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목사의 송구영신

[ 기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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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1월 19일(화) 19:15
세월의 속도는 나이에 비례한다는 말이 있다. 시인 김달진(1907~1989)은 "60에는 해마다 늙고, 70에는 달마다 늙고 80에는 날마다 늙고 90에는 시마다 늙고 1백세에는 분마다 늙는다."며 세월 따라 늙어가는 인생의 덧없음을 한탄했다.

13억 중국인의 정신적 스승, 백수 가까운 나이를 누리면서 오늘도 살아있는 지세린은 그의 인생에세이 '다 지나간다'에서 "나는 늘 우리 사람의 생명은 절대적으로 수동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자신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태어날지 미리 계획을 세운 후에 태어나 그 계획을 차근차근 실천하며 사는 사람은 아마도 없다. 생명의 반대편에 있는 것은 죽음이다. 죽음 앞에서도 우리는 역시 수동적이다." 자신에게 '나는 왜 사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 보라고 권하고 싶다'라는 글을 읽게 된다.

"가고 싶지 않은 길일지라도 가야만 하는 인생길을 앞에 두고 물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오히려 웃으면서 가는 것이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더 좋지 않겠는가?"라는 말씀 한 마디는 나에게 평정심으로 마음을 돌이켜 놓는 설득과 공감을 안겨준 잔잔한 음성으로 다가왔다.

세월이 빠르게 하루하루가 바쁘게 지나가는 세모의 분주함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겨울철의 사순절이란 대림절을 맞이하면 이어서 성탄절, 그리고 송구영신 밤 예배, 거리마다 골목마다 교회마다 성탄절 화이트 그리스마스의 정강이 넘쳐흐르고 연중 가장 분주한 한 해의 고개를 넘기면서 송구영신 자정을 맞게 된다.

비록 목회 일선에서는 은퇴하였지만 세상사는 세상사대로 바쁜 나날을 체감하고 한 평생 교회에서 젖은 몸이라 교회는 교회대로 얼마나 바쁜 시간을 보내었던가. 묵은해와 새해 사이 회고와 추억, 소망과 계획 등으로 가슴 설레는 송구영신 예배에 진지한 얼굴을 그리면서 얼마나 바쁘고 분주했던 초대와 지금을 상상하게 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바쁘다는 마음으로 가득해진다. 그런데 2009년 기축년 말 이렇게 분주하게 돌고 돌아가는 세상사와 현실의 틈새에서 나 홀로만이, 나 혼자만이 고요히 마음의 여유를 갖고 12월 31일 밤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밝아오는 역사적인 그 순간을 갖고 싶었다. 

내가 주일예배 출석하는 M교회는 송구영신 예배가 연중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예배드리는 교회로 유명하다. 흰 눈 덮인 빙판길과 먼 거리를 핑계 삼았다. 지난 여름 이사한 후 새벽기도회에 나아가는 S교회는 송구영신예배가 있고 1월 1일 아침에 신년예배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올 해의 마지막 날은 나 혼자만이 갖는 송구영신의 날 기도가 가능했다. 창가 너머로 보이는 백설로 수놓은 산하의 풍경도 고요한 기도의 밤을 바라는 내 마음에 한층 기분을 돋우어주었다.

전등불은 모두 끄고 실내는 미리 정리 정돈해 두었다. 정각 밤 12시 분침과 시침이 하나가 되는 그 역사적 그 순간에 중앙에 놓아둔 촛불 한 자루에 불을 밝혔다. 한 가운데 성경과 찬송을 두고 무릎을 꿇은 왼편에는 2008년과 2009년의 일기장, 그리고 은퇴했던 2003년의 목양일지를 놓았고, 오른편에는 경인년 2010년의 새로운 일기장과 2010년 새로운 목양일지를 놓았다.

"종소리 크게 울려라 저 묵은 해가 가는데 옛 것은 울려 보내고 새 것을 맞아들이자 / 시기와 분쟁 옛 생각 모두 다 울려 보내고 순결한 삶과 새 맘을 다 함께 맞아들이자 / 그 흉한 질병 고통과 또한 이 없는 탐욕과 전쟁은 울려 보내고 평화를 맞아들이자 / 기쁨과 넓은 사랑과 참 자유 행복 누리게 이 땅의 어둠 보내고 주 예수 맞아들이자"(찬송가 554장)

찬송가 '종소리 크게 울려라'를 부르며 시작한 기도는 새벽 3시가 되어 끝이 났다. 하나님께서 이 한 생명을 긍휼히 보시사 2010년도 일기를 계속 쓰게 하시고, 새로운 구상들을 가지고 은퇴한 목사로서 나름대로 목양일지를 계속 써 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기를 원한다.

서울 동남노회 은퇴목사 김태규
 (010-8323-8611/ 031-782-2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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