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6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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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2월 25일(목) 11:29

월-죄 사함 받고 은혜입은 자
본문: 삼하 12:7-15
찬송가: 274장(구 332장)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 아는 은밀한 죄가 있다. 문제는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안에 죄가 있음을 인정하려고 하지도 않고 또 알면서도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께 은혜를 입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부족함이 없이 채워주셨다. 그러나 그에게는 자신만이 아는 은밀한 죄가 있었다. 헷사람 우리아를 암몬자손의 칼에 죽게 하였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자기 아내로 삼았다. 살인죄와 간음죄를 은밀히 행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그의 죄를 지적하셨다. 그러자 그는 자기 안에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였다고 고백하였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고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죄가 없어서가 아니다. 그에게도 드러나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치명적인 죄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해서 입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앞에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 앞에 자기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성경은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다"고 했다(시편 32:1).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고 하였다(요일 1:9).
 
사순절 기간이다. 하나님 앞에 자기 죄를 통회하고 자복하는 사람이 되어 죄 사함을 받고 은혜를 입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은혜로우신 하나님 통회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오니 우리 안에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자가 되고 은혜를 입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 명 철 목사
서농교회 시무


화-예수의 흔적을 가지라
본문: 갈 6:14-17
찬송가: 451장(구 504장)

사람은 살아가면서 여러가지 흔적을 갖는다. 한 예로 배가 나온 것은 좋은 흔적이 아니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여성이 자신의 몸매를 가장 자랑스럽게 여길 때가 임신했을 때란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내 몸에는 예수의 흔적이 있다"고 했다. 사도 바울은 바리새파요,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한 사람이요,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오직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자신의 몸에 예수님의 흔적이 있음을 자랑했다.
 
사실 십자가는 자랑의 대상이 아니다. 저주와 멸시의 대상이다. 그럼에도 바울이 십자가를 자랑스럽게 여긴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십자가는 구원, 생명, 은혜, 용서, 죄 사함, 평안과 복이 있다.
 
그런데 유감인 것은 오늘날 교회에 이 십자가에 대한 자랑이 없다. 교회 건물에 대한 자랑, 수양관에 대한 자랑, 자식 자랑, 성공한 남편에 대한 자랑만 있다. 왜인가? 십자가의 삶이 없으므로 예수의 흔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사형 선고를 받기도 하고,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주리고, 춥고, 헐벗었다. 무엇때문인가? 예수님 때문에, 복음 때문에,  영혼구원 때문이었다.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아도 되지만 예수님 때문에 참고 억울함을 당해 본 일이 있나? 세상 사람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너희가 예수를 믿느냐 그러면 예수의 흔적을 보여 보라!"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예수의 흔적을 가지고 그 흔적과 십자가를 자랑해야 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웃을 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십자가의 삶을 살아 예수님의 흔적을 갖겠습니다. 우리 삶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며, 주님에게 나오는 역사가 있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 성 묵 목사
신점교회 시무


수-하나님의 복
본문: 시 128:1-6
찬송가: 380장(구 424장)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자기 백성, 즉 택한 백성들을 사랑하신다. 아무나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을 사랑하셨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다 축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을 축복하는 것이다(사43:1). 하나님이 친 백성에 주시는 복이 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생업의 복을 주신다(시128:2). 손이 수고한 데로 먹는 것이 생업의 복이다. 땀 흘리면서 밤새도록 고생하고 손으로 일을 했는데 마지막에 부도 맞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수고한 데로 먹는 것이 복이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정의 복, 곧 가정의 행복을 주신다(시128:3). 하나님의 백성에게 신앙의 복,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는 복을 주신다(시128:5). 하나님의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신다(시128:6). 하나님은 평강의 복을 약속하셨다. 평강은 형통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택하신 자신의 백성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시며 복의 하나님이시다. 우리들 모두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고 살아야 한다. 그러나 진정한 복은 바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다. 이런 영적인 복을 누리며 살 때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복도 자연히 따라오게 된다(요삼1:3).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아서 영적인 복과 육체적인 복과 물질적인 복까지 모두 누리며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란다.

오늘의 기도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삼아 주시고 복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도와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과 예배와 감사가 진정한 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잊지 말게 하시고 눈에 보이는 복 이전에 하나님 자신을 먼저 구하는 하나님의 복된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장 향 희 목사
든든한교회 시무


목-쉴만한 물가
본문: 시 23:1-6
찬송가: 568장

오늘 우리는 참으로 쉴만한 곳이 어디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시인 다윗은 "그가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렇다면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는 어디일까?
 
