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 생명의양식(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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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3월 23일(화) 17:15

▶ 본문 : 이사야 53장 4~6절 / 마태복음 20장 17~19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오늘의 신약 말씀은 예수님께서 앞으로 있을 고난과 부활을 예고하신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과 부활을 예고하신데에는 두 가지 의도가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먼저는 목전에 다가온 고난을 미리 알려주시고, 거기에 대비하기 위함이었고, 또 하나는 이만큼 가르쳐 놓았으니까 이제는 이런 말씀을 하셔도 제자들이 믿음으로 소화할 것으로 기대하셨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앞으로 당하실 고난에 관해 예수님께서 정확히 알고 계셨다는 겁니다. 그 십자가 형벌이 얼마나 끔찍하고, 참혹한지, 또한 재판과 조롱, 힐난과 매질이 어떠할 것인지 다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고난의 길로 나아가셨습니다. 이에 대해서 요한복음 10장 17~18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억지로, 강제로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고난이고, 끔찍한 일임을 아셨지만 스스로 택하시고, 스스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닮은 인생을 살았던 사도바울 역시 그랬습니다.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을 향해 가실 때에 장로들이 한결같이 만류했습니다. 차마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목숨을 잃을 것이라는 말은 못하고, 강권하며 말렸습니다. 이에 사도바울은 사도행전 20장 22~24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혹 죽을 수도 있음을 사도바울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회피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목숨이 아까워서 사명을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먹는 것을 위해서, 입는 것을 위해서 가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무슨 지위를 얻기 위해서 가는 길도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사명을 위해서, 생명을 걸고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길은 참으로 고귀한 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신약본문에 이어지는 마태복음 20장 28절에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즉,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을 섬기고, 죄인을 대신해 죽으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겁니다. 소도 도살장으로 끌려갈 때는 굵은 눈물을 흘린다고 하지 않습니까?

내가 치러야할 죄 값, 내가 죽어야 할 십자가였습니다. 누가 나를 위해 죽어주며, 누가 내 죄값을 치러줍니까? 그런데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은혜라는 말밖에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듯 크나큰 은혜를 입었는데 이제 우리도 주님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만 하는 것 아닙니까?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하는데, 이 막중한 은혜를 입고 그냥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고린도후서 1장 5절을 보면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주님을 위해서 고난받고, 핍박을 받으면 주님께서 크게 위로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복음을 전하면서 얼마나 많은 핍박과 고통이 있었습니까? 이때 바울도 사람이기에 받은 핍박, 당한 고통에 비해 하나님 주시는 위로와 치료가 적었다면 쓰러지고 말았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천배, 만배로 위로해 주셨고, 그 일로 말미암아 새로운 능력도 부어주셨습니다. 뿐만아니라 로마서 8장 18절을 보면 "생각하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이 말씀을 기록하기 전에 사도 바울은 이미 하늘나라에 가서, 구석구석 봤더랬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에 가봤더니 자신이 주님의 이름으로 핍박받고, 상처받고, 고통당한 것으로 말미암아 예비된 상금이 대단한 겁니다.

이런 일을 자꾸 경험하다보니 고난이 와도 겁나지 않습니다. 핍박이 와도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일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어떤 것일까" 기대하며 고난을 맞이하곤 했습니다. 대체로 사람들이 살아가다가 고난을 만나면 세 가지 모습으로 반응한다고 합니다.

먼저는 실족하는 겁니다.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나?, 내가 얼마나 많이 봉사하고, 십일조를 얼마나 많이 하는데" 하면서 실족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회피하는 겁니다. 회피함을 통해서 오히려 일이 더 악화될 수도 있는데 그리하는 겁니다. 그런가하면 묵묵히 믿음으로 처리해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 지혜로 하나 하나 해결해 가는 겁니다. 어떤 경우는 참아내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일들이 있지 않습니까? "주여" 하고 참는 겁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장에서는 팔복을 말씀하시면서 그 결론적인 복을 10~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믿음으로 동참하고 앞장설 일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몸된 교회를 위해서, 믿음으로 이웃을 위해서 고난받아본 적이 있습니까? 이런 일을 위해서 한끼라도 굶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주님을 위해서 자존심을 구기고, 핍박을 받고, 손해보고, 억울한 일을 당해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이런 고난을 기뻐하십니다. 이제 이런 수고를 통해 이런 상금을 받는 인생을 건설해 가시기 바랍니다.

이순목사/천안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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