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고한 공동체와 권위

[ 생명의양식(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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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6월 08일(화) 15:58

 ▶ 본문 - 대상 17:23 ~ 24

" … 견고하게 하시고 사람에게 영원히 주의 이름을 높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곧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시라 하게 하시며 주의 종 다윗의 왕조가 주 앞에서 견고히 서게 하옵소서"


본문은 자신이 속한 가문과 국가 공동체의 견고함을 바라는 다윗의 기도내용입니다. 당시가 신정일치의 공동체였다고 할 때, 가족공동체와 교회공동체 그리고 국가공동체가 견고케 되기를 바라는 요즘 우리의 기도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두절의 말씀 속에 '견고'라는 단어가 무려 세 번이나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이 있고 나서, 다윗이 속한 공동체는 시간이 지날수록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강력해졌습니다. 역대상 18장에 있는대로 중앙집권제도가 긍정적으로 뿌리를 내림으로 나라의 기틀이 다져졌고, 외교적인 강국으로 부상하게 되었고, 부국강병차원에서 더욱 견고해져 갔습니다. 요즘말로 총체적인 견고함이 있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본문이 어떤 내용이길래 그런 견고해지는 은혜가 시간이 지나면서 임하게 된 것일까요? 본문 배경은 성전을 건축하겠다는 다윗의 소원을 하나님께서 거절하셨지만, 다윗은 실망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만을 기억하고 감사하면서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갔다는 내용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거절을 당했는데도 어떻게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장하신다는 권위를 인정한 것입니다. 물론 권위를 인정하기까지 그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나의 소원과는 다른 결과가 발생했지만,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나보다 더 지혜로우시고 완전무결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믿음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할 수 있었고, 그래서 거절당함이 있었으나 마침내 총체적인 승리가 있었고 견고한 공동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는 공동체생활을 하면서 여러 종류의 권위를 말하지만, 공동체를 견고케 하는 권위는 그 권위의 출처가 믿음에 근거한 것이어야 후유증이 없다는 말이요, 그런 후유증 없는 권위는 오직 성경말씀에 근거한 것이어야 함을 계시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이란 말씀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후유증 없는 성경적인 권위인지 아닌지 진단하는 척도는 무엇입니까? 요약하면, 먼저 장로교의  전통에  근거하여 진단해야 합니다. 소위 전통적 권위(traditional authority)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사랑과 희생과 섬김을 통한 카리스마적 권위(charismatic authority)인가 하는 점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성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교단헌법에 근거한 합법적 이성적 권위(legal and rational authority)입니다. 또 하나는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만드신 상황이나 혹은 세우신 질서 속에서 인정해야 하는 상황적 권위(contextual authority)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행사할 수 있는 모든 권위들의 출처가 무엇이든지 간에 최종적으로 성령님의  인도하심  속에  진단하는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성서적 권위'(biblical authority)이어야 합니다. 이런 시금석 관점에서 보아 문제가 없어야 공동체를 견고케 하는 권위입니다.

이것은 교회에서의 권위도 그러하고 가정에서의 권위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가장이라고 아내를 때리고 자녀를 물건취급하고 했던 왜곡된 유교문화의 폐단은 권위가 아니고 권위주의입니다. 그런가하면 지도자 자신을 하나님의 도구가 아닌 본인이 하나님처럼 권위를 행사하려는 것 역시도 권위가 아니고 권위주의입니다.

며칠전 저명한 어느 헌법학자가 "한 개인의 생각을 재판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에게 강제하는 것은 '사법 파시즘'이라 말한 것 역시도 잘못된 권위주의를 의미합니다. 그런 권위주의는 세상 어느 학문에 근거해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에 근거해서 볼 때 불완전하고 부패한 인간의 죄성을 정당화시키고 합리화시키려는 사악한 마귀 문화이기에 청산되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세우신 정부나 사법부의 권위를 부인하는 것 역시도 죄악입니다. 특히 십계명에서 강조한 부모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은 돌에 맞아 죽어야 할만큼의 무서운 죄악입니다.

견고한 공동체의 강도는 권위와 정비례합니다. 우리나라는 견고한 공동체입니까? 한국교회는 허약한 공동체가 아니라고 확신 할 수 있습니까? 권위주의가 아닌 권위 관점에서 진단하면 해답을 알수 있습니다.

견고한 공동체란 평가를 받고 있는 국가나 교회 가운데 권위가 부정되고 있는 공동체가 있던가요? 없습니다. 만일 있다면 그것은 잘못 진단되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흥망성쇠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이 세우신 법칙 가운데 하나가 '공동체는 권위가 인정되는 만큼 견고해 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폐일언하면 최상 최고의 권위는 하나님의 권위란 말입니다.

김권수목사 / 동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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