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8~23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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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1월 14일(목) 14:59

월-무엇이 위대한 생인가
본문: 요 1:35-42
찬송가: 314장(구 511장)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이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다(마11:11)"고 칭하실 정도로 탁월한 생을 살았던 인물이었다.
 
그의 탁월성과 위대함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여러가지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었던 번뜩이는 영적 통찰력, 자신의 임무와 역할에 충실하고 결코 선을 넘지 않았던 겸손함, 전제 군주 헤롯을 향해서도 두려움 없이 정의로운 가르침을 던졌던 선지자적 풍모, 나아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3:30)"고 예수님을 높이고 자신을 철저히 낮추었던 헌신의 정신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세례 요한의 또 다른 위대성의 표지를 보여 준다. 즉, 자신이 양육했던 제자 두 사람을 예수님께 보내드리는 것이었다. 당시 유대 사회는 세례 요한과 예수님을 은근히 경쟁시키고 라이벌 구도화하려는 음험한 시도가 있었다.
 
세례 요한은 이것을 간파하고 결코 용인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더욱 예수님의 사역을 준비해 드리고자 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알토란 같은 제자 둘을 주님께 내어 드리는 일이었다. 안드레도 시몬 베드로도 이러한 헌신과 사랑의 연장 선상에서 비로소 존재하게 된 것이다.
 
내 것을 움켜쥐고 결코 빼앗기지 않으려는 세상에서 세례요한은 자신의 분신 같은 제자들을 주님의 사역을 위해 드림으로 인간의 위대성에 대한 논의에 종지부를 찍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이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그것을 드릴 수 있을 때, 드림으로 주님의 사역을 예비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주님의 사역에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하여 주님께 칭찬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 철 민 목사
대전제일교회 시무


화-은혜를 알고 살라
본문: 고전 15:1-10
찬송가: 305장(구 405장)

영국의 스코틀랜드의 왕궁에 아주 충성스러운 신하가 있었다.
 
이 신하는 원래 양치는 목동이었으나, 왕의 은혜로 존귀한 대신의 반열에 올라서 왕을 모시게 되었다. 그런데 이 왕궁에 이 신하가 역적모의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아다니게 되었다. 왕은 사실을 조사하기 위하여 어느 날 왕궁을 빠져나가는 이 신하의 뒤를 군대를 이끌고 추적하였다. 신하는 숲과 들과 시냇가를 지나서 깊은 산 속의 한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왕은 이 오두막을 군사로 에워싸고 오두막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반란에 사용할 칼, 창, 활같은 무기는 없었고 그 신하와 조그맣고 낡은 탁자 위에 낡은 샌들, 외투, 막대기 하나가 놓여있었다. 왕은 물었다. "그대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으며, 여기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라고 묻자, 신하는 대답하였다.
 
"폐하! 저는 본래 천한 양치기였다가 폐하의 은혜로 대신이 되었습니다. 제가 이 은혜를 잊을까 두려워 매일 밤 여기 와서 옛날 양치기 시절에 사용하던 이 샌들과 외투와 막대기를 보면서 제가 누군가를 확인하곤 합니다.”
 
오해를 푼 왕은 그를 더욱 높은 대신으로 삼았다고 한다. 
 
우리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기 쉽다. 지렁이 같고, 죽은 개 같고, 상한 갈대 같고, 벌레 같고, 적신 같고 죄인중의 괴수인 나를 건지신 하나님의 은혜를 평생토록 잊지 말도록 하자.
 
사도바울처럼 나의 나된 것은 내가 아니요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겸비함으로 감사하며 살도록 하자.

오늘의 기도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여!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를 평생 잊지말게 하옵소서. 나의 나됨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아는 겸비함과 감사함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노 창 영 목사
개봉교회 시무


수-기쁘고 즐겁게 살자
본문: 전 9:7-9
찬송가: 428장(구 488장)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구원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것은 우리에게 잃어버린 에덴의 행복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오늘의 본문말씀은 우리를 향하여 기쁘고 즐겁게 살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너를 기뻐하시니 사랑하는 네 배우자와 함께 즐겁게 살라고 말씀하신다. 행복이 무엇인가? 행복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고 관계에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본문에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라고 했는데 이것은 주의 보혈로 우리의 영적인 예복을 정결케 하라는 것이요, 머리에 향기름이 그치지 않도록 하라고 했는데 이는 항상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라는 말씀이다.  우리가 이렇게 살면 주의 은혜 가운데 항상 희락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가 있다.
 
다윗은 시편 4편 7절에서 "주님이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기쁨은 세상의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말씀이다. 구원받은 우리가 항상 기뻐하며 즐겁게 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왜 우리 그리스도들 중에는 우울한 모습으로 재미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이들이 많이 있는 것일까?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우리 모두 금년에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면서 즐겁게 살아가는 복된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은혜를 누리면서 날마다 기쁨으로 주를 찬양하며 즐겁게 살아가는, 복된 한 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 인 채 목사
동해교회 시무


목-여호와의 산에서
본문: 창 22:1-18
찬송가: 216장(구 356장)

