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5~30일

[ 가정예배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0년 01월 21일(목) 10:44

월-새 것이 아닌 새 마음
본문: 고후 5:17-19
찬송가: 192장

사람들은 새 것을 좋아한다. 새 마음, 새 사람, 새 삶을 살기 원한다. 그러나 새 것이라고 하는 순간 이미 그것은 새 것이 아니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 새 핸드폰, 새 자동차일지라도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곧 구형이 되어버리는 시대다. 그래서 새 것에서 만족과 즐거움을 누리고 싶지만 기대감, 만족감은 이내 사라지고 만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새로워질 수 있을까?
 
사울이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으로 지명되어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을 때였다. 사실 열두 지파 중의 가장 작은 지파요, 베냐민 지파 중에서도 가장 보잘 것 없는 집안인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울은 어느 지파, 어느 누가 자기를 왕으로 인정해 줄 것인가로 전전긍긍하였다. 그렇게 전전긍긍하며 기름부음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울에게 하나님께서 새 마음을 주셨다고 한다. 그렇다. 새 것이 아니라 새 마음이 옳다. 그 새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라고 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다고 한다. 새 것이라 함은 회복을 말한다. 사람들은 처음 마음을 잃어버리기 쉽다. 그래서 새롭다는 것은 변질된 처음 마음, 좋은 생각, 뜻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다. 근데 성경은 그렇게 새로워 지는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다고 말한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5장 19절은 하나님과 화해를 하라고 한다. 하나님과 화해하여 날마다 새로워 지시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눈에 보이는 새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화해하여 마음이 새로워지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오늘 이 시대가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만 빵으로가 아니라 말씀의 은혜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안 홍 택 목사
고기교회 시무


화-그리스도의 향기
본문: 고후 2:14-17
찬송가: 299장(구 418장)

모든 사람은 각기 자신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향기가 있다. 내게서 풍기는 냄새에 따라서 사람들이 몰리게 된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술 친구들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음악을 즐기는 사람이 모인다.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하지 않더라도, 향기를 뿜는 사람은 주변의 사람에게 영향력을 전달한다. 그러므로 내 주변에 모여 있는 사람이 어떠한가를 살펴보면 자신의 모습을 거울처럼 확인할 수 있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함으로 예수님의 향기를 발하는 사람이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나타내거나 드러내지 않고 그리스도를 높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증거되는 일에만 전력하였다. 따라서 바울 주위에는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어만 갔다. 이 복된 소식을 받는 사람들마다 구원함을 받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로워졌다. 바울을 만나는 자마다 예수님의 향기로 인해 복된 자가 되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는 자는 또 다른 그리스도인을 양성하게 되며, 축복의 통로의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향기는 감추려 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예수의 향기를 가진 자는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전달한다. 사망에 있는 사람을 생명으로 이끌고, 실패에 허덕이는 사람을 성공으로 이끌게 된다. 이 능력은 나의 능력이 아니다. 단지 예수님의 향기의 능력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이다.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 사랑한다면 그 생명의 향기는 더 진해진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전하는 향기로운 삶을 살아가시길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 오늘도 은혜의 향기, 생명의 향기를 뿜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내 주위에 힘들고 지친 자에게 예수님의 향기를 뿜어 참된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 현 대 목사
주내교회 시무


수-아브라함의 이삭
본문: 창 22:14-19
찬송가: 220장(구 278장)

우리가 아브라함을 이야기할 때 걸려들기 쉬운 덫이 율법적인 사고이다. 율법적인 사고란 인과율의 법칙에 얽매이는 생각이다. 결국 도달하게 되는 것이 책임론이고, 아브라함의 행동으로 자기 책임을 다 해냈을 것이라는 예단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
 
아브라함은 우리와 생각이 달랐고 기준도 달랐고 행동도 달랐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르에서 떠나라 하시니까 한 달음에 떠났고 가나안으로 가라 하시니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갔을까? 그렇다면 우리 앞에 서 있는 아브라함은 우리와는 의식과 행동이 다른 한 초인의 모습일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보여주시려는 것은 결코 초인의 모습이 아니다. 하나님께선 오히려 자신의 기준과 판단을 포기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셨고 새 이름을 주신 후에도 늘 곁에 계시며 길을 일러주시고 함께 걸어가기를 원하셨다.
 
그뿐 아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중심에 두고 보지만 하나님이 중심에 세워주신 것은 이삭이었다. 그의 복과 창성과 믿음의 길은 모두 중심의 이삭을 향해 전개된다. 이삭이 인류 구원의 핵심이요 정점인 예수 그리스도를 표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아브라함의 행동이 아니라 믿음이요 그 자신이 아니라 이삭이다.

