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 교인, 예루살렘 교인

[ 연재 ] 사도바울행전I.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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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5월 06일(목) 09:52
   
▲ 스데반의 순교(스데반 수도원의 벽화). 이스라엘 베이트자말 스데반 수도원.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해로 추정되는 주후 33년 당시, 예수의 제자들은 오순절 후에 두 지방에 나뉘어 있었다. 주 예수께서 전도하시던 갈릴리로 돌아가 그 뒤를 이은 교인과, 예루살렘에 남아 그 곳의 교인들과 공동체 생활을 한 그룹이었다.

갈릴리 교인들의 지도자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였다. 그는 주후 40년 무렵에 갈릴리의 왕 헤롯 아그립바 1세의 박해로 순교하였다.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행 12:1~3).

한편 예루살렘 그룹은 베드로와 요한이 지도하고 있었다.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행 3:1, 4:13).

베드로와 요한은 제사장과 율법학자와 바리새인들의 본거지인 예루살렘에서, 새로운 신도들을 주 예수의 말씀에 따라 이끌고 있었다. 그들은 유대교도의 습관에 따라 성전에서 정해진 때에 기도하였고(행 3:1, 10:9), 율법에 정해진 식사 규정을 충실하게 따랐다.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행 10:14) - 이 때문에 엄격한 유대교도와의 마찰은 어느 정도 덜한 편이었다.

그러나 예수의 새로운 제자 중 특히 헬라어를 말하는 유대인 신도 중에는 당당하게 유대교를 비판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대표자격인 스데반은 성전의 부당성을 규탄하고, 유대인들의 율법 생활에서 그릇된 점을 지적하며 공격하였다.(행 6:8~7:53).

"이른 바 자유인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였다"(행 6:9~10).

그들은 스데반의 말을 듣고 분노하여 주먹을 쥐고 흔들며 소란을 피웠다. 그 중에 건장한 한 명이 스데반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그는 좁은 골목길을 지나 성전 회의실로 갔다. 흥분한 무리들이 그 뒤를 따랐다.

성전 회의실에는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반둥근꼴로 자리를 이루고 회의하는 중이었다. 스데반은 공회원들 앞에서도 같은 내용의 말을 하였다. 그리고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며,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않았다"고 규탄하였다.

대제사장 가야바는 성전 회의실에 모여 있는 의회 의원들에게 스데반이 "유죄인가, 무죄인가"를 묻는 투표를 하였다. 투표 결과는 유죄였고, 선고는 율법을 어기는 자에게 내려지는 돌로 쳐서 죽이는 형이었다. 이 공회에서의 재판은 변호사도 없고 상고심도 없는 일방적인 재판이었다.

열광적인 유대교도들은 성전 회의실에서 다메섹 문으로 스데반을 끌고 갔다. 그 무리 중에는 청년 바울도 있었다. 율법 위반자를 돌로 쳐 죽이는 형장은 사람 키의 곱절이 되는 높은 계단이었다. 스데반은 온화한 얼굴로 하늘을 우러러 보며, 기쁨에 겨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이 서신 것을 보노라"(행 7:56).

김희보/목사ㆍ서울장신 명예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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