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우유가 든 젖병'

[ 연재 ] 시론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0년 03월 12일(금) 09:31

 
얼마 전 방송 설교를 듣는데 이런 말이 나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우리 모두 예수의 중독자가 돼야 합니다." 맥락을 살펴 전하려는 뜻은 알아듣겠지만, '중독'이란 말은 적합하지 않아 보였다.
 
중독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는 가정에 뭔가에 중독된 사람이 있어 봐야 안다. 그들 때문에 가족 등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가. 이런 사람들에게 '중독'이란 말은 얼마나 무섭고 지긋지긋할까. 중독자는 '존재'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된다. 과거에는 술이나 담배, 도박에 중독된 사람이 많았는데, 요즘엔 '신종' 중독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마약 중독자, 춤 중독자, 일 중독자, TV 중독자, 성(性) 중독자, 취미활동 중독자, 인터넷 게임 중독자 등….
 
뭔가에 중독되면 주종(主從)이 바뀐다. 담배에 중독된 사람은 담배가 주(主)가 되고, 정작 그 담배를 돈 주고 사서 피는 사람은 종(從)이 된다. 담배 중독자는 담배를 피우고 안 피우는 걸 자신이 택할 수가 없게 된다. 뭔가에 중독되면 다른 것은 보이지가 않는다. 노름에 중독되면 처자식이 살아갈 집 문서까지 훔쳐다 판돈으로 바꾼다. 자신을 꼼짝 못하게 하는 '그것'이 항상 우선이 되고, 더 중요한 것은 죄다 뒤로 밀리게 된다. 결국 '그것'이 우상이 되고, 자신은 '그것'의 '신도'가 되고 만다.
 
교회에도 중독자가 있다. 필자가 참여하는 한 직장인 예배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예배 중독자' 같아 보이는 사람이 몇 있다. 그들은 평일에도 이 교회 저 교회를 다니면서 자신과 관련도 없는 모임의 예배에 참석을 한다. '예배', 정확히 말하자면 '예배 의식'에 중독된 사람들이다. 심리학자나 사회학자들은 현대인이 여러 가지에 중독되어 살아간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중독의 요인들이 우리의 삶 속에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컴퓨터 게임에 빠진 동거부부가, 인터넷 게임에 미쳐 생후 1백일 된 딸을 돌보지 않는 바람에 아이가 영양 실조로 죽었다고 한다. 이들은 딸이 숨지기 직전 매일 밤 10~12시간씩 인터넷 게임을 즐기며 어린 딸에게 하루 한번만 분유를 줬다고 한다. 경찰이 아이의 사망 신고를 받고 출동했을 때 젖병에 담겨 있던 분유는 썩어 있었다니….
 
경찰 발표에 따르면, 이들이 심취했던 게임은 가상의 소녀 캐릭터를 키우는 다중 접속 온라인 롤 플레잉 게임 '프리우스 온라인'이라고 한다. 게임 이용자는 게임 속에서 소녀 모습을 한 캐릭터를 매일 데리고 다니며 돌봐주게 돼 있다. 사고를 낸 부부도 게임상에서 이 소녀를 키우고 있었다. 가상 세계의 딸은 정성껏 돌봐주면서, 정작 현실의 딸은 굶겨 죽게 했으니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이가 노느라 밥을 안 먹는 건 봐도, 엄마가 노느라 아이 젖을 안 준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현실과 가상을 오락가락하며 살아온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사자들만 탓할 수는 없다. 담배 중독의 1차 책임은 담배 제조업자, 담배를 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생활 환경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잘 살펴보면 우리 생활 주변에 얼마나 많은 중독의 덫들이 숨어 있는지 모른다. '산업가'라는 미명 아래 국가의 허락을 받고 영업활동을 하기도 한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통해서도 중독의 요인들이 여과 없이 홍보되고 있다.
 
특히 인터넷 게임은 어린 아이들에게 생명을 경시하고, 함부로 폭력을 쓰는 잘못된 '재미'를 제공해주면서도 나날이 번창하고 있다. 지뢰밭에 아이들을 그대로 들여보내는 꼴이 되었다. 아이 키우기가 너무도 힘든 세상이다.
 
입시에만 올인하는 교육 풍토, 거기서 낙오된 아이들은 갈 곳이 없는 사회 환경, 과외비를 위해서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 그래서 부모로부터 제대로 보살핌을 받으며 삶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 이런 것들이 악순환이 되어 아이들을 잘못된 재미에 몰아넣고 있다. 문제 해결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 큰 문제다.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가정과 학교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갈 곳 없는 청소년에게 '갈 곳'을 많이 제공해줘야 한다. 공부 같지도 않은 '공부'때문에 우리가 치러야 하는 대가가 너무 크다. 교회의 청소년 사역부터 틀을 바꿔야 할 것 같다. 교인들의 자녀들을 위한 중고등부 운영만으로 할 일을 다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교회와 가정과 학교가 술, 담배, 게임, 마약, 도박으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썩은 분유'가 든 젖병을 곳곳에서 자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정말 무섭고 소름이 끼치는 일이다.

이  의  용
장로ㆍ 교회문화연구소장ㆍ중앙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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