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달을 바라보며

[ 기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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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1월 06일(수) 16:51


37년의 목회생활을 끝내고 바람소리 새소리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 들리는 인적이 적적한 학가산 계곡으로 이사를 했다. 목회가 끝나면 산 높고 물 맑은 산자락에 집을 짓고 조용히 사는 것이 나의 꿈이었다. 여러 곳을 답사한 후에 해발 8백82m의 학가산자락에 터를 잡았다. 5백20평의 땅을 사서 2백평을 택지로 만들고 30평되는 집을 지어 지난 9월에 이사를 했다.
 
봄이 오면 나머지 땅에는 각종 나무와 꽃과 채소를 심을 것이다. 집 앞에는 벗나무, 매실, 목련, 가죽나무를 심고 집 뒤에는 소나무, 향나무, 주목, 은행나무를 심고 정원에는 잔디를 심고 각종 꽃을 심을 계획이다.
 
토지를 매입하고 건축허가를 내고 건축을 하고 정원을 만들면서 시청으로 면사무소로 설계사무소로 수없이 뛰어다니면서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모른다. 밭을 택지로 만들고 토지 분할 측량을 하고 허가를 내어 전원주택을 짓는 것이 너무 까다롭고 힘이 들었다. 이삿짐을 이삿짐센터에 맡기고 매 끼니를 사먹으면서 셋방살이로 얼마나 불편하게 살았는지 모른다. 때로는 너무 속이 상해 그만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싶은 생각을 한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어려움이 지나고 이제는 조용하고 아늑한 새 집으로 이사를 하고 보니, 지난날을 다 잊었다.
 
앞에는 개울물이 흐르고 주위에는 하늘과 산과 울창한 나무들을 안고 있는 학가산이 있으니 울타리도 담도 필요가 없다. 지저귀는 새소리 들리고 푸르른 소나무 고요한 전원 그리고 맑고 밝은 별과 달을 밤하늘에서 볼 수 있으니 내 어릴 적 살던 고향과 같다. 어느 날 밤엔 잠결에 창문이 유난히 밝기에 깜작 놀라 눈을 뜨고 창문을 열어보았더니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창문을 뚫고 잠든 나의 침실을 비치고 있지 않는가. 꿈인지 생시인지 몰랐다. 중천에 뜬 보름달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황홀감에 젖어 잠을 이루지 못했다. 겨울 깊은 밤에 이렇게도 밝은 달을 침상에 누워 바라 볼 수 있다니, 아름답고 황홀한 보름달, 50년 전 최전방고지인 진부령 북쪽 해발 1천50m의 마산 고지에서 푸른 제복에 청춘을 싸고 조국의 산맥을 지키며 바라보았던 그 보름달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고향을 그리워했던가.
 
학가산자락의 전원주택에서 새 아침을 맞이하던 날 창문을 열고 하늘과 소나무 우거진 산을 바라보며 기도했다. "단순하고 소박하고 조화롭게 살겠다"고. 그리고 "조용히 살겠다"고, 매일 학가 산을 사슴처럼 뛰어다니지만 짐승을 한 마리도 볼 수 없음이 안타깝다. 많은 사람들이 산을 오르고 내리니 짐승들이 쉴 곳이 없어서 어디론가 쫏겨 갔는지 모르겠다.
 
최근 많은 책을 읽고 있는데 법정 의 글이 순수하고 담백해서 좋다. 법정은 진짜 '중'이다. 내가 법정을 '중'이라고 하는 것은 법정은 '스님'이란 칭호를 쓰지 않고 '중' 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들은 이야기인데 앞에 가는 스님을 보고 "중 이십니까" 하고 부르면 "그렇습니다" 라고 대답을 하면 진짜 중이고, 화를 내면 가짜 중이라고 한단다. 법정은 스스로 가난과 고독을 즐기며 맑고 향기롭게 살고 있다.
 
법정의 사연을 통해 타산지석할 바가 많은 듯하다. 돈과 어줍지 않은 명예에 찌든 모든 성직자들에게 법정의 책을 권하고 싶다.
 
나는 깊은 산곡에 피었다가 지는 이름모를 한 송이 들꽃처럼 작은 씨앗하나 남기고 가리라.

이 천 우
목사ㆍ안동동안교회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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