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지 못하는 나비들에게 작은 풍선을 달아주세요

[ NGO칼럼 ] 엔지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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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1월 21일(목) 10:09
김진선 / 밥상공동체 사무국장

얼마 전 명보아트홀에는 '연탄길'이라는 뮤지컬이 올랐다. 동명의 책을 소재로 4개의 에피소드가 무대 위를 꾸몄다. 뮤지컬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책 역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만큼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뮤지컬을 관람하게 되었다. 뮤지컬의 시작이 인상적이다. 나비들의 향연! 그런데 나비 하나가 날아오르지 못한다. 분명 한쪽 날개가 찢어져 다른 나비들과 날아오르지 못하고 바닥을 굴렀다. 아마도 그렇게 그 나비는 죽어갈 것이다.

그런데 이 날지 못하는 나비를 위해 풍선이 준비되었다. 찢어진 날개 대신 노란 풍선이 달렸다. 나비는 그 풍선의 도움으로 다시 날아오른다.

집에 돌아와서도 찢어진 날개에 풍선을 달고 날아다니는 나비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사회복지 현장에 있으면서 참으로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난다. 집 안에서 내복, 솜바지, 잠바에 목도리까지 둘러 맨 어르신은 매서운 겨울바람에 아무리 파지와 빈병을 주워도 겨울철 난방비를 아끼지 않으면 식비와 약값, 공과금을 충당하지 못하니 이 분에게 난방비를 줄이는 것은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무실을 찾아와 우편물 꾸러미를 내미시거나, 얼어붙은 수도, 고장 난 보일러 등 집안의 잡다한 일까지 돌아봐 주기를 바라시는 어르신도 계시다. 어려서 딸에게는 배움의 기회를 주지 않은 아버지 때문에 한글도 익히지 못한 채 동생들, 자식들 뒷바라지로 늙어버린 어르신은 이제는 돌보는 이가 없어 우편물 하나까지 쌓아두었다가 연탄은행으로 들고와 확인하고 나서야 돌아서는 뒷모습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배어있다. 하나있는 외아들이 연탄을 사주었는데 연탄창고에 비닐을 친다고 오토바이를 몰고 비닐을 사러 갔다가 사고가 나 다시 돌아오지 못한 할머니는 아들 같은 연탄을 차마 때지 못하고 연탄은행에 도움을 요청하신다.

항상 보는 이들이 매번 예쁠 리는 없으나 연탄 한 장, 봉지쌀 한줌에도 행복해 하시는 분들, 하시는 말씀에 귀 기울이고 관심을 갖는 모습 하나만으로도 한껏 속마음을 열어 보이시는 이분들의 모습은 순진무구 그 자체이다. 내가 이 분들에게 해 드릴 수 있는 것은 후원자분들이 후원해주시는 연탄을 나누는 일, 우편물 꾸러미를 봐드리는 일, 가슴 아픈 이야기를 함께 슬퍼하며 또 아파하며 들어드리는 일뿐이다. 하지만 이분들이 나에게 원했던 것도 사실 그리 큰 것은 아니었다. 그분들에게 필요한건 찢어진 날개를 조금만 보조해줄 풍선이다. 너무 잘 나는 풍선은 필요없다. 나비를 끌고 나비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갈 수 있으니 그냥 연약한 나비도 조종할 수 있는 조그마한 그런 풍선인거다.

항상 현장에서 함께 하건만 뮤지컬 '연탄길'을 보고서야 "그래, 이 분들이 원하셨던 건 항상 큰 것이 아니었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우리 날지 못하는 나비들이 날 수 있도록 올해 나는 충실히 풍선을 다는 이가 되고자 한다. 가까이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느끼며 너무 과하게 잘 날아다니는 풍선이 아닌 이들의 찢어진 날개를 보조해줄 만한 적당한 풍선을 찾아주는 사람 말이다.

우리 밥상공동체에는 밥훈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작품/가난하지만 성실하게/된 것보다 될 것을 바라보며/이제 새로이 시작하자.'
내가 정말 좋아하는 글이다.

우리 나비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작품이다. 비록 지금은 가난하지만 날 수 있다는 믿음과 이룰 수 있는 많은 일들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풍선을 달아 새로이 나는 나비를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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