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 신약성경ㆍ고대신조 근거로 고백

[ 기고 ] 교회협 주최 열린에큐메니칼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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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3월 05일(금) 14:50

 

지난 2월 19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주최로 열린 에큐메니칼 신학 토론회에서 이형기교수가 발제한 내용 일부를 발췌해 게재한다. <편집자주>

주제 : WCC 중심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역사와 신학
 
2013년 부산에서 열릴 WCC 총회를 앞두고 WCC와 WCC를 통한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많은 성도들과 목회자들이 WCC와 WCC를 통한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하여 큰 오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글은 1951년 토론토 성명에 나타난 "무엇이 WCC이고, 무엇이 WCC가 아닌가?"를 소개한 다음, '에큐메니칼'이란 말의 뜻을 밝히려 한다.
 
많은 사람들은 WCC가 자유주의 신학을 추구하고, 좌경화된 사회참여 일변도로 나가며, 교회들을 하나로 묶어 '초대형교회'(a Super-Church)를 만들려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갖는다. 일찍이 1951년에 토론토에서 모인 WCC 중앙위원회는 WCC에 대한 이와 같은 오해를 불식시키고, 그것에 대한 참된 이해를 돕기 위하여 "교회, 교회들, 그리고 세계교회협의회"(The Church, the churches and WCC: the ecclesiological significance of WCC)라고 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여기에서 '교회'(the Church)란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전'과 같은 신약성경에 증언된 하나의 교회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가 고백하는 "하나의 거룩하며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를 말한다. 그리고 '교회들'은 로마가톨릭교회, 동방정교회, 성공회, 루터교, 장로교, 감리교 등 역사 속의 경험적 교회들을 말한다. 그러니까, WCC란 '교회들'의 협의체요 연합체로서 저 신약성경이 증언하고 고대 신조가 고백했던 하나의 교회(Una Sancta)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WCC는 애초부터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추구하였다. 그리하여 본 성명서는 "무엇이 WCC가 아닌가?"라고 하는 부분에서 "WCC란 하나의 획일주의적인 초대형교회가 아니고 결코 그것이 되어서도 안 된다."라는 내용을 첫 번째 항목에 놓았다.
 
이어서 본 성명서는 "무엇이 WCC가 아닌가?"에 대해 4가지 항목을 더 언급했다. 첫째로 WCC는 교회들에게 연합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기구가 아니라 그들이 그것을 자발적으로 하도록 하며, 교회들 상호 간에 생동적인 접촉을 도와주고 교회일치의 이슈들(the issues of Church unity)에 대한 연구를 추진하도록 돕는다. 둘째로 WCC는 '교회'(the Church)에 대한 어느 하나의 특수한 개념에 기초하지 않는다. 셋째로 그렇다고 WCC는 한 교파의 '교회'(the Church)에 대한 그 자신의 개념을 단순히 상대적인 것으로 취급하지도 않는다. 넷째로 WCC의 회원권은 '교회 일치'(Church unity)의 본성에 대한 어떤 교파의 어떤 특정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하지 않는다.
 
그리고 본 성명서는 "무엇이 WCC인가?"에 대해 8가지를 언급했다. 그것을 요약하면, 첫째로 WCC의 회원교회들은 "그리스도께서 몸 된 교회의 신적인 머리"라고 하는 사실에 대한 공통의 인식에 기초하여 대화와 협력과 공동증언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둘째로 WCC의 회원교회들은 신약성경에 근거해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이다."(the Church of Christ is one)라고 믿는다. 셋째로 WCC의 회원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교회의 회원권이란 자기 교파의 회원권 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라고 하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리스도의 주권"을 고백하는 모든 교파들 하고 살아있는 교제를 추구한다. 넷째로 WCC의 회원 교회들은 상호 간에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를 추구하며 그것에 관계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WCC에 회원권을 갖는다고 하는 것이 각 교파가 타 교파들을 완전하고 참된 의미에서 교회들(churches)로 간주하는 것을 함축하지는 않는다." 다섯째로 WCC의 회원 교회들은 "다른 교회들 안에 있는 참 교회의 부분적인 요소들"을 인정한다. 이와 같은 상호 인정이 없으면, 회원들 상호 간에 진지한 대화를 할 수 없을 것이고, 충만한 진리에 근거한 충만한 일치를 향하여 전진할 수가 없을 것이다. 여섯째로 WCC의 회원 교회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의 배움을 함께 추구하면서 우리 주님께서 WCC의 회원 교회들에게 이 세상을 향하여 어떠한 증언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시는가를 기쁘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 일곱 번째로 WCC의 회원들은 "회원들 상호 간에 연대(solidarity)하여 서로의 필요를 채우고 형제애와 어긋나는 행동들을 삼간다." 여덟 번째로 WCC의 회원 교회들은 "영적인 관계들을 바탕으로 상호 간에 배우고 상호 간에 도움을 주도록 노력하여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지고 교회들의 삶(the life of the churches)이 갱신될 수 있게 하여야 할 것이다."
 
