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가 그리운 시대

[ 논설위원 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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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6월 01일(화) 13:20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진정한 신앙생활이 가능합니까?"라는 이 말은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신앙생활이 가능합니까?"라고 물은 한국교회 목사들에게 던진 동구라파 목사의 반문(反問)이다. 오늘 한국교회의 가슴에 와 꽂히는 날카로운 비수와 같은 말이다.

유사이래 오늘처럼 물질생활의 편리와 풍요를 누린 때가 없다. 사(士)와 농(農)이 지배하던 세상이 공(工)과 상(商)이 주도하는 세상으로 바뀌면서 가치관도 바뀌고 생활양식도 현격히 달라졌다. 공상(工商) 주도하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모든 것이 경제로 환원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과연 이런 사회에서 진정한 신앙생활은 가능한 것인가?

지난 40여 년간 우리는 경제성장을 위해 모든 가치를 뒤로 놓고 달려왔다. 그 결과 상당한 수준의 물질적 향상을 이루었다. 그런데 이 물질적 풍요를 올바로 제어할 수 있는 영적인 성장과 능력은 같이 향상되지 못했다. 물질적 성장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던져주신 역사적이고 신앙적인 시험문제이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의 신앙과 영을 시험하고 계신다.

가난은 육신의 문제이지만 풍요는 보다 영적인 문제이다. 가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보다 풍요가 주는 영적인 시험과 유혹이 훨씬 극복하기 어렵다. 기라성 같은 많은 목사들이 왜 물질 앞에 맥없이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인가? 왜 하나님의 시험문제 앞에 줄줄이 낙방하고 있는 것인가? 물질중심의 자본주의적 가치관이 모든 생각과 생활 속에 뱀처럼 몰래 들어와 일거수일투족을 지배하고 있는 이 무서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엘리야 선지자는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왕상 19:14)고 고백하고 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대면하고 평등과 평화의 새로운 민족공동체 형성을 위해 모세를 통해 받은 그 언약을 버리고, 이제 바알을 숭배하게 된 백성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선지자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나봇의 포도원을 사람까지 죽이면서 강제로 빼앗고, 물질적 풍요를 약속하는 아합 왕과 그 정책을 종교적으로 뒷받침해주는 정치화된 바알의 선지자들, 눈 앞의 떡을 위해 그 길을 따라가는 무수한 백성들, 이것은 오늘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빼 닮지 않았는가 생각해 볼 문제다. 이명박대통령은 자본주의적 가치관의 화신이요 최고의 영웅적 지도자이다. '경제 살리기'로 대통령이 되었고 그 목표를 위해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고 있다. 우리 사회의 모든 가치는 다 경제로 환원되고 있다. 정의, 사랑, 평화, 생명 등 신앙적 가치는 모두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엘리야 선지자편에 선다면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어야 할까? 갈멜산으로 올라가야하지 않을까? 바알의 선지자 4백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백명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서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를 걸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너무 무섭다. 저쪽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과 더불어 그 체제를 뒷받침해주는 기라성 같은 종교지도자들이 즐비하다.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다. 우리가 믿을 분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외에 아무도 없다.

앞으로 바알숭배 세력과의 싸움은 한국교회를 하나님 중심 신앙의 반석위에 세우느냐 아니냐의 큰 갈림길이 될 것이다. 많은 희생과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 19:18)고 용기를 주시면서 엘리야에게 미래를 준비시키셨다.

한경호/목사ㆍ횡성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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