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아주 특별한 십자가

[ 디아스포라리포트 ] 디아스포라 리포트 '시드니 동산교회' 편…<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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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4월 22일(목) 10:24
황기덕 / 시드니 동산교회 목사

목사 안수를 1987년에 받았으니 벌써 20년이 지났다. 시드니에서 맡게 된 첫 목회지에서 3년의 임기를 두 번 채우고, 지난 1995년 현재 목회지로 부임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으니 이제 세상 물정도 좀 아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아직 철없는 목회가 불쑥불쑥 나올 때가 있다.

한국적 목회가 무엇인지 호주적 목회가 무엇인지는 잘 몰라도 호주에서는 이 둘 사이의 줄타기를 잘해야 한다. 한국문화에 젖어 있는 성도들과 호주의 서구식 사고 방식에 젖어있는 성도들의 기대와 요구에 동시에 부응해야 하는 난제를 잘 풀어나가는 믿음과 지혜가 필요하다. 목회의 연륜과 성숙함이 부족하기 때문인지 하나님께서는 좋은 장로님들과 성도들을 만나게 하셨다.

   
▲ 우리교회 십자가와 헌당 예배 당시 특송을 불렀던 장신대 교회 음악과 최진량 자매.
성전 건축을 할 때의 일이었다. 장로님 중 한 분이 교회 건축 공사가 시작될 때부터 새로 지어진 교회에 강대상과 십자가는 자기가 봉헌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사용하고 있는 강대상도 이 장로님께서 기쁘게 드린 헌물이었다. 그런데 시드니의 한 교회가 한국에서 강대상을 가져오다가 약간의 파손이 생긴 것을 우리 교회에서 얻어다가 손질해 사용하게 되어서, 봉헌을 드리지 못한 장로님은 섭섭해 하셨지만 어쨌든 지출을 줄인 자부심으로 위안을 삼고 있었다.

그런데 강대상을 드리지 못한 장로님은 십자가만큼은 꼭 드리고 싶어하셨다. 호주의 여러 공장도 가보고 한국의 성구사도 몇군데 다녀보기도 했지만 십자가를 그냥 돈으로 사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생겼다. 사고 싶지 않다기보다 평소 십자가 속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작은 욕심이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첫 번째 지어지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호주 한인 디아스포라 예배당, 그래서 머릿돌에 새겨질 글의 일부도 시인에게 자문을 받았다. 하물며 앞으로 이 예배당이 서 있는 동안 오래오래 세워져 있을 십자가를 그냥 그렇게 사다 붙이고 싶지가 않았다. 기도 중에 십자가를 만들어 보자는 마음이 생겨 여기저기 수소문했던 십자가들, 건축을 위해 직접 방문해 보았던 십자가들이 거의 1백여 개는 되었다.

성도 중에 예배는 잘 참석하지 못하지만 타일을 다루는 손재주 많은 이가 있었다. 그 분에게 십자가의 디자인 시안을 건네면서 만들어주십사 요청했다. 물론 여러가지 부담도 있었다. 장로님은 십자가를 자신이 헌물하기를 바라고 계셨고, 필자 역시 십자가를 만들어 본 경험이 없었던데다 믿음이 연약한 교인에게 십자가 만드는 일을 맡겼기 때문이다. 만일 그 교인이 만든 십자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딱 부러지게 거절을 못하는 필자의 성격때문에 뒷일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 지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그런데, 그 교인이 만든 십자가를 교회에 가지고 온 날, 강단에 십자가를 걸면서 잊을 수 없는 감동을 경험했다. 정성이 듬뿍 배인 십자가였다. 교회를 방문하는 분들마다 십자가에 대한 칭찬을 마다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은혜로웠던 사건은 십자가를 만든 교인이, 그 십자가를 만들어가는 과정 중에 주님을 새롭게 만난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상당히 무모한 일이라 여겨지지만, 십자가를 만든 교인이 집사 직분을 맡아 열심히 헌신하는 모습이 매양 기쁘기만 하다. 강대상도 드리지 못하고 십자가도 드리지 못한 장로님께는 참 죄송할 뿐이지만. 그리고 아직도 철없는 목사의 철없는 목회를 참아주신 것도 참 고맙기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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