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줄이기

[ 논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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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17일(목) 13:37

이문식/男宣全聯 회장ㆍ안동광성교회 장로

우리 고전에 내려오는 얘기 중에 고려 공민왕때 우애가 깊은 두형제의 이야기가 있다. 어느날 이 형제는 길을 가다가 아우가 황금 두 덩어리를 주웠는데, 형을 극진히 사랑하던 동생은 그중에 한 덩어리를 형에게 주었다. 그것을 나눠들고 이런저런 구상을 하면서 나루터에 이르러 배를 타고 강을 건너던 아우는 갑자기 자기의 금덩어리를 강물에 던져버리고 말았다. 형이 이상하게 여겨 그 까닭을 물었더니 아우가 대답하기를 "제가 평소에는 형님을 아끼는 마음이 두터웠는데 막상 내 금덩어리 하나를 형님에게 주고나니 갑자기 형님이 없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복받을 일이 아니기에 차라리 금을 버리고 옛날의 우애로 돌아가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말을 들은 형도 네말이 옳다고 말하고 형도 역시 금을 강물에 던지고 말았다. 귀중한 금덩어리라도 형제의 우애를 끊는 것이라면 아낌없이 버리고 사랑을 택하였다는 이 정신은 우리 그리스도인들로서는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금보다 귀한 믿음을 가지고서도 이 형제들처럼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물질의 유혹과 내부로부터 나오는 탐욕에 대하여 과감하게 물리칠 수 있는 용기가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야 한다.

요즘 같은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돈이 곧 명예요 권력이요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금덩어리를 강에 던지는 행위에 대하여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윤리적경제 논리로 본다면 금덩어리를 가난한 자에게 도와주든지 공공복지시설에 헌납해도 좋고, 사회도덕적 법의 논리로 본다면 잃어버린 원주인이 있었을텐데 그 주인을 찾아주도록 관가에 맡겨 처리했어야 옳다. 그러나 이 형제가 우직하게도 아무도 건져서 쓸 수 없는 강물에 던지고 만 것은 이들에게 세상 사람들의 경제논리를 뛰어넘는 철학이 숨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옛말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다. 잘 살든 못 살든 같은 수준으로 같이 살자는 의도인데 만약 금덩어리를 가난한 자에게 줌으로써 하루아침에 노력없이 일확천금이 생긴 부자가 된다면 또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배아파 할 것이니 아예 불평불만의 원인을 제공하지 말자는 뜻이었는지도 모른다.

요즘 같이 나라 경제 사정이 어려워 직장을 잃고 정부보조금으로 연명하는 이들이 이웃에 있는가 하면 신분이 보장된 직장에서 적지 않은 보수로 살아가는 분들이 파업을 일으키고 또 주위에서 그들을 부추기고 나라경제를 어지럽게 하는 이들을 보면서 참으로 가슴아픈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우리가 부자가 되고자 한다면 '돈이 많아지기를 힘쓸 것이 아니라 욕심 줄이기를 힘써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 우리의 서민생활이 어렵다해도 50, 60년대 우리나라 부자들의 생활보다는 훨씬 풍요로운 생활이며 고도의 문화혜택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이조 말엽 고종때 외국 선교사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을 보고 사람이 거미줄을 타고 다닌다고 했다니 그때로부터 1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의 생활을 천국과 지옥으로 비교하면 과장된 표현일까?

오늘도 2009년도 12월의 하루가 가고 있다. 우리가 하루하루의 삶을 뒤돌아보면 후회할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10년을 주기로 생각해 보면 문제는 달라진다. 내 나이 50이었을 땐 '내가 40만 되었어도…', 또 60이 되었을 땐 '내가 50만 되었어도…'하고 후회할 것이요, 70이 되면 '내 나이 60만 되었다면…'하고 후회할 것이다.

이 후회는 죽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며, 누구나 마지막 인생사의 결산은 적자인생으로 마감이 될 것이다. 그래서 현재 후회할 그 때가 아직 늦지 않은 때요 기회이며 나이에 맞게 일을 찾아 하면 되는 것이다. 이때를 놓치면 10년 후에는 반드시 후회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처럼 "나는 선한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자에게로라(딤후 4:7~8)"라는 바울의 고백을 우리도 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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