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실천하는 사회'

[ 논단 ] 주간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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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12일(목) 09:56
김대근 / 숭실대학교 총장

에리히 프롬은 그의 책 '소유냐 존재냐'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양식을 소유양식(having mode)과 존재양식(being mode)으로 구별하였다. 소유지향적 인간은 소유를 통해 편안함과 쾌락을 추구하지만, 존재지향적 인간은 존재로서의 평안과 기쁨을 누린다고 말하면서, 소유지향에서 존재양식적 삶으로의 전환을 촉구하였다.

산업사회의 발전을 거친 우리 사회에도 소유지향과 이익추구가 중심 가치로 자리잡고 있다. 소유 지향은 돈이나 명예, 권력 등에 대한 무한한 탐욕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더군다나 돈, 권력, 명예 등은 누군가가 차지하면 다른 사람은 가질 수 없게 되는 한정적인 것들이다. 소유양식적 사회에서는 이런 것들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온갖 범법과 악행이 난무하기 마련이고, 결국 비인간화의 길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소유양식적 삶의 추구로 인해 생기는 문제는 나누는 삶을 실천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자기 재산의 거의 전부를 카네기재단에 자발적으로 기부하여 사회에 환원한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는 "부자인 채로 죽는 것은 가장 수치스러운 일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미국의 석유왕 록펠러는 그의 재단을 통해 기아 근절, 인구문제, 대학의 발전, 미국 국내의 기회균등 및 문화적 발전에 획기적인 기여를 하였는데,"남을 도울 수 있으면 힘껏 도우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실천한 결과이다. 이들의 삶을 통해서, 나누는 삶의 실천은 국가나 제도가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인간미 넘치는 사회로 발전해나가는 토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나누는 삶을 가장 적극적으로 실천한 이는 예수이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온 예수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어주고, 나환자의 몸에 손을 얹고, 제자들의 발을 친히 씻겨주었고, 마침내는 십자가에서 목숨을 내어주기까지 이 세상을 사랑하셨다. 예수는 사랑을 바탕으로 나눔의 삶을 실천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존경받는 거목이신 한경직 목사는 한평생 청빈하게 살았고, 이웃과 나라, 땅끝까지를 마음으로 품으셨다. 자신에게 고통을 안겨준 북한과 일본을 위해서도 끝까지 기도하셨다. 이웃을 긍휼히 여기는 사랑의 정신을 가지셨기 때문이다. 다일공동체를 이끄는 최일도 목사는 가장 낮은 곳에서 나눔과 봉사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 도시의 화려함에 가려진 청량리 쌍굴다리 아래에서 굶주린 사람들에게 밥을 퍼주고 성경 말씀을 나누는 생활을 20년 이상 계속하고 있다. 이제는 국경을 넘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소외되고 기댈 곳 없는 이들의 손을 잡아준다고 한다. 사회의 고통받는 이웃들인 소수자와 약자를 위해 끝임없이 나눔을 실천하는 모습은 예수를 닮아 있다.

이제 우리 한국의 교회들은 크게 성장하였고, 사회적으로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희생과 봉사로 사회를 품으려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의 피폐해진 모습을 보면, 나눔을 위한 보다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실천이 요구된다. 신약성서 골로새서 3장 12절 이하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택하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는 '긍휼과 자비의 옷'을 입는 마음가짐과,'사랑의 온전한 띠'를 매고 나눔의 삶을 앞장서 실천해야 할 것이다.

필자가 봉직하고 있는 대학의 교훈은 '진리와 봉사'이다.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자신의 학문이 소유양식적 삶에 매이지 않고 존재양식적 삶을 실천하라는 뜻도 담겨 있다. 나눔을 실천하는 학생들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학문을 능동적으로 성취하고  새로운 비전을 가지게 될 것이다. 총장직을 맡으면서 국내외 선교와 봉사를 지원하는 '봉사지원센터'를 설치하였다. 취업에 휘둘려 자신의 경력 쌓기에 여념이 없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성취한 학문을 사회에 실천적으로 나누는 소중한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이 시대 대학생으로 자신의 사명을 체득하고, 나누는 사회를 실현하는 데 남다른 기여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가지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나눔으로써, 평안과 기쁨의 삶을 향유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그 누구보다도 교회와 기독대학이 앞장서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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