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6~21일

[ 가정예배 ]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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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16일(월) 14:24

월-나누어 줄 유산
본문: 마 24:45-47
찬송가: 461장(구 519장)

순수한 아동의 심리 세계를 진실하게 묘사하여 참된 사랑의 교훈을 주는 작품을 썼던 폴 빌라드의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 이야기는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아이의 어머니는 시내에 나오면 언제나 위그든 씨의 가게를 들러 아이가 먹고 싶은 것을 고르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가게를 아이 혼자 찾아간다. 그리곤 이것저것 골라 놓자, 위그든 씨는 몸을 구부리며 묻는다. "너, 이만큼 살 돈은 가지고 왔니?" "네, 그럼요." 그러고는 위그든 씨의 손바닥에 여섯 개의 버찌를 조심스럽게 떨어뜨린다. 위그든 씨는 잠시 자기의 손바닥을 들여다보더니, 다시 한동안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자, "모자라나요?"라고 아이는 걱정스럽게 묻는다. 그는 대답한다. "돈이 좀 남는 것 같구나. 거스름돈을 받아가거라." 그리곤 아이의 손바닥에 2센트를 떨어뜨려 준다.
 
아이는 성장하여 외국산 열대어를 길러 파는 장사를 시작한다. 가격이 한 쌍에 5달러 이하는 없었다. 어느 화창한 오후, 예닐곱 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더 어린 여자아이가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아이들은 몇 가지 종류를 가리키며 한 쌍씩 달라고 했다. 소녀는 쥐었던 주먹을 펴고, 오센트짜리 백동화 두개와 십센트짜리 은화 한개를 놓았다. 그 순간 그는, 위그든 씨가 자기에게 물려준 유산이 마음 속에서 작동하는 것을 느꼈다. 조그만 사탕 가게에 다시 들어가 있는 기분이었다.
 
우리 예수님은 철없는 아이와 같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신다. 거스름돈도 주신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어떤 손을 펴고 있는가? 한 심령을 보전할 수도 있고, 파괴할 수도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 2센트를 더 줄 수는 없을까?

오늘의 기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총이 우리의 유산이 되어 다른 이들에게도 나누어 줄 수 있는 자녀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 기 섭 목사
청주서교회 시무


 

화-절대 믿음
본문: 창 22:1-2
찬송가: 384장(구 434장)

인생 절정의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시험하신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심으로 아브라함의 경제가 풍성할 뿐만 아니라 가장 큰 숙제였던 아들의 문제까지 기적적으로 해결이 된 상태였다.
 
부족함이 없다! 아브라함처럼 되면 그만 아니겠는가. 사실 이렇게 살려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인생 절정의 때에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다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밑천 삼아야 더 위대한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다음 단계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이 땅 위에 이루시기 위해 어떤 밑천도 필요 없는 분이시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약속의 시작은 눈에 보이는 이삭이다. 약속의 땅을 꿈꾸고 큰 민족을 이루는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도 모두 기적처럼 눈앞에 나타난 이삭으로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이루기 위하여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데 가장 소중한 밑천이었다. 하나님은 그 이삭을 요구하신다.  하나님의 위대한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아브라함의 믿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가장 소중한 이삭에게 칼을 들었던 그 믿음이 우리의 것이 되기를 바란다. 가장 소중한 것을 향해 칼을 들기 전에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 한분으로 족한 주님이시다. 나의 인생과 우리 가정의 절정의 때는 모든 것이 채워져서 풍성한 때가 아니라 가장 소중한 것을 향해 칼을 드는 믿음이 풍성할 때란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시기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와 우리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이 있음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이삭을 바치고 잃을 수 없는 주님을 얻는 절대 믿음의 가정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손 병 인 목사
양정중앙교회 시무


 

수-소망의 눈으로 보자
본문: 왕하 6:8-19
찬송가: 370장(구 455장)

아람군대가 도단을 밤새 첩첩히 둘러쌌다. 아침에 이 광경을 본 종이 혼비백산해서 엘리사에게 달려와 보고를 했다. 그때 엘리사는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한 자보다 많다"고 말하며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삶 속에서 아람군대와 같이 첩첩히 쌓인 문제들 때문에 소망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그때마다 영적인 눈을 떠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며 능력 있는 소망의 삶을 살아가자.
 
