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의 교훈

[ 논설위원 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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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08일(화) 17:06

고훈/목사ㆍ안산제일교회


날마다 꿈꾸고 있다/ 아직은 문 닫고/ 그러나/ 기다리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풍요로이 쌓인/ 설원에서/ 오늘을 살고 있다/ 누구인가/ 찬란할 때/ 나는 그에게 축하를 보내고/ 누구인가/ 어두울 때/ 나는 그에게 함께 어둠이 되리라/ 우리가 한 하늘 아래서/ 숨 쉬고 산다는 이것만으로도/ 경악할 기쁨 아닌가/ 그렇다고 언제 어느 때나/ 모자람 있던가/ 또한 남음이 있던가/ 여기 우리가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인 것을/ 떠났던 사람들 돌아오는 날/ 자리 박차고 일어나/ 나는 새 옷을 갈아입고/ 창문을 열고 그분께 나래를 펴리라
                                                          ― 졸작 「겨울나무」

봄은 새 생명을 보는 계절이라면 여름은 창문을 여는 계절이고 가을은 갈아엎고 떠나가는 계절이다. 겨울은 모든 것이 겨우사는 계절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벗어야 한다. 그것은 비움이다. 비움은 채우심의 빈 그릇이다. 비우기 위해서는 미련 없이 화려한 것까지도 버려야 한다. 버림은 포기다. 나의 포기는 하나님이 쓰시는 기회가 된다. 모든 것을 버리고 나면 우리는 가벼워진다. 우리가 가벼워지면 하나님이 들어 쓰기에 손쉬운 것이다. 이것이 이 겨울에 가벼워지고, 비우고, 버리고, 서 있는 겨울나무의 영적 메시지이다.

겨울나무는 이렇게 생존의 가난 뿐 아니라 나눔의 가난이 있다. 로버트 폴검의 '나의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란 책에서 인생의 기본은 기초 있고 모든 배움의 기본도 기초라고 말하고 있다.

수학의 기초는 '+, -, ÷, ×'이다. 겨울나무는 모두에게 플러스가 된다. 겨울나무는 이것에 충실한 가난이다. 플러스(+)는 더하기다. 더하기는 보탬이다. 남에게 보탬이 되는 삶 이것이 십자가의 기본 삶이다. 남 깎아 내리고 남 비난하여 하나님이나 할 수 있는 고유권한을 내 권한으로 심판하는 삶은 결코 크리스찬의 삶이 아니다. 겨울나무는 보탬이 되기 위해 아낌없이 주기위해 유익한 생존을 한다.

겨울나무는 주님이 지신 십자가 나무다. 멀티(×)의 삶은 십자가를 질 때 오는 축복의 삶이다. 누군가 십자가 질 때 누군가는 은총을 입는다. 누군가 은총을 입을 때 누군가는 십자가를 진다. 두 사람이 다 십자가는 질 필요 없고 한 사람이 십자가지지 않고는 한 사람이 은혜를 입을 수 없다. 

겨울나무는 나눌 줄 안다. 푸르름은 봄, 여름에 나누는 나무의 사랑이다. 여름엔 그늘을 주고 과실은 생명 있는 모든 이웃에게 값없이 아낌없이 주고 자신은 겨울 가난이 된다. 하나님은 모두에게 부족함 없이 준다. 그러나 인간이 나누지 못하고 소유하고자만 할 때 누군가는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몫을 잃는다. 이것이 나눔의 엄청난 사명이다.

겨울나무는 제할 줄 안다(-). 겨울 계절 앞에 화려함도 영광스러움도 열매까지도 모두 벗어놓는다. 전통적으로 한국교회는 감사절을 지키고 헌금의 한 부분을 나눔의 몫으로 이웃과 함께 했다. 또한 성탄감사헌금 전액을 나눔으로 썼다. 교회 재정운영 예산 30%정도를 많은 한국교회는 구제선교비로 사용해 왔다.

사랑은 구제란 말을 쓰지 않고 나눔이라 쓰라는 말이 있다. 소유는 욕심이라는 좀과 동록으로 도적맞게 하고 모두 타락케 하고 이웃을 굶주리게 하고 자신을 썩게도 한다. 그러나 나눔은 모두를 살리고 소유를 나눔이 되게 하고 나를 비우게 하고 가볍게 하고 하나님 손에 쓰임이 되게 한다. 나눔은 혹한 겨울에도 모두를 따뜻하게 한다.

움켜쥐는 것은 얼어붙게 하는 것이지만 나누는 것은 벽을 허물고 얼어붙은 것을 녹이는 따뜻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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