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14일

[ 가정예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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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05일(목) 13:25

월-감사합니다!
본문: 시 136:1-9
찬송가: 588장(구 307장)

11월은 감사의 달이다. 겨울을 준비하는 추수의 기쁨은 힘들고 바빠도 행복하다.
 
오곡백과가 익어 낫을 대며 거두어 들이는 기쁨은 농부들만이 가지는 최고의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제주에도 그동안 열심히 가꾸어 온 밀감이 노랗게 익어 마치 꽃이 핀 것처럼 아름답다. 농부는 여름내내 땀을 흘리며 밀감나무를 가꾸었지만 이것을 익게 하시고 수확할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니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우리는 감사할 것이 너무도 많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말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말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생활수단에서 제일 중요하다. 외국에 갔을 때 말이 서로 통하지 않으면 정말 답답하다. 바벨탑 사건 전만해도 지구상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언어가 하나였는데 하나님께 교만이라는 바벨탑을 쌓으므로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하게 하셔서 말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흩어져 살게 되었다.
 
인간이 살고 있는 세상은 말이 이처럼 중요하다. 특히 입을 주시고 말을 할 수 있게 하신 것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하도록 하신 것이다. "감사합니다"라고 표현하는 제일 쉬운 수단이 말이다.
 
오늘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 감사해야 할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습관처럼 하며 살자. 특히 내 생명을 구원해주시기 위해 십자가의 보혈을 흘려주신 주님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드리자.
 
감사의 말은 가족에게 가장 행복한 말이다. 가정에서부터 감사의 말을 통해 행복한 하루, 기쁨의 한 주간이 되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가족과 일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를 습관처럼 말할 수 있게 하옵소서. 그래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 관 진 목사
봉계교회 시무


화-순종 그리고 사랑
본문 : 엡 5:22-25
찬송가 : 442장 (통 499장)

한 때 ‘내 남자의 여자’라는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막장, 저질이라고 욕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욕을 먹으면서도 인기리에 종영되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시청했을까? 통쾌하다는 것이다. 드라마가 여성의 아픔을 날려주어서 ‘시원하다.’ 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시대의 부부를 냉정하게 바라보자! 과연 아픔이 없는 부부가 얼마나 될까? 감히 질문한다. 오늘날 젊은 아내의 화두가 ‘너는 하는데 왜 나는 못하니?’ 다. 단단히 화난 여성들의 자조 섞인 말이다. 성도들에게는 달갑게 들리지 않겠지만 부인 못할 현실이다. 왜 행복해야 할 부부들이 무엇이 부족해서 슬픔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을까?

 행복해야 할 부부가 뼈저린 아픔을 삯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부부에게 창조의 질서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천을 짤 때 씨줄과 날줄을 서로 교차하면서 짜듯이 부부의 행복도 사랑의 씨줄과 순종의 날실로 엮어야 한다. 하나님은 순종과 사랑의 조화 속에 행복을 숨겨놓으셨다. 남편에게는 힘과 논리 속에 사랑의 씨줄을 주셨다. 아내에게는 부드럽고 따뜻한 감성 속에 순종의 날실을 주셨다. 부부에게서 사랑과 순종으로 고르게 조화될 때 그 부부는 이미 행복의 동산으로 변화되어갈 것이다. 
  
 5월의 어느 날 아침 화단을 지나는데 장미꽃잎 위에 이슬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런데 그 위로 해가 떠올라서 이슬방울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세상에 어떤 보석보다 더 영롱한 빛깔이었다.

우리는 어떤 부부인가? 아픔을 품고 사는 부부인가? 사랑의 빛을 비추는 부부인가? 순종 그리고 사랑 그 위에 예수의 빛을 주소서  우리 부부에게.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우리 부부의 영혼 위에 그리스도 생명의 빛을 주셔서 사랑과 순종으로 조화되게 하시고, 어두운 세상에서 빛을 발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 명 갑 목사
부여교회 시무


 

수-규모 있는 믿음
본문: 살전 3:6-12
찬송가: 312장(구 341장)

과유불급이란 말이 있다. 지나치는 것은 모자라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잠언에도 꿀이 몸에 좋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곧이어 많이 먹는 것은 경계한다. "너는 꿀을 만나거든 족하리만큼 먹으라 과식하므로 토할까 두려우니라(잠25:16)."
 
믿음을 누구보다 강조한 사도 바울은 '규모 있는 믿음'에 대해서도 가르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믿음에도 분량이 있다. 사도 바울은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라고 말했다.
 
교만과 겸손의 차이가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이다. 잠언은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경고하는데 이는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에도 자기 분량에 따라 생각하는 규모가 있어야 한다. 신용카드를 쓰는 사람 가운데는 수입을 고려하지 않는 과대한 지출로 인해 신용불량자가 되는 젊은이들이 간혹 있다. 가끔 교회도 규모를 생각하지 않고 교회 건축을 하는 바람에 부도가 나는 것도 다 규모 없는 믿음에서 발생한다.
 
'규모 없는'의 헬라어 원어는 '아탁토스'로 무질서하고 무책임한 것을 말하고 동사 '아탁테오'는 '무질서한 생활을 하다, 제 멋대로 굴다, 의무를 태만히 하다'란 뜻을 가진다. 성경은 이렇게 규모없는 자에게서 떠나라고 말한다(살전3:6).
 
나의 본분이 무엇인지 알고 내 일에 충실하게 되면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게 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내게 주신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내 분량에 맞게 일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화평한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장 의 성 목사
고흥중앙교회 시무


 

목-감동케 하는 믿음
본문: 마 8:5-13
찬송가: 543장(구 342장)

오늘 말씀은 예수님을 감동케 한 백부장의 믿음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서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고 칭찬을 하셨다. 백부장의 어떤 믿음이 주님을 감동케 하였을까?
 
