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도시 다소

[ 연재 ] 사도바울행전I.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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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2월 03일(수) 16:16

바울이 출생한 다소는 길리기아 평야 중심에 위치하였고, 헬라화한 소아시아와 셈 어족(바벨론어, 앗수르어, 히브리어, 아람어 등)인 시리아를 이어주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다소의 주민은 헬라인과 시리아인 및 유대인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학문이 성행하여 스토아 철학이 보편화돼 일상 회화에서 인용될 정도로 주민들의 지적 수준이 높았다.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순리와 역리"(롬 1:26), "합당한 일"(롬 1:28), "양심"(롬 2:15) 등의 용어를 쓰고 있는데, 이 말들은 스토아 철학에서 흔히 쓰던 것들이다.

바울 당시 스토아 학파의 저명한 철학자 아테노도로스는 이미 죽은 후였으나, 그가 끼친 감화와 영향은 다소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J. 해스팅이 편찬한 사전에 따르면 다소는 그 당시 대학 도시로 유명하였다. 아테노도로스의 뒤를 이은 네스토르도 또한 아카데믹한 학풍으로 유명하였다. 그는 로마 황제가 친히 임명한 학자로서, 다소 대학에는 그를 따르는 학생들로 북적거렸다.
   
▲ 다소에 있는 로마시대 목욕탕 유적.

이와 같은 환경에서 태어나서 자란 바울은 헬라어에 능숙하였고, 헬라 문화에도 익숙하였다. 그가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이방 세계에 전도할 수 있던 것과, 능숙하게 헬라어를 말하고 쓸 수 있던 것은 이와 같은 환경에서 자라났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바울의 편지에 헬라인 저자의 작품 속 구절이 심심하지 않을 정도로 인용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고전 15:33). 헬라의 희극 시인 메난드로스(주전 342~291)의 말. "너희 시인 중 어떤 시인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행 17:28). 여기서 말하는 시인은 헬라의 아라토스(주전 315~240).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행 26:14). 헬라의 비극 시인 에우리피데스(주전 485~406)의 말.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딛 1:12). 주전 6세기 헬라의 종교가 에피메니데스의 말.

이 무렵에 바울은 헬라인의 경기인 권투와 달리기를 흥미롭게 보았던 듯하다. 단지 구경만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경기에 참가한 듯한 말투로 표현한 구절들이 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고전 9:26~27).

바울은 훗날 헬라적인 경기에 빠졌던 것을 후회하여,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롬 7:9)라고 반성하는 투의 발언을 하였다.

바울이 젊은 날 고향 다소에서 배우고 터득한 헬라적인 교양은, 훗날 그가 예루살렘에서 랍비의 제자로서 배운 유대교의 교양에 가려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바울이 자라난 헬라적인 환경과 그가 젊은 날에 배운 헬라인의 학문과 교양을 제거해 버린다면, 훗날 그의 "이방인의 사도"(롬 11:13)로서의 사명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김희보/목사ㆍ서울장신 명예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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