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과 '떠남'

[ 생명의양식(설교) ] 생명의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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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3월 17일(수) 16:58

▶ 본문 : 마가복음  9장 30~31절

"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 비움

사순절 기간입니다.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속이 가득 찼다고/소리를 내는 게 아닙니다. 악기는 비어 있기 때문에/울리는 겁니다." 연습 중이던 첼리스트는 첼로의 활을 들고 소리를 튕겨내고 있었다. 그는 내게 첼로의 속이 비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며 텅 빈 속을 보여 주었다. "한 번 비워 보세요/ 내면에서 울리는/자기의 외침을 듣게 됩니다."

악기가 소리를 냄에는 비움의 아픔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채움을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비움은 곧 아름다운 울림으로 승화되며, 그 울림은 자기 영혼의 소리가 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불필요한 것들을 비워야 자기 울림의 아름다운 소리로 승화됩니다. '비움'이 있을 때, '채움'의 풍요를 경험하게 됩니다. 비움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내면의 자기 울림을 통해서 다른 이를 통한 울림을, 새로운 '승화됨'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경험은 진정 '새' 경험입니다. 새로운 시간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길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마가복음 8장 31절에서 "…많은 고난을 받고…버린바 되어…죽임을 당하고…"라고 말씀하셨고, 9장 31절에서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라고 하셨고, 10장 33절에서는 "…넘겨지매 …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그 길을 떠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을 향한 걸음에서 '비움'의 안타까움을 봅니다. '고난의 길', '버린바 되고', '죽임 당하고' 그리고 '손에 넘겨지는' 길을 향하여 가기 위한 '비움'입니다. 그분은 지금 거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골고다의 길로 가는 길에 서 계십니다.

 # 떠남 

'비움'은 십자가 복음의 소리가 되어, 하나님 아들의 울음소리가 되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아니하시고 '그곳을 떠나심'을 이루셨습니다. 홀로 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정해 놓으신 하나님의 '때'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그곳, 골고다를 향해 그곳을 떠나셨습니다. 여기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고, 여기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는 곳이기에 다시 못 올 그 곳임을 아시면서도 그곳을 떠나신 것입니다.

갈릴리 예수님께서 성장하신 고향, 나사렛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첫 외침의 울음이 있었던 곳 가버나움을 떠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으로(막 6, 8장) 수많은 사람들을 배부르게 먹이셨던 기적의 장소를, 소리를 들을 수 없어서 어눌했던 불쌍한 사람의 귀를 '에바다' 하시므로 열어 주셨던 그 이적의 자리를 떠나신 것입니다. 수많은 이방인들까지 찾아와 복음을 듣고, 눈물로 회개하던 그 자리를 떠나신 것입니다. 이름 모를 산, 그 산에서(마가복음 9장)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을 드러내시므로 변화하셨던 그 변화의 영광의 자리를 떠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운명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른 채로 철없는 제자들의 '누가 더 높으냐, 예수님 다음에 2인자는 누구인가?'를 말하며 다투던 그 연민의 자리, 연민의 그곳을 떠나셨습니다. 당신 자신이 떠나신 후에 저 철없는 제자들에 대한 미래를 염려하시면서도 그 '십자가의 길'을 향해 가기 위해서 그 곳을 떠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9장 29절을 보면,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십자가 길의 '비움'에 대한 결과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22장 3절에서도,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아브라함의 이 가슴 아픈 이야기는 아들을 떠나는 아브라함의 '떠남'에 대한 아름다운 믿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믿음의 반석은 예루살렘 성전의 반석이 되었습니다. 이 '비움'이 그리고 '떠남'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한 선생님이 마태복음 11장 30절의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는 말씀을 읽어 주시면서 학생들에게 "멍에가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한 학생이 일어나서 "멍에는 동물들의 목에 감는 물건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다시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멍에는 무엇이죠?"

한 소녀가 일어나서 말합니다. "하나님이 두 팔로 우리의 목을 감싸 안으시는 것입니다."

'그곳'을 떠날 수 있는 힘은 하나님께서 포근하게 감싸 안으시는 그 멍에로부터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그런 행동을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이 사랑'이 모든 것에 '비움'을 이루게 하며, '그 곳을 떠남'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순절에 주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강병만목사/청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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