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웰빙, 금식이 답

[ 논단 ] 주간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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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6월 01일(화) 12:08
나겸일 / 주안장로교회 목사

2000년 이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며 우리의 삶에 성큼 다가선 '웰빙(well-being)'이란 말이 있다. 웰빙이란 육체적ㆍ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통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는 삶의 유형이나 문화를 통틀어 일컫는 개념이다.

최근 들어 이 '웰빙'이란 단어 자체의 사용은 주춤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더 나은 삶을 향한 사람들의 관심은 가히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초등학교 아이들 학교 급식에서 유기농 농산물 사용이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웰빙이라는 것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예에 지나지 않는다.

먹거리, 입을거리, 각종 다이어트 식품, 심지어 스포츠나 취미 활동에 이르기까지 웰빙은 우리의 삶을 특징짓는 새로운 문화적 코드가 되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이러한 변화 속에는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심각한 병폐가 감춰져 있다. 웰빙이라는 삶의 형태가 지닌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욱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웰빙은 본래 산업사회가 가지고 있던 정신적 황폐화에 대한 대안으로 시작된 삶의 유형이다.
물질적 부를 기반으로 한 산업사회의 시대정신으로 말미암아 삶의 균형이 깨어지고 사람들은 대부분 돈을 벌기 위해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로 말미암아 공동체 안에서의 유대감은 깨어졌고 사람들은 물질적 부의 축적을 위해 심리적 안정감과 풍요로움이라는 제물을 바쳐야 했다. 이러한 비인간화를 바로잡고 육체적, 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통해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웰빙이 담고 있는 정신이다.

산업사회가 발 담그고 있는 세계가 물질적이고 탐욕적이고 소유적이라면 웰빙이라는 삶의 유형이 추구하는 세계는 유기적이고 관계적이며 정신적 풍요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 안에 나타난 웰빙이라는 흐름은 오히려 더 물질적이고 탐욕적이며 소유적 성격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뿐이다. 이기심이라는 돛단배가 웰빙이라는 순풍을 만나 물질과 탐욕의 바다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웰빙 바람과 함께 한국 사회에 나타난 소위 '다이어트' 현상이나 고가의 고급 먹거리들은 정신적 풍요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보다는 더 물질적이고 탐욕적인 이기심에 근거를 두고 있다. 더 나은 삶에 대한 욕구가 관계적, 유기적 틀 속에서가 아니라 이기적이고 탐욕적 동기에서 추구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이러한 이기적 탐욕에 근거한 세상을 향하여 금식이라는 영적 대안을 제시한다. 금식은 개인적 경건과 기도를 위해서 매우 강력한 능력의 도구일 뿐만 아니라 세상을 향해 기독교가 던지는 예언자적 상징이다.

금식은 음식의 섭취를 스스로 제한함으로써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거부하는 행위이다. 금식을 통하여 물질적 관심이 영적이고 정신적인 것으로 변화된다. 금식 안에 탐욕은 발디딜 틈을 얻지 못한다. 진정한 웰빙의 삶이 금식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정기적 금식을 통하여 우리는 물질적인 것에서 한 걸음 물러나 영적이며 정신적인 것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또한 금식을 통해 이기적 마음이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변화되며 유기적 공동체로 세워져 감을 경험할 수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참된 금식이 결박과 압제 아래 있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궁핍한 자에게 식물을 나눠주고 벗은 자를 입히는 것이라고 말한다.(사 58:6~7) 이기적 탐욕과 물질의 세계가 진정한 조화와 아름다움으로 변화되는 역동적 능력이 금식 안에 있다는 말이다.

다윗이나 느헤미야, 에스라와 같은 성경의 인물들뿐만 아니라 루터나 칼빈과 같은 영적 거장들은 민족적 위기 앞에서 늘 금식하며 하나님을 향해 무릎 꿇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금식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 경건의 능력을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금식이 지닌 영적 상징이 세상을 고치고 치유하는 능력이 됨을 알았던 사람들이다.

금식이라는 놀라운 기독교 전통 안에서 진정한 웰빙의 삶이 가능하다. 우리가 함께 정기적으로 금식하며 개인적 경건을 쌓아가고, 또한 금식의 정신과 삶을 통하여 이 시대가 새로워지는 하나님의 역사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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