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으로 만든 국수를 싣고 달리다

[ 나의삶나의신앙 ] <2>성호정장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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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3월 18일(목) 11:11

송학식품  대표 ㆍ대광교회

뻥튀기를 팔기 위한 나의 노력은 계속됐다.
한번은 수원에 뻥튀기를 팔러 갔는데 다 팔지를 못했다. 들리는 소문에 쑥고개에 가면 뻥튀기가 잘 팔린다는 소문을 듣고 함박눈을 맞아가면서도 뻥튀기를 팔기 시작했다.
그날따라 유난히 많은 눈이 내렸다. 길이 미끄러워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졌는데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로 힘들었다.

나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러다가 죽겠다'라는 생각을 처음 했다.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다른 부모들은 자식 공부시키고 하는데 우리 부모는 뭐하는지 모르겠다"며 어머니께 신경질을 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화낼 때마다 따뜻한 식사를 차려주시면서 항상 마음 아파하셨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뻥튀기를 열심히 팔았다. 그 결과 서울 신길동 신남 시장에 5평짜리 가게를 하나 얻을 수 있었고, 국수 기계 한대로 온 가족이 국수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나는 가게의 대표자 명의를 내 이름으로 올리고 부친의 훈수를 받으며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처음 시작은 밀가루 다섯 포로 시작했다. 장소가 협소해 실외에서 국수를 건조했지만 우리 국수가 끊어지지 않고 좋은 국수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희망이 담긴 국수를 자전거에 가득 싣고 많은 국수 가게를 찾아다녔지만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른 아침에 나가 오후 2시가 되도록 한 다발도 팔지 못하자 걱정과 후회가 교차했다.
국수를 다시 싣고 들어가면 부모님은 물론 동생까지 실망할 것을 생각하니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경제적 여유라도 있으면 돈을 받지 않고 국수를 맡길 텐데 그럴 형편도 못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한 가지 지혜가 떠올랐다.
국수 값 대신 밀가루를 받아 물건을 팔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어려운 상황을 이야기하고 국수를 펼쳐 보이니 경남상회 강 사장이 처음으로 국수를 사줬다.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말로 표현할 수 가 없었다.

강 사장은 나를 또 한 번 놀래켰다.
어느 날 강 사장이 자장면을 먹자고 했다. 나는 국수를 사주신 감사의 인사로 자장면을 대접하고 싶었다. 그래서 두 그릇 값을 가지고 강 사장을 만났다.
그런데 강 사장과 다른 한명의 사람이 더 나온 것이다. 자장면 값을 두 그릇 값만 가지고 나갔는데 걱정이 태산이었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자장면 두 그릇 값만 가지고 나왔습니다"라고 했더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같이 나온 친구에게 밀가루 5백포를 본인에게 빌려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하루 밀가루 15포 쓰던 사람이 밀가루 5백포를 빌려준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감사했다.

밀가루 5백포를 가지게 되니 내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갑부라는 담대함이 생겼다. 김 사장의 도움으로 마음껏 물건을 만들 수 있게 되자, 나는 국수가게 보다 판매량이 훨씬 많은 판매 상점들을 거래처로 뚫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주위에서 나를 보는 눈이 틀려졌다. 사람들이 나를 믿기 시작했고, 그 결과 가게는 번창하기 시작했다.
신남시장 건물 주인이 우리 국수 가게 때문에 점포를 늘리기 시작했럼. 그 점포에는 떡공장과 냉면공장도 들어서기 시작했다.

꾸준히 성장하며 송학식품은 식품업계에서 제일 큰일을 감당하기 시작했다. 거래처 관리와 적극적인 판로 개척에 힘입어 나는 30세에 떡국 떡과 냉면 업계 1인자 로 우뚝 서게 됐다. 이때는 6백평 되는 신남시장 전체로도 자리가 좁아 옆 신흥시장 자리까지 빌려 제품을 생산했다.

/정리 임성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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