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습어부 합격했습니다

[ 연재 ] 목회자의 어부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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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30일(월) 17:39

 
교회 집사님인 선주에게 2년 전부터 넌지시 이야기를 건넸지만 그동안 응답이 없었다. 아마 목사란 직분이 선원 생활을 견디기 힘들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1년 전 우연히 다른 집사님과 얘기하던 중 지나가는 소리로 "우리 배 한 번 타도록 해 볼까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 집사님은 자기가 한 말 때문에 이를 지키려고, 이번 여름에 고기잡이배 승선을 허락했다.
 
승선하는 날, 여주인 집사님이 "목사님, 멀미약 준비 하세요"하면서 은근히 겁(?)을 준다. 안전사고도 염려 되고, 멀미를 견딜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라 생각된다.
 
오후 3시 40분경 성산항구 선착장에 도착했다. 타고 갈 고깃배에 오르니, 먼저 온 선원들이 기름을 채우고 있다. 하루 먹을 양식도 한가득 실었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사람도 눈에 들어 온다. 베트남 청년 한 명과 어색하게 적당히 눈 인사를 나눴다. 선주인 선장도 대충 인사를 나눴지만 걱정스러운 눈치이다. 마지막 선원이 승선하자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끄러지듯이 성산항구를 시원스레 미끄러져 나갔다. 일출봉과 우도 사이 물을 가르는 뒤쪽으로 육지는 한 점으로 눈에 들어 온다. 한 시간 반쯤 후, 육지에서 4~50킬로미터 지점에서 엔진이 멈췄다. 그리고 바다 낙하산을 펼쳤다. 처음 보는 광경이다. 바다에도 하늘처럼 낙하산 같은 것을 펼쳐서 조류에 배가 안전하도록 했다. 배가 물결을 따라 움직이도록 닻의 구실을 하는 것이다.
 
저녁을 먹은 후부터 채낚기 갈치잡이가 시작된다. 대낮같이 밝은 조명 아래에서 고기들이 불빛을 보고 몰려 올 때, 꽁치 조각을 미끼로, 열대 여섯 개 바늘 코에 미끼로 꽁치 조각을 끼웠다. 큰 낚시 줄을 던지는 것이 기술이다. 낚시를 드리우는 어부들의 손길이 바다와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숙달된 선원이 던지는 낚시줄의 타원형 선의 궤적에서 밤하늘을 수놓는 꽃줄 잔치가 펼쳐진다. 던져진 낚시줄을 2, 3분 정도 기다리면 낚시줄에 까딱이는 신호와 뻐근히 댕기는 손맛을 느끼면 그로부터 한 팔 한 팔 걷어 올린다. 은색 나는 갈치의 등지느러미가 은박지 같이 번쩍인다. 팔뚝보다 큰 갈치가 안깐힘을 써 보지만 끝내 낚시 바늘에 대롱대롱 매달려 온다.
 
12시 야식 이후 선장에게서 낚시줄을 던지고 잡아 낚아 올리는 방법을 배운 후, 아침 5시까지 미끼가 바닥나도록 부지런히 낚아 올렸다. 자상하게 가르치는 수석 선원의 교육을 받으면서 서툴러도 그만 그만히 작업을 하여 2상자 정도 걷어 올렸다.
 
그런데 내가 낚시코를 뺀 갈치들은 대체로 작았다. 중간치 갈치를 낚는 것은 미끼를 끼우는 기술에 달려 있는 것 같다. 던지면 반드시 한 두마리 이상 낚아 올렸다. "그래 이 맛이 한 밤의 피로를 이길 수 있게 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가벼워 진다.
 
선원이 되려고 부산에서 올라 온 한 청년은 단단히 결심을 하여 귀밑에 멀미약을 붙였지만 배 멀미를 감당하지 못하는 듯 하다. 초저녁부터 얼굴이 창백해지더니만 머리가 아프다며 구토를 시작했다. 멀미가 장난이 아니구나, 함부로 깔볼 수 있는 만만한 일이 아님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나 또한 더부룩하고 매스꺼움이 있었지만, 한숨 자고 나니 참을 만했다. 잘 견딘 것이다. 파이팅!!
 
밤이 지나고 먼동이 터 오르기 시작했다. 해가 떠오르는 시간에 맞춰 낚시줄을 거두고 귀향 준비를 했다. 말할 수 없는 뿌듯함과 성취감에 기운이 감돌았다. 나도 해냈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뱃머리는 성산항구를 향했다. 둔탁한 엔진소리도 심장의 고동 소리처럼 우렁차게 울리면서 우도 봉우리를 향하여 힘있게 부서지는 파도를 가른다. 한 선원은 밤새 피곤에 지친 육체를 뱃머리 갑판에 올라 팔베게 잠에 취한다. 그림 같은 휴식이다.
 
소문이 났다. "목사가 배를 타고 갈치잡이를 했더니 올해들어 가장 많이 잡혔다". 6명이 32상자나 잡았다. "우리 배에도 타세요"라는 청빙(?)이 들어 왔다. "기도하고 배를 타서 그랬나?, 이제 목사가 갈치잡이 견습어부로 합격했습니다".

안  광  덕
목사ㆍ성산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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