첫째, 사랑이 담긴 믿음이다(5~6절). 백부장은 하인을 사랑했고 생명을 소중히 여겼다. 하인의 아픔과 괴로움은 곧 자신의 아픔과 괴로움이었다. 그래서 체면불구하고 예수님께 달려와 간청했다. 이 사랑의 믿음이 예수님을 감동케 했다.
 
둘째, 겸손이 있는 믿음이다(8절). 백부장은 교만할 수 있는 요소가 많았다. 로마인, 백부장, 군인이자 회당도 지었고, 유대인도 사랑했다. 사람들로부터 존경 받았다. 젊었고, 경건했다. 그러나 백부장은 철저하게 겸손했다. 더 엎드리고, 낮아졌다. 사실 설익은 겸손은 교만이다. 푹 익은 겸손이어야 한다. 겸손의 믿음이 예수님을 감동케 했다.
 
셋째, 말씀대로 믿는 믿음이다(8절). 성경을 다 믿고, 기적과 이사를 다 믿어도, 다른 사람에게 말씀으로 위로하고 용기를 주던 사람도 자신에게 그 말씀을 적용할 때는 왜 믿음이 약해질까? 의심이 생기고, 환경과 여건이 왜 앞을 가로막는가? 자신의 처지에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적용하는 믿음이 주님을 감동시킬 수 있다. 감동에는 역사가 일어난다.
 
우리도 백부장처럼 사랑이 담긴 믿음, 겸손이 있는 믿음,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믿음으로 살아가 주님을 감동시켜 하나님의 역사를 이뤄가자.

오늘의 기도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믿는 성도가 되어 주님을 감동시키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영광 올려드리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 지 원 목사
동성교회 시무


 

금-진정한 보호자
본문: 요 6:9-10
찬송가: 384장(구 434장)

얼마 전 지체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노예처럼 부리는 사람을 이웃의 고발로 구해낸 사건이 있었다.
 
제법 규모가 큰 정미소에서 꼭 보호를 받아야 하는 지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노예처럼 부리는 악한 사람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너무도 보기가 안타까워 언론에 고발하였는데 보호자란 이유로 마음껏 착취한 것이었다. 그들은 편히 쉴 수 없는 쓰레기로 가득한 작은 공간에서 피부질환에 시달리고 있었다. 외양간 같은 부엌의 부뚜막에서 물을 말아야 넘어가는 밥을 먹는 그들…. 주인이 무서워 누구와도 대화하기 두려워하는 눈빛이 가슴아팠다.
 
그들을 위한 국가의 지원금마저도 빼앗아 간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하며 분노하는데, 문득 얼마 전 산행을 하다 만난 한 지체 장애아가 생각났다. 그곳에는 깔끔하게 옷을 차려 입은 지체 장애를 가진 제법 성장한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를 즐겁게 해 주느라고 어른들이 얼굴에 웃음을 가득 싣고 노력하고 있었다. 한 장애아를 위해 가족들이 그렇게 애쓰는 따뜻한 사랑의 현장이 가슴을 뭉클 하였다.
 
착취하며 노예처럼 부리는 악한 사람과 장애아를 위해 힘을 다해 돌보는 사람들의 너무나 상반된 모습…. 진정한 보호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오늘 우리는 우리를 돌보시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신 예수님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보호하시며,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아 주시는 예수님의 은혜를 찬양하자.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시는 진정한 보호자이시다. 진정한 보호자요 구원자이신 예수님만을 구주로 증거하며 섬기시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우리를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주시며 희생하신 예수님, 당신만이 우리의 진정한 보호자이시며, 하나님이십니다.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 기 섭 목사
청주서교회 시무


 

토-믿음의 명가
본문: 렘 35:18-19
찬송가: 325장(구 359장)

레갑 가문은 이방인 출신의 작고 미약하나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믿음의 명가이다. 이들의 믿음은 2백50년 전 레갑의 아들 요나답으로부터 시작된다. 엘리사 선지자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 세워진 예후는 이스라엘 왕 아합의 집과 아합의 왕비 이세벨을 심판하고 바알숭배자들을 처단하고자 한다. 그러나 당시 많은 사람들이 풍요를 약속하는 바알 종교에 깊게 호도되었던 터라, 예후는 믿고 함께 일할 사람이 마땅치 않았다. 그러던 중 레갑의 아들 요나답을 만나게 된다. 그는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예후와 함께 이스라엘을 정결케 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었다(왕하10장).
 
레갑의 아들 요나답은 바알숭배자들을 처단한 후에 후손들에게, '포도주를 마시지 말 것, 장막에 거할 것, 그리고 농사를 지을 밭이나 종자를 가지지 말 것'을 명한다. 이유는, 후손들이 가나안 농경 사회에 만연해 있던 풍요의 신 바알 숭배에 물들지 않고 충성된 믿음의 가문으로 세워지기를 소망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레갑 가문의 사람들을 식사에 초대한다. 종교지도자들과 일반 대중이 모두 보는 앞에서 레갑 가문의 사람들은 포도주를 마실 것을 권유받는다. 그러나 그들은 거절하고 조상의 명령에 순종한다.
 
세상과 구별되게 살아온 레갑 가문에게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신다(렘 35:19). 우리 가정이 신앙을 지키며 세상과 구별되게 살아서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이 끊어지지 않는 믿음의 명가(名家)로 세워지기를 소망한다.

오늘의 기도

말씀을 존중하는 자를 기억하시는 하나님! 지극히 작고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선조들이 세운 믿음의 뜻에 순종하여 충성되게 신앙을 지키며 세상과 구별되게 살아온 레갑 가문의 길을 우리 가정도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손 병 인 목사
양정중앙교회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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