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는 없다

[ 목양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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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24일(화) 11:52

필자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잡초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도 많다고 생각했다. 여름이 되면 야산이나 길가에 수많은 잡초가 생겨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들이 잡초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조경회사의 젊은 사장인데 이 땅에 '잡초는 없다'고 하였다. 잡초가 없다고 말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는 잡초 예찬가 같았다. 언젠가 그가 민둥산이 숲이 되는 과정을 이렇게 설명해주었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 가장 먼저 잡초가 생겨나서 흙을 부드럽게 만들고 나면 비로소 교목들이 생겨나고 그 후에야 큰 나무가 자라게 됩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숲은 우리들이 쓸모없다고 생각한 잡초가 만들기 시작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척박한 환경에서 가장 먼저 피어나 다른 화초들과 나무가 생겨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준 것을 잡초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너무 무례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는 사람들이 풀이름을 모르면 무조건 '잡초'라 부르는데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굳이 말하려면 '이름 모를 풀'이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쓸모없어 보이는 풀이라도 제각기 자기 기능을 하고 있다면서 이 사회에 사람을 잡초로 보는 시각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들에 핀 풀에도 잡초가 없거늘 어떻게 사람이 잡초일 수 있느냐며 사람을 상품화 하고 있는 오늘의 세태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와 함께 필자의 교회 정원인 '예뜰'은 잡초도 함께 자라는 곳으로 만들었다. 계획조경을 했지만 화초군락과 길을 인위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자연 흙으로 두었다. 그러다보니 잡초가 많아졌고, 잡초가 많다보니 벌레가 많아지고, 벌레가 많다보니 일용할 양식을 얻게 된 새들이 아침이면 감사의 노래를 불러준다. 아이들은 달팽이와 풀벌레를 친구 삼으며 잠자리를 따라 뛰면서 땅에 하늘을 그린다. 그래서 예뜰에는 잡초도 화초다.

그는 밭에 묘목을 심으면서 잡초를 죽이기 위해 약을 치지 않는다. 지나치게 과하지만 않다면 잡초와 함께 자라는 것이 좋다고 한다. 조금은 이해할 수 없어 말없이 바라보면 그는 더욱 진지한 얼굴로 모든 것은 필요가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라는 확신에 찬 말을 한다.

그의 삽은 겸손하다. 그래서 잡초에 대해서도 예의를 지킬 줄 안다. 나무에 대한 그의 겸손함은 식재할 때 나타나는데 그는 결코 빨리 심지 않는다. 어떤 이가 "무슨 전문가가 나무 한 그루를 이렇게 늦게 심습니까?"라며 핀잔을 주면 "전문가는 나무를 늦게 심습니다"라고 여유 있게 웃으며 말하는 사람이다. 그는 직원들이 다 심어 놓았어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심는다. 직원들은 "조금의 차이를 가지고 뭘"이라고 하지만 그는 바로 그 조금의 차이 때문에 다시 심는 사람이다. 직원들이 나무를 빨리 심는 것은 나무를 나무로 보기 때문이고, 그는 나무를 생명으로 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는 철쭉을 상품과 하품으로 분류하고 있는 자신을 부끄럽게 여겼던 사람이다. 생명이 있는 꽃을 여지없이 상품과 하품으로 구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당황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 사회가 사람을 상품과 하품으로 구분하고 있음에 대해서도 당황하고 있었다. 교회 안에도 잡초는 없다. 왜냐하면 모든 지체들은 상품과 하품으로 구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땅에 잡초가 없음을 가르쳐 준 그는 지금 시골에 있다. 서울에서 하던 조경 사업이 너무 잘돼서 전주의 어느 시골마을로 가버렸다. 그가 시골로 간 이유가 감동적이다. 자신은 삽을 들고 직접 나무를 심으며 땀을 흘리는 것을 좋아하는데 사업이 잘 되자 일을 할 수 없더라는 것이다. 지시하는 자가 아니라 일하는 자로 살았는데 어느 새 지시하는 자가 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삽이 아니라 전화기더라는 것이다. 삽을 들고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화기를 들고 일을 시키는 자가 되어 있는 자신이 싫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삽을 들기 위해 시골로 내려갔다. 이런 사장을 보고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이라고 한다.

필자는 그가 이상한 사람이라면 우리 사회에 이상한 사람이 좀 더 많았으면 한다. 우리 사회에 이상한 사람이 없어서 사회가 이처럼 이상한 것이다. 필자에게 '잡초는 없다'고 가르쳐 준 그는 절대로 이상한 사람이 아니다. 정말 이상한 사람들은 함부로 '잡초'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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