우리는 현실을 보되 믿음의 눈으로 불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현실대로 보고 말하는 사람을 쓰이지 않고, 현실을 믿음의 눈으로 소망 가운데 보고, 말하는 사람을 쓰시고 응답해 주신다. 내 입장에서 하는 말은 현실의 말이고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는 말은 믿음 안에서 하는 소망의 말이다.
 
엘리사는 영적인 눈이 열려 현실, 아니 사실을 넘어 믿음의 눈으로 아람군대를 겹겹이 포위하고 있는 하나님의 군대를 보았기 때문에 종을 보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종도 육신의 눈으로 아람 군대에 포위된 현실을 보고 죽게 되었다고 말하였지만 영적인 눈이 열려 하나님의 군사들을 보고 살 소망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엘리사와 종의 노력으로 영적인 눈이 열린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영적인 눈을 열어서 보게 해주셨다. 거기에 은혜가 있고 하나님의 능력이 임했다. 
 
우리의 영적인 눈도 하나님께서 열어 주셔서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를 호위하고 있는 천군천사의 불 말과 불 병거를 볼 수 있어 평생의 삶을 소망의 눈으로 바라보며 살아가시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아버지 하나님! 삶을 두렵게 하고 염려케 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육신의 눈만 뜨고 보면 우리는 외롭고 절망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믿음 가운데 소망의 눈을 뜨게 하셔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 지 원 목사
동성교회 시무


목 : 연민의 눈빛
성  경 : 눅 22:54-62
찬송가 : 363장 (통 479)

세종시가 곤혹을 치루고 있다. 한국에서 수도권 인구가 이미 절반을 넘었다. 지방에서도 도시에서 사는 사람이 시골에서 사는 사람보다 많다. 한국은 도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그렇다면 역설적으로 한국사람 대부분은 시골 닭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면서 살아간다는 말이다.
 
오늘 우리들은 가야바 법정 뜨락으로 가보자! 밤이슬에 옷이 무겁게 젖어 불을 쬐고 있는 베드로가 호통을 쳤다. “난 아냐? 왜 자꾸 나를 끌고 들어가나? 저 저주받을 사람과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단 말이야! 재수 없게 시리 말이야!” 알바소녀들에게 호통을 치고 있는데 새벽닭 울음소리가 뜨락에 울려 퍼졌다. 꼬끼오~! 순간 두 사람 눈은 서로 마주쳤다. 베드로는 무의식적으로 법정에 서 있는 예수를 쳐다보았다. 예수님도 베드로를 바라보았다. 닭 울음소리는 베드로에게는 천둥과 같은 소리였다. 
  
베드로는 주님을 바라보다가 새벽이슬에 젖은 옷보다 더 무거운 머리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렇게 독백했다. ‘아니 내가 저토록 고상하신 주님을 배신하다니! 나 같은 사람은 거룩한 주님 눈빛을 받아 낼 수가 없어 나는 배신자야’ 라고 하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통곡했다. 주님은 고개 숙인 베드로의 머리 위로 그리고 뛰쳐나가는 문지방까지 따라가며 사랑의 눈빛을 보내주셨다.  
  
베드로가 베드로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통회하고 회개했기 때문일까? 물론 그렇다. 그러나 베드로가 위대한 수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눈빛 때문이었다. 예수님께서 연민의 빛, 사랑의 빛, 용서의 눈빛을 쏟으시며 기다려 주셨기 때문에 위대한 수제자가 될 수 있었다. 
 
무겁게 젖은 베드로의 영혼에 용서의 빛을 보내주신 주님께서 오늘 우리의 영혼에도 찾아와 사랑의 빛을 내려주시기 바란다. 그리고 여러분의 가정위에도 ----!

