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222장)

[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 ]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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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06일(금) 10:01
작사 : J. E. 랭킨 / 작곡 : W. G. 토머

워싱턴 시 제일회중교회 담임목사 제리마이어 임스 랭킨(Jeremiah Eames Rankin)목사는 대학교 총장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그는 고별 설교를 하기 위하여, 적당한 작별 인사말을 찾느라고 사전을 뒤적였다.

작별할 때 쓰는 인사말로는 '페어웰' '소 롱' 프랑스어에서 온 '아듀' 등이 있었으나, 랭킨 목사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굿바이'라는 말이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하소서"(God be with you)의 단축형이라는 사실을 사전에서 찾아냈다.

랭킨 목사는 '굿바이'에 담긴 뜻이 그렇게 깊이가 있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그는 사람들이 이 말이 신앙적인 용어라는 사실을 알고 쓰기를 바라며, 고별 설교 때 발표할 찬송시로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를 작사하였다. 랭킨 목사는 작사한 작품을 그의 친구인 작곡가 윌리엄 굴드 토머(William Gould Tomer)에게 보냈다. 토머는 1878년에 '복음절제 찬송가'를 랭킨 목사와 함께 편집한 일이 있었다. 그는 랭킨 목사가 부임하게 되는 곳이 흑인 학생들이 다니는 하워드 대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토머는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를 흑인 영가식으로 작곡하였다. 같은 멜로디가 되풀이되고 덧붙여지고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가락은 처음에 낮아서 이별의 슬픔을 암시하지만, 후렴에 이르러서는 밝은 희망의 가락으로 바뀐다.

토머의 이 곡은 랭킨 목사가 시무하던 교회 오르간 반주자인 맹인 존 비스코프 박사에 의해 약간 수정되어, 고별 설교를 하던 주일 저녁 예배 때 교인들이 맨 처음 불렀다. 이어 기독교절제협회 젊은 회원들이 폐회식 때 부르게 되었다. 그 후 각국어로 번역되어 온 세계 기독교절제협회 회합에서 부르게 되었다.

작사자 랭킨 목사는 "기독교절제협회 청년들의 회가로 채용된 것은 이 노래가 일반에게 인정받은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지없이 기쁘다. 계속해서 영원히 노래되기를 바란다"고 말하였다.

랭킨 목사의 만년에 세오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이 멤피스를 방문하고 떠날 때, 3천 명에 이르는 회중이 대통령을 기리며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를 한목소리로 노래하였다.

미국뿐 아니라 온 세계 찬송가 중 대학총장이 지은 것은 손가락으로 꼽을 있을 만큼 적다. 그러나 이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를 부르지 않는 교회 관계 송별회는 없다. 이 찬송가가 작사된 1880년에 작사자 랭킨 목사와 오르간 반주자 비스코프 박사가 주동이 되어, 수집하고 편찬한 성가집 '복음의 종'에 이 찬송가는 처음으로 실렸다.

이 찬송가가 지어진 지 16년 후인 1896년에 작곡자 윌리엄 굴드 토머가 임종하였을 때,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는 작곡자가 봉사한 뉴저지 주 필립스버그 감리교회 성가대가 조가로 불렀다.

작곡자 윌리엄 굴드 토머(1833~96)는 음악학교와 마을 성가대와 뉴저지 주 피네스빌 성가대에서 음악을 배워, 17세 때부터 뉴저지 주 카펜터즈빌에서 음악 선생으로 재직하였다.

남북전쟁 때 토머는 하워드 장군의 참모로 종군하였다. 작사자 랭킨 박사가 장군과 이름이 같은 하워드 대학교 총장으로 7년 동안 봉사한 것은 어떤 인연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H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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