적 발전의 신장을 위해 국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은 인물. 그는 대통령 퇴임 후에도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하는 등 모범적인 신앙생활로 더욱 유명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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