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봉산 움막에 맺은 기도의 열매

[ 나의삶나의신앙 ] <1>이신수장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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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2월 04일(목) 10:19
   
내 신앙의 본적지는 경상남도 거창군 고제면 봉산리다. 나는 4살부터 중 3때까지 어린시절을 조부모와 함께 보냈다. 봉산교회 목회자였던 조부는 '믿음을 지켜라'라는 뜻으로 내 이름을 '신수(信守)'라고 지어주셨다. 조부모는 교회를 지키며 신앙을 사수하다가 6남5녀 중 6명의 자녀를 북한 인민군에 의해 잃고 아버지를 제외한 나머지 자녀들을 전염병으로 잃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토록 강건한 신앙의 소유자였던 할머니마저도 심장병을 얻었을만큼 고통은 컸고, 나는 어느새 손이 귀한 집안의 장손이 됐다.

야곱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을 불렀던 것처럼 나는 '조부모의 하나님'으로부터 '나의 하나님'을 만났다. 한국교회 초기 선교사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된 할머니(백계순)는 제일 먼저 할아버지를 전도하셨고 시부모를 비롯, 전통적인 사대부집안 전체를 복음화했다. 할머니가 전도한 8천명 중 1천명이 후에 목회자가 됐다.

어린시절 나의 침실은 기도움막이었다. 할머니는 토요일과 주일을 제외하곤 매일 삼봉산에 오르셨다. 5살이 되던 해, 나는 할머니의 망태 속에 업혀 산기도를 시작했다. 할머니는 저녁 8시쯤이면 산에 올랐고 3시경 내려와 곧장 새벽기도에 갈 채비를 하셨다. 눈이 무릎위까지 쌓인 날에도 절대 산기도를 멈추지 않으셨다. 장례식때 할머니의 관위에는 '기도의 여왕'이라고 수놓인 붉은 천이 덮여졌다. 봉산교회는 리모델링시에도 할머니가 기도하던 강대상 상판을 그대로 보존했다. 지금도 그곳에 가면 눈물콧물이 얼룩진 할머니의 기도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할아버지가 지어준 기도움막의 문은 가마니로 만들어져 있었고 바닥에는 갈대, 풀위에 가마니, 방석이 깔려있었다. 할머니 무릎을 베면 나는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 세상에서 가장 안락한 침실에서 "조선의 신수를 하나님이 기뻐받으시는 종으로 받아달라"는 할머니의 기도소리를 자장가 삼아 날마다 단잠을 잤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게 철이 들기도 전에 조물주 하나님을 섬기는 습관, 기도의 습관을 깨우치게 하셨다. 따뜻한 집안, 안락한 방바닥을 뒤로한 산행길, 어린 나는 한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그때는 그것이 당연한 일인줄 알았다. 덕분에 다른 말보다 "주여, 하나님, 예수님"이란 말을 먼저 배웠다. 할머니의 유언도 "주여, 주여, 주여" 세마디였다. 의식을 잃으셨던 할머니는 세차례 간절히 '주(主)'를 부른 뒤 환한 광채의 얼굴로 부름을 받으셨다. 잉꼬부부였던 조부는 정확히 3백64일 후 부름받아 김해 소재의 교회 공묘지에 합장을 해드렸다.

한번은 거창군내 전 국민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음악콩쿨이 있었다. 당시만해도 지극히 내성적이었던 나는 현제명선생의 '그집앞'을 부르기로 하고 대중앞에 설때 떨지 않게 해달라고 할머니와 함께 기도했다. 그 기도를 마치고 할머니가 나를 "사무엘같이 바친다"는 서원기도를 하셨던 기억이 난다. 드디어 당일, 예전같았으면 사시나무 떨듯이 떨었을 내가 그날은 이상하리만큼 담대했고, 나도 모르게 "하나님 감사해요, 기도들어주셔서 감사해요"라고 기도했다. 결과는 1등. 기도에 응답해주시는 하나님과의 인상적인 첫만남이었다.

지금은 어엿한 사업가가 됐지만 사실 40대 후반이 되도록 목회자의 소명을 두고 고민하기도 했다. 말씀이 꿀처럼 달고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린시절 할머니의 서원기도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은 주어진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의미를 발견하고 있다. 4년전부터는 부산 극동방송 'QT로 여는 하루'를 통해 말씀을 나누며, 어느덧 고정팬들도 생겼다. 사회적 신분에 매이지 않고 대중앞에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이 신선했던 모양이다.

삼봉산 기도움막에 뿌려졌던 기도 씨앗의 열매를 나는 지금도 따먹고 있다. 그렇게 삶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조부모가 남겨주신 기도창고의 덕을 톡톡히 봤다. 아시아 최초 경비행기 제작의 꿈을 이루게 된 것도, 투자를 결정받기까지 험난했던 과정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기도에서 비롯됐다. 오랜 제련(製鍊)의 시간을 거쳐 이제는 선조의 자녀들을 위한 기도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믿게 됐다. 남은 생애, 그런 하나님을 자랑하고 싶다.

부산북교회ㆍ(주)SKAI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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