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지 않았던 그분의 삶,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

[ 아름다운세상 ] 학교에 15억원 기증해 교육재단 세운 보성여고 이인식교목의 큰 삶

장창일 기자 jangci@pckworld.com
2010년 05월 11일(화) 16:57
   
▲ 고 이인식목사가 세상을 뜨기 몇달 전 교사들과 함께 성징순례 도중 터키 보스포러스 해협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했다. 당시 성지순례 비용도 이인식목사가 선뜻 내놓은 기금으로 가능했다는 게 주변 교사들의 설명. 사진/보성여자고등학교 제공

2010년 3월 27일 토요일 오전, 보성여자중ㆍ고등학교 강당에서는 보성학원을 위해 평생을 살았던 이인식목사(전 보성여ㆍ중고 교목실장, 전 평북노회 노회장)의 장례예식이 열리고 있었다.
 
이 자리에는 유족들과 지인들 외에도 수백여 명의 학생들이 참석해 스승의 삶을 살펴보는 의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물론 이인식목사가 이 학교 교목실장에서 은퇴한 것이 1997년도이니 이날 예식에 참석한 학생들 중 그의 현직을 기억하는 이는 단 한명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학생들은 엄숙히 스승의 삶을 마음에 담았다. 장례예식이 끝난 뒤 학생들은 교사들이 나눠준 빵과 우유를 받아 들었다. 왠 간식일까 생각하는 것도 잠시. “장례예식에 학생들이 참석하게 되면 꼭 간식을 제공하라. 아이들 배고프게 돌려 보내지 말고...”고인이 자녀들에게 남긴 유언이 장내에 전해지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일생을 교사로, 목회자로, 교목으로 살았던 이인식목사는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는 순간에 빵을 준비하라고 일렀다. 자신보다 남을 위한 삶을 살았던 이인식목사는 생의 끄트머리에서도 배푸는 일에 세심한 정성을 기울였을 만큼 넘치는 사랑을 가졌던 목회자였다.
 
제자들을 위한 간식은 그가 남긴 족적의 편린일 뿐이다. 이인식목사는 2008년, 사재 10억원을 출연해 '보성 피스티스(믿음) 교육재단'을 설립했다. 췌장암으로 투병했던 이인식목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임종을 목전에 둔 3월 1일, 남은 재산에 자녀들의 출연한 기금까지 합쳐 추가로 5억원을 재단에 헌납했다. 그리고 다음 날 병원에 긴급히 입원해 20여 일을 지낸 뒤 세상을 떠났다. 15억원 규모의 교육재단은 이인식목사의 유지를 따라 보성중고등학교가 지속적으로 기독교교육을 펼치는 데 소중한 자양분으로 사용될 것이다.
 
내 배 불리기 바쁜 이기적인 세상에서 쉽게 찾기 힘든 미담이지만 보성학원에 대한 이인식목사의 사랑은 세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깊고도 넓은 사랑이다. 1907년 평안북도 선천에서 개교한 보성학교가 일제의 탄압으로 존폐의 위기에 놓이자 이인식목사의 조부 이창석장로가 학교의 운영을 맡았던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조부가 별세한 뒤에는 부친 이영찬선생이 이사회에 참여해 학교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다각도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인식목사가 유언에서 자녀들에게도 유산의 일부를 교육재단에 기부하라고 했으니 굳이 따지자면 4대로 이어지는 내리사랑인 셈이다.
 
