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그루터기 넓혀가기

[ 땅끝에서온편지 ] <6> 개신교 선교 현황 폴란드 김상칠선교사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0년 04월 08일(목) 10:02

통계 수치로 살펴보면, 폴란드 개신교인들의 숫자를 약 14만 명으로 보고 있다. 전체 인구가 약 3천8백만 명이니 아무리 많이 잡아도 1%이하인 것은 틀림없다. 16세기에 일어났던 개혁운동은 예수회에 의해 많은 제지를 당해 좋은 성과를 얻지 못했고 폴란드 영토가 분할되었던 18세기 무렵에도 개신교인의 수는 미약했다.

폴란드가 분할되었던 시기의 교인 현황을 보면 다음과 같다.
1)러시아 지배하에 있던 영토-가톨릭: 3백70만 명, 정교회: 2백80만 명, 유대교: 4만 명, 개신교: 약 1만 명, 무슬림 :4천 명. 2)오스트리아 지배하에 있던 영토-가톨릭: 4백50만 명, 유대교: 30만 명, 개신교: 수천 명 정도. 3)프러시아 지배하에 있던 영토-가톨릭: 2백60만 명, 개신교: 3만5천명, 유대교: 20만 명, 정교회: 2천명.

   
▲ 개신교회를 압박하는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전하고 있는 라브카 교회 교인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에 의해 영토가 새로 지정되면서 동쪽 땅이 소련에 넘어가고 독일 땅이었던 서쪽 땅이 폴란드 땅이 되는 과정이 개신교인의 수가 줄어드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보고된다. 그리고 이 일로 폴란드의 지도가 새롭게 작성되었는데 우습게도 본회퍼 목사가 태어난 독일 땅이 지금은 폴란드의 브로츠와프라는 도시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현재까지 개신교회 수는 그리 변하지 않았다. 공산주의의 몰락 후 공식적으로 새로 등록된 교회의 수는 겨우 20여 개 정도다. 이런 상황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정부 정책이 개신교회에 지나친 압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엔 교회 등록을 요구하는 조건이 30명의 신앙고백으로 이루어 졌는데 어느 날 1백명으로 늘어나 사실상 정식교회의 등록은 어려운 실정이다. 결국 이미 등록된 교회를 모(母)교회로 삼고 기도처 형식인 자(子)교회의 모습으로 교회를 확장해 나가는 중이다.
최근 통계에 나타나는 몇몇 교단의 성장은 "그리스도안의 하나님 교회"(32%), '펠로우십 크리스찬 처치(Fellowship Christian Churchㆍ11%), 침례교회(4%), 오순절교회(4%) 정도이다.

폴란드 개신교는 폴란드 국민 속에 너무 강하게 자리잡힌 가톨릭 교리와 쳉스토호바의 마리아 숭배사상 때문에 항상 이교도로 몰리고 국가를 해롭게 하는 요소를 가진 이들이자 또한 국가와 국가의 문화까지 침략하는 반역인(?) 취급까지도 받아왔다. 이러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개신교회들은 신선한 헌신으로 무장한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그루터기의 새싹과 같이 잘 자라고 있다.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자코파네로 가기 전에 교육 환경이 좋고 공기 맑기로 유명한 라브카 시가 있다. 이곳에 소보착 목사가 시무하는 크라쿠프교회가 자(子)교회를 세워 한명, 한명 이삭줍기하듯 교인들을 세워 자생의 힘을 불어넣었다. 소보착 목사가 말하기로는 그동안 교인들의 가정집을 순회하며 예배를 드려왔는데, 얼마 전 그동안 모았던 헌금으로 작은 예배 처소를 구입했다고 한다.

폴란드의 교회는 한국과 같이 불같이 일어나는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폭풍이 몰아쳐도 쉽게 꺼지는 불도 아니다. 교회를 구입하고, 건축을 하는 것도 빚을 얻어 몰아치기식 건축을 하는 것이 아니라 헌금이 모아지면 그만큼만 자재를 구입해 건축을 하고 수년이 걸려도 외부의 도움보다 자체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더 강하다.

건축 자재가 본당에 쌓여있어도 예배를 드리는데 불편을 느끼지도 않고 서두르지도 않는다. 감사한 것은 그들이 건축 문제나 재정적인 문제로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롱스키 지역에서 목회하는 안드제이 목사의 경우도 수년전부터 본당 건축을 시작해 지금까지도 계속 진행하고 있다. 매주 교인들이 모여 설계도를 보며 예배당 건축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이들의 모습을 통해 예배당의 외형을 중시하기보다 주님의 이름을 높이며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기쁨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된다.  폴란드의 교회들은 가톨릭 문화와 그 제도안에서 지내왔기 때문에 누군가의 간섭이라든지 교회의 교리나 제도 속에 그들이 갇혀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예배의 형태라든지 교회의 운영에서도 목회자의 발언보다 교회 운영위원회의 발언이 절대적이다. 이런 측면에서 목회자의 헌신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목회자의 복지나 성장을 위한 교육의 투자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상황은 폴란드 교회가 성장하는데 있어 개선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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