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공간 속에서

[ 논설위원 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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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3월 30일(화) 18:30

불교계의 큰 스님인 법정 스님이 별세했다. 법정 스님이 마지막 돌아가시기 전에 말씀한 유언 가운데 신문에 보도된 내용 중 이런 글을 볼 수 있었다.

"내것 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

나는 나이를 먹어 가면서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을 바라보면서 살아간다. 어릴 때 뛰어 놀던 고향이 이제 사람이 살 수 없는 죽은 공간으로 변해 간다는 사실이다. 어릴 때 고향은 얼마나 아름다운 공간이었는가? 많은 친구들이 술래잡기를 하고 땅 따먹기를 하고 자치기를 하고 그래서 참으로 즐거웠던 공간, 너와 내가 만나서 아름다운 놀이를 하면서 지냈던 살아있는 공간이 나의 고향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고향을 등지지 못해 겨우 생명만 유지하고 있는 노인들 몇 명이 고향을 지키고 있다. 이 어찌 '살아있는 공간'이라 말할 수 있는가? 점점 죽은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지..
교회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우리들의 공간을 죽은 공간으로 만들어 가는 것인가? 이 원인은 여러분과 나의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욕심이란 '죄'가 아닌가 싶다.

우리의 교권이 종교 권력이 되어서 이웃을 섬기는 '섬김의 도구'라기 보다 나 혼자만 잘 살겠다는 욕망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세상은 돈으로 권력을 지배하고 교회마저도 돈으로 종교 권력을 사려고 하는 모습들을 본다. 바로 공간을 정복하고자 하는 욕심과 더 많이 가지려는 탐욕이 우리의 아름다운 고향을 죽은 공간으로 만들고 더 높아지려는 욕심으로 우리의 기독교가 점점 타락해가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우리에게 이 공간이 필요없다는 말인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지탱해가는 이 공간이 얼마나 필요한지 모른다. 잠을 자고 쉼을 얻고 얘기하는 공간이 얼마나 우리에게 필요한가? 그래서 정부도 있어야 하고 우리들의 공간인 총회도 노회도 교회도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공간의 불균형이다.

서울에 있는 아파트는 한 채에 몇 십억원을 한다고 한다. 서울에 있는 교회는 몇 백억 원의 교회를 짓는다고 한다. 반면에 시골은 점점 더 교인 수가 줄어들고 죽어가는 공간이 되고 있는 듯하다.

나의 탐욕이 너와 나의 공간을 죽은 공간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어령교수는 이렇게 지적한다. "공공의 것, 정의 명예 공동체의 비전 이런것을 위한 '공론의 장'이 빙산처럼 녹고 있는데, 이것은 공론의 장이 소멸되고 공공영역의 활동이 모두 자기 입만 걱정하는 사적인 노동 사회로 전락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용산 참사나 혹은 서울의 호화찬란한 교회를 통해서 느끼는 것이 무엇인가? 아무리 호화스럽게 아파트를 짓고 산다고 해도 가난한 이웃들이 방 한칸 없이 살고 있을 때 무슨 흥이 나고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그렇게 비대해지는 도시 공간이 오늘 우리에게 살아 있는 공간이 되고 있는가, 아니면 죽은 공간이 되고 있는가? 아름다운 우리 신앙의 탯줄인 시골교회는 점점 죽어가고 있고 우리들의 고향은 점점 죽은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오늘 우리들의 교회가 과연 이 한국사회에 소망을 주는가, 아니면 점점 더 실망을 안겨 주는가는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우리 한국교회가 사회의 지탄을 받고 점점 더 황무지가 되어가고 있지는 않는가 말이다. 우리의 공간이 죽어있다는 말은 우리들의 시간이 죽어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서처럼 아버지 품을 떠난 결과 그가 어떻게 고백하고 있는가? 내가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하고 탄식하는 공간 곧 저주의 공간이 되더라는 것이다. 인간이 추락하면 동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동물 이하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다. 요즘 세상에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이 얼마나 많이 생겨나고 있는가?

하나님을 떠난 인간, 하나님을 떠난 교회, 하나님을 떠난 사회는 결국 우리들의 공간을 죽음의 공간으로 만들어 간다.

바로 이 시간이란 무엇인가? 바로 삶의 내용이다. 나는 지금 삶을 올바로 살고 있는가 묻는 것이 우리들의 시간이다. 내가 무엇이 되고 얼마나 큰 교회를 가지고 얼마나 큰 공간을 확보하고 살았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나에게 주어진 공간 속에서 올바른 시간을 살고 있는가? 고난주간과 부활절을 앞두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이라 생각해 본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 한국교회가 다시 한번 부활의 주님을 모시고 죽은 공간을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는가.

김민식/목사ㆍ동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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