이인식목사의 유언에 따라 보성 피스티스교육재단의 새로운 이사장으로 활동하게 될 장녀 이애순집사(진주 주님의교회)는 "아버지는 자녀들에게는 인기가 없는 분이셨다"며, 웃음 지었다. "아버지는 자신과 가족에게 엄격하셨고 근검절약이 몸에 배셨던 분이었죠. 너무 엄해서 가족들에게는 인기가 없었죠. 15억원이나 출연하셨는데... 가족들은 아버지가 당연히 그렇게 하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유산이요? 가족 누구도 꿈도 안꿨어요. 그러니 서운하고 말 것도 없죠.(웃음)" 이인식목사는 자녀들에게 늘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라고 가르쳤고 자녀들은 아버지의 뜻을 묵묵히 따랐다. 교육재단의 운영과 관련해서 이애순집사는 "하나님이 세우신 학교인 만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사회와 숙의를 거쳐 소중하게 사용하겠다"면서, "학교 안에 소외된 학생들과 구석진 부분에 큰 희망이 전해지는 일이 재단을 통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교직원들에게 강직한 성품의 목회자로 기억되고 있는 이인식목사는 생이 점차 사그라드는 순간에도 목회자로서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를 감사함으로 받아 들였다고 회자되고 있다. 2009년 12월 21일 오랜만에 교직원 예배에서 설교를 전한 이인식목사는 은퇴 후 성경을 40번 완독한 사연을 처음으로 밝혔다. 보성여고 교목실장 김혜경목사는 "사실상 마지막 설교를 전했던 이 목사님은 성경을 40번 읽고 나서 하나님의 마음을 새롭게 느끼게 됐다고 말씀 하셨다. 더불어 믿음과 겸손, 정직한 삶을 살라고 권면하셨다. 무척 감동적인 설교로 기억된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보성여고 강신홍교장은 앞으로도 기독교교육의 전통을 정성껏 이어나가겠다고 밝혔다. 강신홍교장은 "학생들을 복음으로 이끌고 행함이 있는 믿음을 전수하는 것이 보성학교의 목표이고 이인식목사님의 뜻이다"면서, "이를 통해 사회에서 보다 인정받는 학교로 성장시켜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41년 동안 한결같이 보성학원을 사랑했던 이인식목사는 교직원들에게 별도의 유언을 남긴 것으로 알려겼다. "내가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한가지 바람이 있는데 장지로 가기 전 운동장을 한바퀴만 돌게 해 주십시오." 그의 유언대로 운구차는 교직원과 가족, 수백명의 제자들의 배웅 속에서 보성의 마당을 밟았다. 자신의 것을 모두 다 내어 놓은 스승의 마지막 소망은 참 소박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사랑의 그늘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깊고 넓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자양분 삼아 미래의 기독인재들이 무럭무럭 자라나지 않을까. 그의 유산이 키워나갈 내일의 보성학교에 기대를 걸어본다.

*이인식목사가 세운 보성학원의 기독교교육

보성여자중ㆍ고등학교는 체계적인 기독교교육을 하고 있는 학교로 유명하다. 이번 취재를 위해 만났던 보성여고 교장과 교감, 교목, 행정실장이 모두 공감한 부분이다. 정기적으로 드리는 예배는 제외하자. 보성의 학생들은 수십년 동안 여름방학을 이용해 농어촌 미자립교회를 방문해 동네 아이들을 위한 여름성경학교를 진행해 오고 있다. 학교가 세워진 이후 한해도 쉰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역사가 오래됐다. 학교 설립 1백주년이었던 2007년에는 고등학생들을 중심으로 해외선교에도 참여했고, 이후 매년 자비량 해외선교도 이어오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실천하는 신앙인으로 길러야 한다"는 고 이인식목사의 지론에서부터 시작된 전통이다.
 
교목 김혜경목사는 "우리나라 교육의 취약점은 받기만 하고 나누지 못하는 데 있다"면서, "하지만 자신의 것을 나눌 수 있다는 경험을 한 학생들이 갖는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고, 학업성적도 좋아지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밝혔다. 이 학교 김서영행정실장도 "청소년 때 봉사를 경험한 학생들이 장차 사회인이 되어서도 봉사에 참여할 수 있다"면서, "장기적으로는 선교사로 헌신하는 보성인들이 더욱 많이 배출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영락교회의 지원을 받아 아이비리그대학들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을 개설해 어린학생들이 학업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목표를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있으며, 일본 요코하마의 영화여자고등학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긴밀한 교류협력을 통해 국제적인 감각도 길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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