WCC를 통한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교회들이 가장 염려하는 것이 교회론이요, 이 교회론으로 말미암아 WCC에 가담할 수 없는 교회들이 많은 것이 사실인데, 위의 '토론토 성명'은 이에 관하여 명쾌하게 천명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WCC가 자유주의 신학을 추구하고 세상 과격한 사회참여를 실천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WCC는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 운동이 추구하는 '복음', '삼위일체론', '교회론', '구원론', '종말론' 등을 근거로 '삶과 봉사'(Life and Work)운동으로 나가고, 하나님의 선교와 복음전도를 함께 추구하기 때문에, 결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와 같은 '자유주의 신학'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에큐메니칼이란 말의 뜻
 에큐메니즘, 에큐메니시티(ecumenicity) 및 에큐메니칼이란 단어는 희랍어 오이쿠메네(oikoumene)에서 유래하였는데, 이것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온 세상"(the whole inhabited world)이다. 희랍-로마 세계(the Greco-Roman World)에서 이 '오이쿠메네'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온 세상, 문명세계 혹은 희랍-로마 문화영역, 나아가서는 로마 제국을 의미했다. 2~3세기에 이르면 이 용어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온 세상' 속에 지역별로 흩어져 있는 세계교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되었고, 4세기에서 5세기 동안에는 지중해 세계의 보편교회를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그리하여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처음으로 325년 니케아 공의회를 제1차 '에큐메니칼 공의회'라 불렀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이후로 에큐메니칼이라는 말은 획기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즉, 그것은 교회들의 다양성 속에서의 일치를 추구하는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 운동, 교회의 사회참여에 해당하는 '삶과 봉사'(Life and Work) 운동, 복음전파와 하나님의 선교를 추구하는 '복음전도와 세계선교' 운동과, 이 세 운동의 신학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 세 운동이 WCC의 세 기둥인 바, 이 WCC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도구로서 세계교회들의 공식대표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1975년 '나이로비 세계교회 협의회'의 JPSS(A Just, Participatory and Sustainable Society ^ 하나의 정의롭고 참여적이며 지속 가능한 사회) 이후 오이쿠메네의 의미는 창조세계 보전 차원에서 온 우주를 아우르고 최근엔 타 종교들과의 대화도 포함하고 있다. 1983년 벤쿠버 WCC 총회 이래 오늘날 세계교회의 중심과제는 'JPIC'(Justice, Peace and Integrity of Creation^정의, 평화, 창조세계 보전)가 되었다.
 1990년대 이후 시장경제의 글로벌화와 정보통신의 세계화와 이로 인한 빈익빈 부익부, 환경파괴, 그리고 다문화와 다종교가 지구적인 이슈들이 되면서, 에큐메니칼 운동과 공공신학에서는 오이코노미아의 3가지 어원적인 뜻이 주목을 받고 있다. 하나는 '집안 살림살이'(oikonomia^managing of the household)요, 둘은 '생태학'(oikonomia ^ ecology), 즉 환경의 문제요, 셋은 다문화와 다종교가 함께 어우러져 거주하는 세계의 구현이다.

 

 

 

 

 

 

 

 

 

 

 

 

 

 

이형기 교수
장신대 명예교수, 공적신학연구소 소장

 

 

 

 

 

 

 

 

 

이형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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