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를 섬겼던 선한 牧者'

[ 디아스포라리포트 ] 재일대한기독교회 '동경조후교회'편…<5>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0년 01월 21일(목) 10:25
김병호 / 목사ㆍ일본 선교사

재일대한기독교회는 조국교회의 적극적인 지원과 협력에 의해 1백년을 지내왔지만, 외국인으로서 재일동포 교회를 섬겨왔던 잊을 수 없는 몇 명을 소개하고자 한다.

   
▲ 일본인이었지만 한평생을 조선의 복음화와 재일동포 선교를 위해 헌신했던 오다 나라지(전영복)목사 부부.
루터. L. 영(Luther Lisgar Youngㆍ한국명:영재형)목사는 캐나다장로교회 선교사로서, 1906년에 함경도에 파견 받아 선교활동을 해오다가 1927년부터 일본으로 건너와 코베(神戶)지역을 중심으로 일본 전역에 흩어져 있는 재일동포 선교에 열심을 다하였다. 재일동포 선교가 결정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된 것이 영재형선교사가 활동하면서부터이다. 그의 열정적인 선교와 캐나다장로교회의 재정적인 후원에 재일동포 선교는 1927년부터 1935년 사이에 교회와 교인 수가 3배나 증가했다. 그는 전쟁으로 인하여 1940년 12월에 캐나다로 돌아갔지만 1949년 다시 일본으로 와서 1년 뒤 별세했다. 영 선교사의 발자취는 재일대한기독교회에 깊히 새겨져 있고, 캐나다장로교회는 지금까지 재일대한기독교회와 좋은 선교 협력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존 H. 맥킨토시(John H. McIntoshㆍ한국명: 맥인도)목사는 1935년 캐나다에서 태어나 1961년 캐나다장로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곧장 재일대한기독교회 선교사로 파견 받아 2000년 은퇴하기까지 40년간을 재일동포를 섬겼다. 일본어와 한국어가 능통한 그는 일본 오사카 지역을 중심으로 교회(타츠미 교회)를 개척하고 일본 각지에서 선교활동에 종사했다. 그의 활동은 열정적이며 특히 재일동포의 고통을 함께 경험했으며, 지문채취거부 운동에 있어서는 자신도 지문채취를 거부함으로 긴 세월 출국을 못하는 어려움을 겪으며 선교적인 입장에서 일본 정부와 재판하는 투쟁을 벌였다. 임파선암과 심장질환 등으로 병고와 싸우면서도 그러한 기색은 나타내지 않다가, 은퇴 후 귀국해 요양에 들어갔지만 애석하게도 그 이듬해 2001년 6월에 캐나다에서 별세했다.

캐나다장로교회의 총회장을 역임하였던 그렌 데이비스(Glen Davis) 목사는 1963년부터 1978년까지 15년간 재일대한기독교회를 섬겼던 선교사이다. 후쿠오카(福岡)를 중심으로 활동했고 캐나다로 귀국한 뒤 지금도 계속해서 재일대한기독교회를 위한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다. 현재 밴쿠버에서 신학대학 교수로 섬기고 있다.

오다 나라지(織田楢次ㆍ한국명:전영복)목사는 1908년 일본 효고현에서 무사의 후손으로 출생해 중학생 때 노방전도를 통해 예수님을 알게 되어 세례를 받고 전도의 사명을 갖고 신학교에 입학했다. 자신이 다니던 교회에서 조선 유학생을 만나 3.1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조선에 가서 선교하겠다고 결심했다. 1928년 경에 조선 선교를 위해 무작정 화물선을 타고 목포에 도착함으로 오다전도사의 힘겨운 15년 조선에서의 선교 여정이 시작되었다.

조선에서의 일본인 전도사의 선교 활동이 쉽지 않았는데 어려움을 무릅쓰고 조선에 속죄하고 조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노방 전도를 하며 다녔다. 특히 평안북도, 함경도북와 만주의 국경지역, 탄광촌에서 활동했고 신사참배 강요로 어려움을 당할 때에 함께 반대 운동을 하다가 투옥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오다전도사는 정주에 있는 오산학교에서 오윤태(후 동경교회 목사)학생을 만나서 친하게 됨으로 일본으로 귀국 한 뒤 해방 후 재일대한기독교회를 재건하는 일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 조선 선교도 중요하지만 일본에서 살고 있는 재일 조선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을 갖게 된 것이다.

오산학교에서 만난 오윤태목사는 관동의 동경교회를 맡게 되었고 오다목사는 관서의 경도교회를 맡아 22년 동안(1948년∼1969년) 목회했다. 1967년에 재일대한기독교회 총회장을 역임하였으며, 경도교회를 사임한 뒤에도 전도목사로 어려운 교회, 무임교회를 다니면서 전도집회를 하였다. 1980년 하나님 품으로 가기까지 어려운 재일동포를 섬겼던 좋은 일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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