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 과학신학의 뜨거운 감자, 진화론과 창조론

[ 최근신학동향 ] 최근 신학 동향 2. 과학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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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2월 24일(수) 14:43

필자가 대학원 시절 물리학도로서 기독교에 귀의했을 때 가장 곤혹스러웠던 한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창세기 1장이었다. 물리학에서는 빅뱅으로 시작해서 약 1백50억년에 이르는 우주의 진화를 말하는데, 창세기에서는 세상이 단 6일 만에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문제로 인해 오랫동안 극심한 혼란을 겪어야했다. 이 문제는 누구보다 순수과학을 전공하는 신앙인들에게 심각한 것이다. 물리학도가 빅뱅 우주진화론을 배격하거나, 생물학도가 다윈의 진화론을 배격한다는 것은, 전공분야에서 이단을 자초하는 것이다. 과학이 방대하고 다양하듯이 과학신학의 주제 역시 다양하지만, 논란이 큰 이 문제를 살펴보자.

창세기 1장은 인간 중심으로 세계가 창조되었다고 해석될 수 있다. 이 해석에 근거한 뿌리 깊은 인간중심주의를 뿌리째 흔들어놓은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다. 하나는 17세기 초 갈릴레이에 의한 지동설의 확증이고, 또 하나는 19세기 다윈의 진화론이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인간이 단세포생물로부터 진화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이 더 할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 지금은 당연시되는 지동설은 갈릴레이 재판이란 해프닝을 거쳐야했다. 하지만 그 충격은 다윈의 진화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윈은 5년 동안이나 비글호를 타고 세계를 누비면서 방대한 생명체들을 관찰했고, 이를 근거로 장장 20여년에 걸쳐 '종의 기원'(1859)을 저술했다. 모든 생명체들은 변이와 자연선택의 법칙에 의해 진화되었다는 것이다. 근데 문제는, 인간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과학신학의 가장 뜨거운 감자가 등장한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이 단세포생명체로부터 진화되었다는 말인가? '하나님의 형상'이 '동물의 형상'으로 전락되었다. 다윈 당대부터 현재까지 진화론에 대한 기독교계의 격렬한 반응들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다. 아니 당연한 것이다. 정말 이상한 것은, 다윈 시대부터 기독교계에서도 진화론을 무리 없이 받아들인 사람들도 많았다는 사실이다. 기독교계가 일사분란하게 진화론을 거부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진화론으로 기독교계는 양분되었으며, 진리 규명의 차원을 넘어 감정싸움의 양상으로까지 전개되었다. 현재 세종시 문제를 둘러싼 여당의 양상과 비슷하다.

진화론을 거부하는 기독교인들은 창조론과 진화론은 양립될 수 없다고 본다. 이런 입장을 '창조주의(creationism)'라고 한다. 여기서 '창조주의'와 '창조론'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했다는 '창조론'은 어떤 기독교인들도 거부할 수 없는 교리를 말하고, '창조주의'는 창조론에서 진화론을 배격하는 해석을 말한다. 창조주의에도 다양한 입장들이 있다. 대표적인 '젊은 지구론'은 창세기 6일 창조의 하루를 24시간으로 보면서 진화론을 배격한다. 반면 진화론을 수용하는 기독교인들은 창조론과 진화론의 조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창세기 1장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자체모순에 빠진다고 말한다. 해와 별이 4일에서야 창조되었는데, 6일 창조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고 반박한다. 따라서 6일 창조는 상징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이 창조론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들 역시 만물의 근원은 하나님이라고 믿는다. 다만 진화를 하나님 창조의 방편으로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입장을 '진화론적 창조론' 혹은 '유신론적 진화론'이라고 한다.

현재 미국 교계에서 남침례교와 같은 보수교단은 진화론을 강하게 배격한다. 하지만 중도ㆍ진보성향의 교단인 미국장로교, 연합감리교 등에서는 진화론적 창조론이 주류를 이룬다. 가톨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교황칙령에 의해 진화론적 창조론이 공식화되어 있다. 반면 한국 교계에서는 창조주의가 주류이며, '창조과학회'가 앞장서고 있다. 하지만 한국교회사를 보면 선교사들에 의해 진화론적 창조론이 이미 오래전에 소개되었으며, 현재 한국에서도 이런 담론이 태동되고 있다. 창조과학을 과학이라고 볼 수 있는가? 진화론과 같은 과학이론을 신앙의 잣대로 판단할 수 있는가? 진화론적 창조론에서 '하나님의 형상'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실로 과학신학의 뜨거운 감자가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첨예한 갈등 속에서, 주류 과학신학이 지향하는 방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과학과 신학 각각의 전문성 추구(아마추어리즘 배격), 둘째 과학과 신학 각각의 다양성 인정, 셋째 겸허한 과학, 겸허한 신학이다.

문영빈교수/서울여대 ㆍ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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