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을 수 있다는 게 꿈만 같은걸요"

[ NGO칼럼 ] 엔지오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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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3월 18일(목) 10:17
최민석 / 전 월드비전 간사

노르마를 만난 곳은 볼리비아의 한 산골이었다. 산은 태양에 닿을 듯이 높고, 햇살은 창살처럼 우리를 따갑게 쏘아대는 곳이었다. 해발 4천5백미터의 고산지대에 사는 여느 아이들처럼 노르마의 피부는 햇살에 검게 그을려 있었다. 하지만 그 보다 먼저 시선이 간 것은 노르마의 걸음걸이였다. 노르마가 한 걸음씩 움직일 때마다 한쪽 어깨가 푹 꺼질 정도로 몸이 휘청거렸다. 노르마는 한쪽 다리가 불편했다.

"그래도 전, 걸을 수 있다는 게 꿈만 같아요."
의외의 대답에 깜짝 놀랐다. 사연을 들어보니, 소녀 목동인 노르마는 양을 치다 절벽에서 떨어졌다고 했다. 다리를 쓸 수 없어 지난 2년 동안 집 밖에 거의 나가지 못했는데, 지난해 초 월드비전의 한국후원자들이 보내준 후원금으로 수술을 받게 된 것이다. 비록 불편을 감수해야 하지만, 노르마는 걸어서 학교에 다시 갈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노르마는 꿈이 뭐니?"
"선생님이요. 학교도 좋고, 친구도 좋고, 수학이 너무 재밌어요."

환하게 웃는 노르마의 얼굴이 기대감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꿈을 이야기하는 아이의 표정이 이상하다. 왠지 그 후로는 발로 괜히 땅만 파며 말을 안 한다. 현지 직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년부터는 이웃마을의 상급학교로 가야한단다. 현재의 불편한 다리로는 통학에만 걸어서 세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노르마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상급학교로 가려면 다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데, 노르마가 우리의 대화를 눈치 챘는지 표정이 영 울상이다. 

2년 동안 집밖에 나가지 못하며 마음 속 깊이 간직한 꿈이 다시 마음속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휘청거리면서도 학교에 가서 수학 수업을 열심히 듣고, 집에 오자마자 수학책부터 펼쳐 본다는 이 소녀에게 무엇을 선물해줘야 할까. 혹시 기분이 풀어질까 싶어 건네준 인형에 소녀는 함박웃음으로 답례해줬다. 

노르마(Normal). 그 이름의 뜻은 아이러니 하게도 '정상, 문제없음'이다. 비록 지금은 이름의 의미대로 충분히 지내지 못하지만, 기대를 저버리지는 않는다. 세상에 사랑이 남아있는 한, 노르마가 이름대로 씩씩하게 걸어서 학교에 갈 날이 오리라 믿는다. 지금까지 사랑을 부어준 따뜻한 사람들이 있기에, 그 사랑으로 걸을 수도 없었던 노르마가 내 눈앞에서 걷고 있기 때문에, 노르마가 또 한 번 장벽을 딛고 일어나 꿈을 훨훨 펼치며 뛰어다닐 날이 올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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