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사업에 아낌없이 동참하던 그 분

[ 기고 ] - 故 김성섭장로님을 추모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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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21일(수) 15:28
김윤식/목사ㆍ증경총회장

1971년 9월 23~27일까지 제56회 총회가 인천제일교회당에서 소집 되었다. 나는 그때 총회 총무(현 사무총장)로 선임을 받고 취임하였다.

어느 대학총장이신 분이 내게 말하기를 "김 목사 용기가 대단하다"면서 "이 어려운 시국에 전임 총무를 처음으로 맡기 때문에 전혀 자리가 잡히지 않은 때라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며 격려와 위로의 뜻을 전했다.

당시 유신헌법이 공포되고 긴급 조치 하에 총회 총무인 나는 말 못할 염려가 많았다. 인권문제로 많이 어렵던 시절 1975년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가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에서 모였을 때 나는 한국교회 대표의 한 사람으로 참석하였다.

당시 총회 개최가 9월이었는데 "한국교회는 WCC를 용공주의라고 한다"는 모 신문의 보도 내용과 "한국교회는 지금 박해를 받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 소문나 우리대표들은 많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인권이 유린되고 있는데 우리 회원들이 이런 어려움을 묵과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흘러 나오면서 '한국 물품 불매 운동'을 전개하자는 의견에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분위기였고, 한국교회 대표단은 난감한 입장이 되었다.

발언을 청하였으나 당시 우리 입장에서는 발언권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가운데 미국장로교회의 톰슨(Thomson)총무가 언권을 얻어 우리 대표 노정현박사에게 언권의 기회를 얻어 주어 정중히 우리의 입장을 설명 할 수가 있었다.

그때 생각지도 않았던 영국 켄터베리(Canterbury) 대주교가 개의를 하기를 "이 중대한 문제를 경솔하게 결정하기보다 한국교회 지도자들과 깊이 상의해서 실행위원회에 맡겨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고, 의장은 대주교의 개의안을 회원들에게 물었는데 뜻밖에 3분의2 정도의 회원들이 개의에 찬성을 해 그 후 한국교회 지도자들과 상의한 WCC 실행위원회가 전권을 맡아 잘 해결 되었다.

독자들은 김성섭장로님을 추모 하는 일에 왜 이런 설명을 하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렇듯 당시 사회상이 최고도로 긴장을 더하면서 총회 운영은 날이 갈수록 어렵게 되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 총회도 각 노회에서 보내주는 상회비와 총회주일 헌금으로 운영하는데 노회들 가운데는 상회비 불납 운동을 벌여 총회의 재정 상황은 극도로 어렵게 되었다. 아마도 모처의 압력이 있었을 것이라 짐작했다.

총회 운영이 말 못할 어려움에 처했을 때 故 김성섭장로님께서는 총회 운영비를 극비리에 도와 주셨다. 이 일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다. 추모사를 통하여 최대의 존경과 경의를 표해 드린다.

그 후 나는 교단 총무직을 마치고 교회로 돌아가서 동신교회 김성섭장로님의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주님의 사업에 아낌없는 동참하는 그의 고귀한 삶에 대해 자주 설교했다. 이 말에 감동을 받은 어느 권사님이 김 장로님을 한번 뵙고는 "목사님 말씀대로 뵙기만 해도 '훌륭한 장로님'이신 것을 알 수가 있었다"라고 간증한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김 장로님! 장로님이 보여주신 그 고귀한 모습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존경과 사랑을 보내며 하늘나라에서 뵈올 때까지 영광을 누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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