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보지 못하였느냐"

[ 연재 ] 사도바울행전I.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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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3월 30일(화) 18:15
   
▲ 예루살렘 '무덤교회'에서 '헬레나교회'로 내려가는 캄캄한 계단 벽에 중세 순례자들이 새긴 십자가.

바울이 십자가에 못 박힌 주 예수와 만난 것은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고린도 교회에 사도직에 관하여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고전 9:1)

"내가 …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라고 하는 구절을 두고 통상 부활하신 예수를 본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주해자들은 해설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예수를 보았다"라고 능동태로 말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바울은 생전의 주 예수와 만난 일이 있다.

바울은 부활하신 주와 만난 사건은 한결같이 "주께서 보이셨다"하고 수동태로 말하고 있다.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살아나사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 15:4, 5, 8)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지라.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그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의 증인이라"(행 13:30~31).

심지어 다메섹 도상에서의 사건이 있은 후 앞을 보지 못하는 바울을 위해 기도하여 눈을 뜨게 한 아나니아도 바울에게 나타나신 예수를 수동태로 말하고 있다.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행 9:17).

이와 같이 부활하신 주 예수께서 현현하신 사실을 말할 때는 예외없이 모두 수동태로 "보이셨다" 또는 "나타나셨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사도의 자격을 말하는 고전 9장 1절에서는 "내가 …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라고 능동태로 말하고 있다.

다음으로 주 예수와 바울의 만남이 골고다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십자가'라고 하는 낱말에 있다. 즉, 주 예수의 직제자인 베드로와 요한의 편지에는 '십자가'라는 말이 전혀 쓰이지 않았다. 베드로는 단 한번 '나무'라는 말을 쓰고 있을 뿐이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24).

'나무(xulon)'는 '형틀'이라는 뜻으로서, '십자가(stauros)'와는 다른 개념이다. 바울은 '십자가'라는 명사로서 10회, '십자가에 못 박히다'라는 동사로서 8회, 합하여 18회나 쓰고 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고전 1:23).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갈 3:1).

바울은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나사렛 예수의 붐'은 사라졌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소식에 당혹감을 느꼈을 것이다.

김희보/목사ㆍ서울장신 명예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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