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파와 사두개파

[ 연재 ] I.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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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4월 08일(목) 13:53
   
▲ 사도들과 사두개인의 논쟁(프란체스코회의 미사 예식서 그림, 15세기)

신약 시대의 유대교는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사두개파와 시나고그(회당)를 중심으로 하는 바리새파가 양대 세력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열심당이라는 과격한 그룹과 비밀 종교적 색채가 짙은 엣세네파 등의 분파가 있었다. 원래 '바리새'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분리된 자'라는 뜻이다.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분리된 자'라고 일컬었다. 무엇에서 분리되었는가 하면, 제사의식상의 부정함에서의 분리이다. 바리새인들이 생각할 때 가장 부정한 것은 정치상의 영달(榮達)이었다.

따라서 '바리새'라고 하는 명칭의 유래 자체가 사두개파와의 어긋남을 나타낸다. 사두개파는 그 명칭이 다윗 왕 때의 제사장 사독에게서 유래하였다. 사독은 다분히 정치적인 인물로서, 다윗 왕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피난할 때에 언약궤를 메고 따라갔고,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어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한 이교도가 바리새인 샴마이에게 가서, 자기가 외발로 서 있는 동안에 율법 전체를 설명해 달라고 말하였다. 샴마이는 손에 들고 있던 자막대기를 들어 때리려고 하며, "그와 같이 불손한 일은 할 수 없다"고 말하며 내쫓았다.

그 이교도는 이번에는 힐렐에게 가서 같은 말로 설명을 부탁하였더니, 힐렐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율법의 알짜는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계명에 있다. 그 외의 것은 전부 이 계명을 위한 주석이다."

바울은 이 힐렐의 손자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다. 가말리엘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을 옹호하여 변명한 일이 있었다. 베드로를 비롯하여 사도들을 공회에 세우고 심문할 때에 가말리엘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행 5:38~39).

바울 당시 바리새파에도 여러 경향 및 그룹이 있었다. 그 중심적인 그룹은 메시아주의에 관해 이해하기는 하였으나, 그들의 연구 중심은 어디까지나 율법에 있었다. 따라서 바리새파의 전통과 입장에 좋지 못한 영향을 주는 메시아 운동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이와 같은 때에 민중의 환호에 싸여 '나사렛 예수'가 등장하였다. 그의 말씀은 참신하였고, 그의 행위에는 권능이 넘쳤다. 그는 율법주의를 호되게 비판하며, 바리새인을 위선자라고 규탄하였다. 때문에 바리새인은 사두개인과 손잡고 나사렛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가말리엘은 이 나사렛 예수를 두둔한 것이다. 공회에 끌려 온 베드로와 사도들은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셨다"(행 5:30)고 증언하였다. 이 신앙 간증에 힐렐파의 지도자 가말리엘은 동의한 것이다.

청년 바울은 나사렛 예수의 추종자들을 보는 관점이 스승 가말리엘과 달랐다.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청년 바울은 나사렛 예수의 사도들에 대한 일련의 조치, 곧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둔" 사두개파에 동의하였다. 가말리엘이 부닥친 정황과 젊은 랍비 바울 앞에 펼쳐진 형편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김희보/목사ㆍ서울장신 명예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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