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 선교 ] 통일운동의 큰 물줄기, 도잔소 프로세스와 글리온회의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09년 11월 04일(수) 11:46
   
▲ 에큐메니칼의 비전이 제시된 이번 회의에서 주제강연 중인 WCC 사무엘 코비아 총무.

올해는 한반도의 통일운동의 물꼬를 튼 도잔소 회의 25주년을 맞이한 해다.
 
지난달 21~23일 도잔소 회의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우리나라와 세계의 에큐메니칼 지도자들 1백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홍콩 추엔완에서 '도잔소 프로세스를 넘어 에큐메니칼 비전을 향해'를 주제로 '한반도 평화통일국제협의회'가 개최됐다. 이 자리에는 북한 조선그리스도교연맹에서도 강영섭 위원장을 비롯한 4명의 대표가 참가해 한국교회 및 세계교회와 함께 예배 드리며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임을 확인했다. 남북한 기독교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한반도의 평화를 논의하는 모습은 지난 25년전 도잔소에서 뿌려진 '남북한 평화통일운동'이라는 씨앗 때문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도잔소 회의는 한국교회 통일운동의 기념비적인 대회라고 평가받고 있으며 이후 줄기차게 이어진 다양한 통일운동, 특히 4차에 걸쳐 진행된 글리온 회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 통일 운동의 물꼬를 튼 도잔소 회의

분단 이후 1980년대까지는 이념 갈등으로 긴장된 사회분위기와 독재정권의 폭압 때문에 통일에 관한 이슈를 공론화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는 1982년 통일위원회를 설립하고 통일운동을 전개했으나 이 또한 정부의 압력으로 번번히 어려움에 직면하게 됐다. 이러한 때에 한국의 에큐메니스트들이 닥쳐올 고난을 예감하면서도 WCC에 한반도 통일 문제를 정식 안건으로 삼아줄 것을 요청해 1984년 도잔소 회의가 개최됐다.
 
도잔소 회의에서는 한반도의 분단 극복과 통일은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선교적 과제이며,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은 남북한의 과제일뿐 아니라 모든 세계교회의 과제임을 확인했다. 이외에도  △평화와 화해를 위한 에큐메니칼 네트워크 창조 △장벽을 허물기 위한 활동 계획 수립 △민주적 방법에 의한 변화 △평화와 통일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한국 교계 지도자 지원 등의 청사진을 제공했다. 북한도 비록 회의에 참석을 하지는 못했으나 모임을 지지하는 서한을 보내 한반도 평화정착의 염원을 알려왔다.
 
그 결과 '도잔소 회의'는 한반도의 평화, 화해, 그리고 통일을 향한 에큐메니칼 역사의 중요한 아이콘이 되었으며 이후 25년간 여러 차례의 모임을 통해 통일 운동이 발전되어 왔다. 특히 2년 후 열린 글리온 회의는 도잔소 회의의 바통을 이어받아 통일 운동에 큰 획을 그은 대회로 그 영향력을 오늘날까지 미치고 있다.

# 도잔소의 횃불, 스위스 글리온으로

 금기사항이었던 통일운동의 벽이 1984년 도잔소 회의라는 큰 물살로 뚫리자 이후 통일운동은 나라 안팎에서 봇물 터지듯 일어났다.
 
도잔소 회의가 끝난 후 한달 뒤 WCC 대표단은 11월 최초로 북한을 공식 방문했으며 2년 뒤인 1986년 4월 18~5월 3일에는 미국교회협의회(USNCC) 대표단 10명이 북한과 한국을 공식방문했다.
 
이후 1986년 9월 2~5일까지 도잔소 회의 다음으로 중요한 회의로 손꼽히는 글리온회의가 개최됐다. 이 회의에서는 분단 이후 남북의 기독교인이 처음 만남을 가졌기 때문에 예배 양식을 놓고 상호 이해가 엇갈렸지만 결국 WCC 신앙과 직제위원회에서 세계교회를 위해 단일 양식으로 만들어놓은 WEM 도큐멘트에 따라 성만찬을 나누면서 첫 만남의 어색함을 극복했다.
 
글리온 회의에서는 △NCCK의 '평화통일과 화해에 대한 교회의 선언' 지지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문 작성 합의 △남북교회 공동기도문 작성 지원 △1988년 제2차 글리온 모임 주선 △제7차 WCC 오스트레일리아 켄버라 총회에 북한 교회 대표 초청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국제기구 및 UN과의 협력을 유도하며 UN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할 것 △천만 이산가족 상봉 지원 등을 결의했다.
 
1988년 11월 23~25일 진행된 제2차 글리온 모임에서는 1995년을 희년의 해로 선포하고 8ㆍ15 직전 주일을 평화통일 주일로 지정하여 모든 예배문을 작성할 것을 WCC 회원 교회에 권고하기로 했다. 또한, 1972년 작성된 7ㆍ4남북공동선언을 지지하는 결의문을 작성했다.
 
특히 제2차 글리온 모임에서는 당시 본교단 총회 총무였던 이의호목사가 평양 봉수교회 담임 이성봉목사를 만나 평양에서 주일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임을 확인하고 대회기간 내내 손을 잡고 다닌 감동의 일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통일운동은 1989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WCC 중앙위원회에서도 그 분위기가 이어져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WCC 정책문서'를 채택하고 본교단 총회장 김형태목사, 북한의 고기준목사, WCC 에밀리오 카스트로 총무가 단상에서 서로 포옹하는 감격적인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제3차 글리온 모임은 1990년 12월 1~4일 남북한 교회의 대표들과 13개국의 교회 대표들이 모여 분단 50주년을 맞는 1995년을 어떻게 기념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했으며 대규모 군사훈련을 자제할 것을 교회는 해당 국가에 권고하고 방북 구속자 석방 탄원하기로 했다. 또한, 남북 시민간 접촉을 위한 모든 법적 구속을 해제해 줄 것과 국제적십자간 남북 이산가족 상봉 적극 추진할 것 등을 요청하기로 결의했다.
 
이어 1995년 3월 28~31일 일본 교토 간사이세미나 하우스에서 개최된 제4차 글리온 회의에서는 남북교회 대표를 비롯한 80여명이 참석해 △판문점에서 희년공동예배를 개최할 것 △한반도의 통일의 법적 장애물 제거 △인도주의적 문제 해결 등의 공동 선언문을 작성했다.
 
도잔소 회의와 글리온 회의는 지금까지 세계교회의 한반도 통일운동뿐 아니라 정부의 대북 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치며 오늘날 남북관계 진전을 견인해왔다.
 
한편, 이번 도잔소 25주년 기념 국제협의회에서 참가자들은 다음 모임 장소는 일본 도잔소나 홍콩 추엔완이 아니라 평양에서 가질 수 있도록, 더 나아가 통일된 조국에서 축하 모임을 가질 수 있도록 각자의 자리에서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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