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 타종교와 다른 점

[ 연재 ] 함께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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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3월 18일(목) 13:40

 
최근 불교의 법정스님이 입적(入寂)했다. 입적이라는 말은 '욕망의 불꽃이 모두 꺼진다'는 의미로 고요한 경지에 들어갔다는 말이지만 기독교적으로 해석하면 적막한 곳으로 들어간다는 말이다. 천주교에서는 죽는 것은 선종(善終)하였다고 하는데 죄없이 착하게 살다가 죽는 사람에게 사용되는 말이다. 그러나 적막한 곳으로 가거나 착하게 살다가 죽는 것은 구원의 길과는 무관하다.
 
작년에는 추기경의 죽음으로 매스컴이 뜨겁더니 올해는 법정의 죽음으로 공중파에서 많은 전파를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불교측으로부터 잃어버린 점수를 만회하기라도 하듯이 대통령마저 길상사를 찾아 합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솔직히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다. 필자가 바라는 믿음의 사람은 어떤 형편에서도 자기의 신앙을 굽히지 않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기독교인의 신분으로 신앙의 지조를 지키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상대방의 종교를 존중하기 위한 의식표현이라고 하겠지만 그것은 믿음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대답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곳에서 기독교의 의식대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더 아름다웠을텐데 하는 마음을 지울 수 없다.
 
법정은 생전에 무소유를 강조했다.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갖기 원하는 시대에 무소유를 실천하는 사람이 존경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무소유는 자기수련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그래서 불교는 자기수련의 종교다. 그 수련을 통해서 부처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천주교나 불교가 이땅에 기여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구원관에 있어서는 다르다. 법정은 언제나 '나는 누구인가'를 질문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렇게 수련을 해도 자기가 누구인지는 몰랐던 것이다. 그것이 기독교와 다른 점이다.
 
천주교나 불교는 범신론(汎神論)이다. 모든 것이 신이 될 수 있다는 것, 등산을 가는데 이 길만이 정상으로 가는 길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천주교와 불교는 교류가 가능하다. 그러나 기독교는 세상 사람들이 고지식하다고 할 정도로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뿐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에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불교는 기독교인들의 기도 세레모니를 걸고 넘어지는 편협성을 보이면서 기독교가 독선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밖에는 없다. 무소유는 아름답지만 그것은 종교나 진리가 아니다.

황  종  상
목사ㆍ새동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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