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부터 희망이 시작되기를'

[ 땅끝에서온편지 ] < 2 > '루무노비'와 '요한 바오르 2세의 아이들' 폴란드 김상칠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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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3월 02일(화) 17:12
지구촌 최대의 홀로코스트 현장인 오시비엥침(아우슈비츠는 독일식 발음) 유대인 수용소가 크라쿠프에서 불과 60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그리고 이곳 도심 한복판에는 아직도 유대인들을 격리했던 게토의 담벼락이 남아있고 쉰들러의 공장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모두들 게토가 비인간적이며 있어서는 안 될 것으로 여기지만 사실상 게토는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 전에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양반과 천민의 사회가 사라졌다하지만 더 비참한 계급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폴란드의 민족 격리정책이라는 기사가 문제가 된 적이 있다. 6백만 명의 사람들이 현대판 게토에 갇혀 일반인과 다르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 폴란드에는 여러 군데의 게토지역(빈민가)이 있는데, 우지 시내에 있는 게토 초입에는 "여기서부터 법은 끝난다"라는 간판이 세워져 있기도 하다. 사진은 크라쿠프 시내에 있는 게토.

폴란드의 청소년을 두 부류로 나눈다면 게토지역에 살고있는 '루무노비'(하얀 피부를 가진 흑인)와 보통 청소년으로 나눌 수가 있다. 폴란드에는 아직도 이러한 게토가 여러 군데 존재하고 있다. 그중에 가장 심각한 것은 우지 시를 들 수 있는데 우지 시내에 있는 이들의 거주지 초입에는 "여기서부터 법은 끝난다"라는 간판이 세워져 있어 경찰의 공권력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무법지대이다. 이들은 사회보장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며 소망이 없이 하루를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주로 마약 밀매와 도둑질을 하며 마약(우리나라 돈으로 1천원 안팍이면 마약을 구할수 있으며 주문시 피자보다 빨리 배달이 된다)과 알코올에 중독되어 살아가고 있다.

사진으로 두 부류 젊은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눈빛부터가 다르다. 이 두 청소년들이 서로 마주칠 수 있는 것은 평생에 2번이라고 한다. 첫 번째의 만남은 슬럼가에 살던 아이가 금품을 강탈하기 위해서 접근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경찰서에서 조서를 작성하기 위해 대질하는 경우라고 한다. 폴란드 정부와 가톨릭교회에서는 이들에 대한 대책을 마땅히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여러 선교단체에서 체육활동을 위한 재활교육을 연구하며 실시하고 있을 뿐이다.

반면 크라쿠프를 중심으로 마워폴스카 지역의 일반 청소년들은 '요한 바오르 2세의 아이들'이라는 별명을 얻고 있는데, 이들의 대부분은 고등학생들로 기본적으로 2~3개의 외국어 실력을 갖추고 올림피아드 대회의 입상과 재학 중 해외로 교환학생을 나가며, 오케스트라 단원의 일원으로 기본적인 악기를 다룰 줄 알고 교외생활에서도 자신의 관심분야에 전문적인 지식과 실력을 쌓아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유럽연합에도 자신들의 의견을 내세울 정도로 촉망받고 있다.

폴란드의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들이 극과 극을 달리고 있는 현 상황에서 폴란드의 교회들은 어떻게 해야 민족격리정책이라는 게토를 무너뜨리고 이들을 하나로 묶어야 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으로 매우 힘들어 하고 있다. '98%가 가톨릭 신자인 폴란드에 선교사가 왜 필요한가?'라며 선교 자체를 부인하는 가톨릭교회의 목소리 뒤에는 이런 아픔이 감추어 있다. 반면 아직 0.5%도 안 되는 개신교회들의 외침이 EU통합 이후 서서히 커지고 있는 시점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을 세워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더욱 커져가고 있다. 아직도 귀족 문화가 생활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폴란드에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보이지 않는 게토가 허물어지길 기도한다.

우리 자녀들이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도구를 습득케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선행되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자녀들의 심장 속에 그리스도의 심성을 심어 복음주의자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히틀러와 빌리 그래함을 보자. 똑같이 청중을 사로잡는 웅변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빌리 그래함은 교회의 대부흥과 영적 각성을 이루어낸 반면 히틀러는 민족과 세계인류에 절망을 뿌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좋은 도구를 취했을지라도 그리스도의 뜻대로 살지 못하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아픔과 고통을 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치 경제의 자립과 소수의 능력자보다 다수의 소외된 이들을 먼저 돌보고 이들의 편에 서서 함께 하는 폴란드 교회가 되도록 강력한 기도의 동참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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