우리 삶에도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에 계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틈에 자신이 중심이 되고 만다.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베드로나 모두 자신은 포기되고 하나님의 은혜만 남아야 한다. 우리의 영웅들은 자신의 헌신 때문이 아니라 부어주신 은혜로 된 사람들이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기쁨과 소망이신 주님. 우리 입술의 찬양을 받으시고 뜨거운 가슴을 받으소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목표로 산 것처럼 주님만을 바라며 살기 원합니다. 우리 작은 손을 들어 쓰시고 발걸음을 인도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장 석 연 목사
서원경교회 시무


목-깨어지는 삶을 살자
본문: 요 6:16-21
찬송가: 432장(구 462장)

존 디 록펠러는 석유로 큰 부자가 됐다. 변동된 자산가치로 따지면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게이츠보다 5배는 부자였다고 한다. 그는 33세에 백만장자가 되었고, 43세에 세계최대의 단일회사인 스탠다드 오일의 사장이 되었고, 53세에 세계최초의 억만장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나이 53세되던 해에 머리털과 눈썹이 빠지고, 피부가 말라가는 알로페키아란 병에 걸렸고, 1년 뒤에 죽을 것이라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병마와 싸우던 어느 날 밤에 그는 간절히 기도하였고, 긴 밤의 기도를 거쳐서 새벽에 이렇게 외쳤다. "돈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동전한푼도 다음 세상에 가져갈 수 없구나! 하나님이 모든 것이시다." 그는 새사람이 되었고, 그의 평생에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살기로 작정하였다.
 
그는 십여개의 대학을 세우고, 5천 개 가까운 교회를 세우고, 록펠러재단을 만들어 페니실린을 개발하고, 뉴욕시민을 위하여 상수도제단을 만들어 영원히 뉴욕시민의 물값을 지불해 버렸다. 그는 98세까지 살았다. 위기의 삶이 새로운 록펠러를 만들었다.
 
예수님의 열두제자처럼 우리는 인생의 항해에서 풍랑을 만난다. 그때에 예수께서 오셔서 배에 오르시니 풍랑은 잔잔하게 되고, 배가 그들이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었다. 열두제자들도, 록펠러도 삶이 깨어지는 위기의 순간에 예수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복된 길을 걷게 된다. 삶이 깨어지는 자리에서 인생의 항해길에서 선장이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라.

오늘의 기도

우리 인생의 주인 되신 하나님이시여! 내 인생의 항해길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내 인생의 선장님이 되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노 창 영 목사
개봉교회 시무


금-믿음으로 삽시다
본문: 마 8:5-13
찬송가: 542장(구 340장)

어느 술집 주인이 같은 건물에 있던 교회를 고발하여 목사님이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게 되었다.
 
이유인즉 불이 나서라도 문을 닫게 해달라고 교회가 기도했기 때문에 손해를 배상해 달라는 것이었다. 목사님은 "우리가 그렇게 기도했다고 불이 나겠느냐? 억지 소리하지 말라"고 하자 경찰관이 "목사님보다 술집 주인이 더 믿음이 좋네요"라고 말했다. 우리의 이중적인 믿음을 풍자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일 것이다.
 
오늘 본문에 나오고 있는 백부장은 로마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감동시킨 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제자들은 "너희가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라는 책망을 종종 들었는데 이 사람은 이방인이면서도 칭찬을 듣고 기적을 경험하였다. 본문 말씀은 믿음의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그 순위가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가버나움의 백부장은 자기 안에 있는 믿음을 믿음의 말과 행동으로 나타내었고 예수님은 그것을 칭찬하셨다.
 
그가 뭐라고 했는가?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주님의 말씀에는 권세가 있지 않습니까?"
 
참으로 놀라운 고백이 아닐 수 없다. 여러분에게 믿음이 있는가? 그렇다면 믿음의 말과 행동을 하라. 거기에서 기적과 축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우리의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 백부장과 같은 믿음으로 구하면 주께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승리하게 하시고 간증하게 하실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염려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살아 가자. 반드시 모든 일에 승리하게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믿음으로 구원받게 하시고 믿음으로 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가운데 항상 함께 하시고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 인 채 목사
동해교회 시무


토-무엇을 드시고 있습니까?
본문: 벧전 2:1-3
찬송가: 430장(구 456장)

성경은 먹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다. 창세기의 선악과로부터, 출애굽의 만나, 엘리야의 물 한병과 숯불에 구운 떡,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먹거리 이야기가 나온다. 심지어, 예수님은 종말을 맞이해야 하는 성도들이 마음의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20)"고 말씀하실 정도로 먹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신다.
 
서양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히포크라테스는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 자신이다(I'm what I eat)"라고 설파했다. 즉, 내가 먹는대로 내가 된다. 나는 나 자신으로 자동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먹는 대로, 무엇을 먹든지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을 결정한다는 말이다. 컴퓨터 초창기 시절,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GIGO, Garbage in, garbage out)"는 말이 유행했다. 컴퓨터는 옳고 그른 것을 인식하지 못하기에, 들여 보낸대로 나오도록 되어 있다는 말이다. 잘못된 데이터를 입력해 놓고 올바른 답을 기대하지 말라는 말이다. 우리 집은 올바른 것을 입력시키고 있는가?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갓난 아이와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젖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라고 말씀하신다. '사모하다'라는 동사는 강력한 갈망을 의미한다. 갓난아기들이 본능적 충동으로 엄마의 젖을 찾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러한 영적 갈망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우리 가족이 순전하고 신령한 능력과 지혜의 말씀을 마음껏 받아 먹는 한 해가 되도록 기도하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 이 놀라운 능력과 지혜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가족이 말씀을 입력시키므로 말씀의 능력이 출력되는 한 해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김 철 민 목사
대전제일교회 시무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