인적이 닿지 않는 아프리카 밀림인가? 아니면 남태평양의 어느 섬인가? 아니다. 시편23편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다"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그러니까 시인의 노래는 하나님이 나의 푸른 초장이시며 쉴만한 물가라는 것이다.
 
마태복음 11장 28절을 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의 뜻은 내가 곧 쉴만한 물가라는 것이다. 음악의 악보를 보면 쉼표가 있다. 쉼표의 모양에 따라 길게 쉬는 것도 있고, 짧게 쉬는 것도 있다. 숨을 쉬지 않고 계속해서 노래를 부를 수는 없다.
 
운동경기도 반드시 게임 중간에 휴식시간이 있다. 고속도로를 달릴 때에도 중간 중간에 휴게소가 있어서 운전자들이 쉬어갈 수 있게 한다. 인생행로에도 당연히 쉼표나 쉼터가 필요하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쉴만한 물가이며 푸른 초장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이지만 예수님의 품안에서 하나님의 참된 쉼을 누려 사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드린다.

오늘의 기도

나의 참된 목자가 되시는 주님! 하루 하루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고난앞에서 지쳐 힘들 때마다 주님품안에서 참된 쉼을 얻고, 새 힘을 얻어 오늘도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 종 호 목사
영광교회 시무


금-곤고한 날
본문: 전 7:14
찬송가: 487장(구 535장)

인생을 살다보면 형통한 날이 있는가 하면 곤고한 날이 있다. 하나님은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셨다. 오늘 본문에 보면 "곤고한 날에는 뒤돌아 보아라"고 하였다. 여기서 '곤고하다'는 말은 '고통스럽고, 힘들고 어려운 형편'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하는 곤고한 날은 어떤 때인가? 첫째, 삶에 기쁨이 없는 때이다(전 12:1). 곤고한 날은 바로 낙이 없는 날이라고 전도서의 저자는 말하고 있다. 둘째, 큰 시험으로 고통을 당할 때이다. 시험을 당하는 그 자체가 곧 곤고한 것이다. 셋째,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내려지는 때이다. 소돔과 고모라성의 경우에서 그 사실을 찾아 볼 수가 있다.
 
그러면 우리는 곤고한 날에 어떤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할까?

첫째, 곤고의 원인을 깊이 생각하고 자신을 반성해야 한다. 곤고함이 찾아올 때 그것이 자신의 죄 때문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려는 삶의 자세 때문인지 깊이 사색해야 한다. 만일 죄 때문이라면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 때문이라면 강하고 담대하게 그 곤고함을 이겨 나가야 한다.
 
둘째,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다윗은 어려운 환경에 처하였을 때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을 찾았다.
 
셋째, 새로운 결심을 해야 한다. 요나는 곤고한 날에 그렇게 가기 싫어하였던  니느웨로 갈 것을 결심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결심을 한 요나를 하나님께서는 곤고함에서 일으켜 주셨다.
 
곤고한 날일수록 자신을 반성하고 하나님을 찾자. 그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강하게 이끌어 주실 것이다.

오늘의 기도

인생으로 하여금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신 하나님! 곤고한 날일수록 회개하고 하나님을 찾게 하옵소서. 내 생각 내 뜻을 버리고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겠다고 하는 새로운 결심을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권 상 석 목사
새한교회 시무


토-내 안에 거하라
본문: 요 15:7
찬송가: 370장(구 455장)

사람은 어디에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님을 몇 년 믿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믿었는가'가 중요하다. 직분이 아닌 '어떻게 섬겨 왔는가'가 중요하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항상 기억하고 삶 속에서 복음의 빛을 비추는 사람이다.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또 일터와 가정에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고 하셨다. 이 말씀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적 실패를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위한 구원 계획안에서 유대 민족을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고 좋은 열매를 맺기를 원했으나 들포도를 맺었다고 하였다(사5:2). 이러한 타락한 이스라엘 민족을 들포도에 비교하면서 예수님은 "나는 참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7절에서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관계의 회복이다. 가지 없는 포도나무는 무용지물이요, 포도나무에 연결되지 않는 가지는 버릴 수밖에 없다.
 
열매 맺는 가지는 나무에 붙어 있다는 증거이다. 이는 생명적 관계이다. 열매로 나무를 안다. 나무나 열매는 질적으로는 같은 것이다.
 
가지에 맺히는 열매로 그리스도인 됨을 확증하고 그리스도인의 생명이 있음을 나타낸다. 열매는 가지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이 주님을 닮지 못하여 믿음의 덕을 끼치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이제 우리의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서 주님 안에 거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과 나와의 관계가 말씀 안에서 회복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안 주 훈 목사
중랑제일교회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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