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라카미 선교회' 이성상 이사장

[ 아름다운세상 ] 인도차이나반도 선교 헌신, "생이 마감하는 날까지 선교에 매진" 포부

신동하 기자 sdh@pckworld.com
2010년 02월 18일(목) 09:58
   

▲ 이성상장로는 비라카미선교회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교회만 1백37개를 신축하거나 재건했다.
이성상장로 뒤에 신축하거나 재건한 교회와 병원의 사진판이 보인다.

【대구=신동하기자】10여 년 간 인도차이나 반도를 중심으로 교회 1백37개를 신축하거나 재건하고, 병원 11개와 신학교 1개를 세운 선교회가 있다.
 
비라카미선교회의 성적표다. '선교 기네스북'이 있다면 등재될 정도다. 그렇다고 무조건 세우고 보는 '숫자놀음'에 불과한 것이 아닌, 계속적인 지원에 따라 교회와 기관마다 속이 알차다. 교회와 신학교를 통해 무수히 많은 기독교 인재들이 배출됐고, 병원은 약자가 나음을 받는 '여호와 라파'의 현장이다.
 
비라카미는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의 알파벳(VIㆍLAㆍCAㆍMY)에서 따왔다. 말 그대로 인도차이나 반도에 속한 4개국을 선교 거점으로 하고 있다.
 
오늘날의 선교회가 있기까지는 창립을 주도하고 현재 이사장으로 활동 중인 이성상장로(대구 목양교회)의 역할이 크다. 그를 대구 태평로에 위치한 선교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 장로는 올해 85세의 고령. 하지만 도저히 나이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목소리는 카랑카랑 힘이 넘쳤고, 인터뷰 내내 자세는 흐트러짐 없이 꼿꼿했다.
 
기자를 만나는 날, 이 장로는 출근길 사람이 붐비는 지하철을 이용해 약속장소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검소한 생활습관으로 택시는 거의 타지 않는다. 지하철에 내려서도 노약자용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를 통해 출구로 나온다. 계단을 이용하는 이유는 선교활동을 위한 나름의 건강관리 노하우라고 설명했다.
 
"인도차이나 반도에는 1억6천만명의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가난과 우상이 만연했던 우리의 과거를 떠올려 봅시다.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축복의 땅으로 변모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이제 그 빚을 갚아야지요."
 
선교회는 1998년 조직된 후 교회 개척에 주력하다 2000년 베트남에 신학교를 세우며 선교 범위가 넓어졌다. 이후 현재까지 교회 개척과 의료선교, 지도자 양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 최근에는 비라카미 지역의 청년들을 한국으로 데려와 신학공부를 시키는 것과 구순구개열 환자들에게 무료수술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신학교를 거쳐간 학생들만 약 4백명 정도. 이들은 선교회가 개척한 교회로 파송되거나 여러 사역 현장에 투입돼 활발하게 목회활동을 하고 있다.
 
이 장로는 "지금은 상황이 나아졌지만 베트남에 신학교를 세울 당시만해도 선교가 자유롭지 않아 어려움이 많았다"고 신학교 설립 당시를 회고했다.
 
   
▲ 2009년에 진행된 비라카미 신학교 졸업식 모습. 그동안 4백여 명의 졸업생이 배출됐다.
/ 사진제공 비라카미선교회

선교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많다. 교회 입당예배는 새벽에 조용히 치뤄야 했고, 신학교 졸업식도 공안기관의 감시가 소홀한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 장로는 "새벽녘에 말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예배를 드릴 때면 눈물이 나기는 하지만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이 절로 나온다"고 말했다.
 
선교 후원금은 이 장로의 발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많다. 이 장로는 틈나는대로 교회와 독지가를 찾아 인도차이나 선교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모금을 하고 있다. 그에게는 후원자 하나하나가 귀중한 동역자이기에 경조사를 챙기는 것은 기본이고 정기적으로 그들을 찾아다니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다.
 
이 장로 개인적으로도 후원액이 상당하다. 그의 가족들은 교회 3개와 병원 1개를 세웠다. 그러나 그의 선교 열정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다. '오른손이 할 일을 왼손이 모르게' 진행해 왔기 때문이다. 지인들을 통해 1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야 사역이 알려졌다.
 
근래에는 그의 예언자적인 선교안목이 선교회 동역자들에게 회자되고 있기도 하다. 선교회 활동 초기에는 베트남 경제개발이 빠르게 진행되던 시기. 이 장로는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을 예상하고 부지를 확보해 두는 지혜를 발휘하기도 했다. 그 예견은 지금 들어맞았다.
 
그의 선교 열정은 '아직도 목마른' 상태.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선교회와 동역자를 위한 기도를 하루도 빼놓지 않는 그는 선교 범위를 지금보다 넓히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인터뷰 말미, 기자가 우문을 던졌다. '언제까지 선교에 헌신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생이 마감하는 날까지 아니겠냐"고 단호하게 말했다. 숙연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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