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영원' 향해 걷는 순례자

[ 교계 ] 기고/'산티아고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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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1월 12일(화) 17:14

   
▲ 산티아고 순례길 중 '산토 도밍고'를 향해 가는 길.
송학대교회 정동락목사

필자는 2008년 교회가 허락한 안식월 3개월 동안 흐트러진 영성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 '산티아고 가는 길'(프랑스 길) 8백km 중 7백50km를 한 달간 순례하였다.

순례의 일반적 의미는 신자가 자신의 종교에서 신성하다고 간주하는 장소를 향해 가는 여행이다. 대체로 순례자는 도보로 이동하면서, 영적이며 역사적인 것들과 만나고, 어떤 특정한 장소에서 초자연적인 것과 조우하여 세속과는 다른 영적 세계를 체험하게 된다. 기독교인 순례자는 몸 마음 지성을 포함한 온 존재로 여정을 걷는 가운데 자신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동시에 영원을 향해 걷고 있는 순례자임을 발견하게 된다.

필자는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매일 정오에 드려지는 순례자예배에 참여하기 위해 30일을 기도하며 찬송하며 걸어갔다. 마치 히브리인들이 절기를 맞아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노래하며 올라가듯이 말이다.

필자가 경험한 기도하며 찬송하며 걸은 30일간의 순례여정은 한 마디로 훈련의 기간이었다. 육체극기훈련, 문화금식훈련(TV, 전화, 자동차, 컴퓨터), 침묵훈련, 내려놓기훈련, 내적 자유함의 훈련, 포용의 훈련 등이다.

필자가 영적 체험을 한 구간은 순례를 시작한지 일주일이 지나서 만나는 메세타였다. 약 한 주간 계속 걸어야하는 메세타의 길은 2백km가 넘는 대평원지역이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 전체 길 중에 메세타의 풍경은 가장 단조롭고 기후는 가장 혹독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다는 구간이다. 특별히 체험할 문화도 없기에 시간이 부족하거나, 육체적으로 약한 이들은 메세타 지역은 버스를 타고 통과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에게 있어서 메세타는 하나님의 은총을 깊이 체험하는 구간이었다. 필자가 메세타 지역을 통과하면서 받은 은혜를 기록한 내용의 일부를 소개한다.

11일째 "산티아고 순례에서 하나님과 깊은 만남을 위해서는 주변과 침묵해야 한다. 어제의 냉전이 다 풀리지 않아서인지 아내는 발동이 걸린 듯 저 멀리 앞서서 걸어간다. 오늘은 대화도 없이 침묵하며 걸었다. 처음에는 아내의 침묵이 마음에 부담이 되었지만 침묵 속에서 하나님만 주목하기로 하다. 처음에는 단순히 말만 없는 침묵에서 점차 내 마음에서 아내를 자유롭게 놓아줄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가며 침묵하게 된다. 똑같은 풍경이 계속되어 사진을 찍을 일도 별로 없어서 찬송하며 기도하며 감사하며 내가 지은 노래를 부르며 걷고 또 걷고… 대화할 대상도 없고 오직 자연하고만 대화를 나눈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찬송하며 걷는다. 침묵하며 하루 내내 걷다보니 마음에 평안이 있고, 감사와 기쁨으로 가득찬다. 메세타의 길 속에 내가 있고, 하나님의 품 안에 내가 있어, 걷는다는 것이 큰 고통이 되지 않고 어느덧 오늘의 목적지에 다다랐다."

13일째 "메세타의 길은 대평원 자연 속에서 걷는 길이다. 걸으면서 위험의 요소나 관심을 끄는 것이 없다. 그저 앞만 보고 자연과 함께 걸으면 된다. 이전까지는 언어로, 생각을 통해 의식적으로 하나님과 대화를 해왔다. 그러나 메세타를 통과하면서 온 마음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며 하나님의 품에서 안식하며 걷는다."

   
▲ 순례 29일째, 산티아고가 19km 남은 아르카 지역에서 필자(정동락목사).
14일째 "산티아고 순례에서 하나님의 품 안에서 걷는 신비를 체험하다. 메세타! 가도 가도 끝없이 지평선이 계속된다. 사랑의 하나님이 지평선 저 너머 하늘에 계셔서 구름 사이로 햇살이 내리 비치듯 순례자들을 감싼다.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대자연과 내가 하나가 된다. 육체의 고통이나 통증과 같은 감각도 이젠 느낄 수 없다. 자동으로 다리가 움직여진다. 하나님의 손이 나의 발을 떠받치고 있어, 구름 위를 걷는 것같이 평안하게 걷는다. 기도도 머리나 생각에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기도하게 되는 차원이 되었다. 굳이 곡조를 넣어 찬송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흥얼거리며 영으로 찬송한다. 한 두시간 걸은 것 같은데 벌써 20km를 걸었다."

걷는 것이 문화가 되고, 시대적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제주 올레'가 그 대표적이다. 이 트렌드를 선용하여 기독교에서 '산티아고로 가는 길'에서 걷는 영성훈련의 모델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순례자증서와 순례지마다 확인도장찍기, 순례과정의 십자가와 성당, 순례자 숙소와 식사메뉴, 순례완주자의 격려종교의식, 순례여정 중 순례자 격려팻말 등이다. 지금 이 시대의 요청에 따라 한국교회가 연합하여 '걷는 길'에 영성을 심는다면 한 세대를 지났을 때 대한민국의 중요한 길에 기독교의 영성이 묻어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본다.

산티아고로 가는 길에서 매일 8~10시간 순례 후, 목적지에 도착하여 육체적으로 거의 탈진한 상태에서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씻을 때 느끼는 그 황홀한 경험이 나를 또 다시 그 길로 부른다.

한 가지 분명하게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산티아고 순례길은 하나님께서 감동해 주셔야 시작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셔야 순례여정을 평안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 필자의 순례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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