렌즈를 통과한 빛이 초점에 모이듯 아브라함의 생애는 모리아산의 제사에 모아진다. 그의 삶은 모리아 제사를 향한 행진이었고 그의 시련은 모리아의 시험을 통과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거기서 번제물로 드려진 이삭은 인류를 위한 영원한 제물인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였고, 번제단은 십자가를, 모리아산은 골고다 언덕을 예표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모리아의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확증하여 주셨다. 이 복을 담아 주실 그릇을 확인하는 마지막 시험이 모리아의 제사였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그릇은 어떤 것일까? 첫째, 지혜의 그릇이다. 복을 복으로 받아들일 지혜가 없으면 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 복은 소유가 아닌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둘째, 겸손의 그릇이다. 복은 겸손의 통로를 거쳐서 오고 겸손의 보자기에 싸여 있을 때 빛을 낸다. 셋째, 능력의 그릇이다. 그릇의 깊이가 얕으면 쏟아지기 쉽다. 너무 깊으면 드러나지 않아서 제 값을 하기 어렵다. 적당한 깊이라야 때로는 숨기고 드러내어 누리며 섬기게 된다. 그것은 눈과 같아 내 놓고 자랑하면 빛에 녹아버리고 깊이 숨겨두면 얼어붙어서 오만의 얼음덩어리로 변해버린다.  
 
복은 꺼내어 써야 가치가 있다. 그것은 옹달샘처럼 퍼낼수록 힘차게 솟고, 사렙다 과부의 기름병처럼 주고 나누면 더욱 쉬임 없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독자를 제물로 드림으로 복 받기에 넉넉한 그릇을 마련했다.
 
우리도 모리아의 제사를 드리고 영원한 승리와 축복의 보화로 돌려받자.

오늘의 기도

모리아산에서 주님을 만나 뵙기 원합니다. 시간과 소유와 젊음과 자랑을 모두 주님 앞에 드리오니 영원한 승리로 갚아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장 석 연 목사
서원경교회 시무


금-예수님과 떠나는 소풍
본문: 눅 9:10-17
찬송가: 394장(구 449장)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은해질 무렵에도 떠날 줄 몰랐다. 때는 유월절이 다가오는 봄이었고 사람들은 푹신한 푸른 잔디에 앉아 살랑살랑 불어오는 훈풍에 취하여 주님의 말씀을 들으며 참 편안한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모처럼 누리는 평화였다. 성전과 율법과 제사로 대변되는 껍데기만 남은 유대교에, 그리고 로마의 압제, 헤롯의 기만에 늘 힘들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모처럼 예수님과 함께 갈릴리 바닷가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으로 소풍을 나온 것이다.

누가복음 13장에 보면 믿음과 회개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중에 실로암 망대 건축 현장에서 18명이 죽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희생제물에 섞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바로 당시의 정황을 이야기 해 주는 것이다. 우리 시대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최근 관광버스 사고로 18명의 어르신이 돌라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산의 사격장 사건, 그리고 여전히 용산의 죽음에 대한 장례는 치러졌지만 그 진상은 규명되지 않고 있다. 사회적 일자리 사업이 사라져 서민들이 힘들어 하고 있다. 힘든 우리 모두 예수님과 갈릴리 바닷가로 소풍 한 번 떠나면 어떨까?
 
예수님은 서민들의 음식인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사람들과 멋진 잔치, 축제를 벌였다. 아마 그 곳에 모였던 사람들은 이 풍성한 만찬을 나누면서 모세의 기적을 연상했을 것이다. 비록 오늘 이 시대가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오병이어는 우리에게 떡이 아니라 말씀으로 살라고 한다. 갈릴리로 여행을 떠나자. 그 곳에서 성령의 훈훈함, 나눔, 참 메시야 대망, 먹고 배부른 기적이 아니라 참 사랑, 축제를 맛 보는 삶을 사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 시대가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만 빵으로가 아니라 말씀의 은혜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안 홍 택 목사
고기교회 시무


토-행복한 가정
본문: 골 3:18-21
찬송가: 556장

아기의 울음소리와 어머니의 노랫소리가 멋진 화음을 이루는 곳, 따뜻한 심장과 행복한 눈동자가 서로 만나는 곳, 상함과 아픔이 싸매지고 기쁨과 슬픔이 나눠지는 곳이 어디일까? 이곳은 바로 가정이다. 그러나 오늘 이 시대의 가정은 화목하지 못하고 깨어지며 행복한 가정보다는 불행한 가정들이 너무 많음을 보게 된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가정이 행복해 질수 있을까?
 
첫째로 가정 안에 진실한 대화가 있어야 한다. 가족간의 대화가 없으면 오해와 갈등이 심화될 수 있다.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해 주어야 한다. 한 번 말하고 두 번 들어주며 세 번 상대방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면 가정은 화목해질 수 있다.
 
둘째로, 가정 안에 질서가 있어야 한다. 가족 간의 행복과 안전은 질서 속에 주어진다. 행복한 가정에는 영적인 질서, 순종의 질서, 징계의 질서가 있다. 하나님이 주인 되고 하나님이 세우신 부모의 권위에 순종하여야 가정이 행복할 수 있다. 질서가 깨어지면 잠시 행복할 수 있으나 결국 갈피를 잃어버리고 말게 된다. 자녀는 부모를 존경하고 순종하며, 부모는 자녀를 아끼며 사랑하고, 형제끼리는 우애 있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
 
셋째로, 하나님이 가정의 주인 되심을 고백하고 그분의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가정을 지킨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모든 수고는 헛될 뿐이다(시 127:1). 가정을 늘 돌보시고 지키시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참된 평화 '샬롬'을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을 따라 행하여 믿음 안에서 행복한 가정을 세워나가는 2010년이 되자.

오늘의 기도

가정을 세우시고, 돌보시는 하나님. 새로운 한해 서로 사랑하며, 질서를 세우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의 가정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 현 대 목사
주내교회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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