오늘의 기도

무거운 베드로 영혼 위에 연민의 빛을 쏟으신 주님! 구겨진 내 영혼 위에도 찾아 오셔서 주님의 한줄기 사랑의 빛을 보내주소서! 그 빛 받아 내 영혼이 생명을 얻어 가정에서 사랑으로 번지게 하시고, 그 사랑의 힘으로 가는 곳 마다 천국 가꾸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주 명 갑 목사
부여교회 시무


 

금-하나님의 뜻
본문: 살전 5:15-18
찬송가: 435장(구 492장)

이슬람의 무슬림들은 입에 인샬라가 붙었다고 한다.인샬라는 아랍어로 '알라 하나님의 뜻대로'인데 자기 잘못을 변명하는 구실로도 애용된다. 그래서 지각을 하고도 인샬라 한마디면 다 통과된다고 하니 참 편리하기도 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란 것이 이어령 비어령 식으로 갖다 붙이면 다 통한다고 하면 그건 편의주의적 발상이다. '하나님의 뜻'은 분명 선하고 거룩한 것이지 이랬다 저랬다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문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가장 명확하게 말씀하여 준다.
 
어느 집에 갔더니 항상희락 불휴기도 범사감사(恒常喜樂 不休祈禱 凡事感謝)란 편액을 본 적이 있는데 ‘항상 기뻐하라/쉬지 말고 기도하라/범사에 감사하라’란 성구는 하나의 세트처럼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단 말인가? 인생 자체가 희노애락의 쌍곡선이 늘 교차하는데…. 그것은 범사에 감사할 때 가능하다. 범사란 희노애락이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인데 기쁘고 즐거운 희락의 시간뿐만 아니라 노하고 슬픈 때도 감사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항상 기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비결은 쉬지 말고 기도하는데 있다.기도하면 화나고 슬픈 일 조차 하나님이 선한 일로 바꾸어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항상 선을 좇아 행해야 한다.하나님은 선을 좇아 행하는 자에게 악을 선으로 갚아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항상 기뻐하라,쉬지 말고 기도하라,범사에 감사하라 이 세가지인데 그 대전제는 항상 선을 좇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항상 선을 좇기를 원합니다. 화낼 일을 만나도 장차 선으로 바꾸어 주실 줄 믿고 범사에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장 의 성 목사
고흥중앙교회 시무


토-감사를 글로 표현하자
본문: 시 136:10-26
찬송가: 594장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는 것은 남도 행복하지만 나도 행복해진다. 그러나 말은 공중에서 분해되어 남지 않는다. 그래서 남게 하는 것이 없을까? 하고 생각다 것이 글이다.
 
말도 중요하지만 문자인 글자는 참으로 중요하다. 과거, 현재, 미래를 남길 수 있는 것이 글이다. 우리나라 글은 세종대왕이 당시 한문은 서민들이 배우기에 어려워서 쉽게 배울 수 있는 문자가 없을까 해서 자음 14개와 모음 10개를 만들어 이것을 합쳐서 글자를 만드니 우리 대한민국 백성이 다 쉽게 쓸 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고마운가?
 
모든 기록은 글로 남기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족에게, 이웃에게, 친구에게, 직장동료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로 하면 이것은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글로 남기면 보고 또 보고 오래 기억으로 남는다. 그러므로 감사의 편지 한 장이 이 가을에 상대방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나의 대한 기억을 오래 간직 할 수 있다.
 
"감사합니다"라는 글을 쓰자.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글로 적어보자. 가족의 사랑을 글로 적어보자. 글을 씀으로 하나님, 가족, 이웃, 친구에 대해 감사가 더욱 생기고 기억이 오래 남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래 남을 수 있는 글을 주셔서 우리의 선조들이 말씀을 양피와 파피루스에 적어 남겨 후대에 보게 하였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감사의 글을 쓸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더욱 감사를 드리자. 감사의 편지를 써서 서로에게 쓴 감사의 글을 오래 간직하고 보고 또 보면서 감사하는 가족들이 되시기 바란다.

오늘의 기도

글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질 수 없고 감사의 편지를 쓸 수 없었을텐데 글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늘 감사할 것 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이제는 따뜻한 고백을 글을 통해 오래 간직하는 가족들이 되게 하옵소서.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 관 진 목사
봉개교회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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