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는 강한 성이요(585장)

[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 ]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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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21일(수) 15:22

작사ㆍ작곡 : M. 루터

독일 비텐베르크는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년)가 95개조 논제를 제시하여 종교개혁의 횃불을 높이 든 곳이며 또한 그가 묻힌 곳이기도 하다. 그의 묘비에는 "내 주는 강한 성이요"(Ein Feste Burg ist unser Gott)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이 찬송가에 관하여 시인 하이네는 "이 찬송가는 종교개혁의 '마르세이유(혁명가)'이다"라고 하였고, 이 찬송가를 영어로 맨 처음 번역한 칼라일은 "알프스산의 눈사태의 소리며, 지진의 처음 울림소리이다"라고 감탄하였다.

이 찬송가는 시편 46편 1~3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전적으로 루터의 창작으로서, 그 당시의 역사적 장엄한 배경과 이 찬송시의 용감하고 장엄한 정신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찬송가는 또한 신앙의 진군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으로서, 성실하고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악마의 군세를 향하여 진격을 개시할 때 부르기에 합당하다. 루터 자신도 이 찬송가를 높이 부르며, 악마의 군세와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

이 찬송가가 지어진 때에 관해서는 1521년설, 1525년설, 1529년설 등이 있다. 새찬송가에서 채용한 1529년설은, 독일 황제와 로마 교황이 함께 모의하여 종교개혁 탄압을 결정하자, 제후(諸侯)가 그것에 반대하여 정식으로 '프로테스탄트'라는 이름이 주어진 때에 지었다는 것이다.

한편, 독일의 시인 하이네는 1521년, 루터가 보름스 회의에 소환되었을 때 지었으며, "이 찬송가를 부르며 루터와 그 일행이 보름스의회에 입장했을 때, 의회장이 진동하여 그 지붕 뾰족탑에 둥지를 짓고 있던 새가 놀라서 날아가 버렸다"고 말하였다.

이 말이 타당하게 느껴지는 것은 친구들이 루터에게 보름스의회에 참석하지 말라고 권하였으나, 루터는 "비록 보름스에 모인 악마의 수가 그곳 기왓장만큼 많을지라도 나는 가리라"고 하며 의회에 출석하여 변론하였다.

또한 아우구스부르크 회의 때 지었다는 견해도 있다. "루터는 그때 믿음이 충만하여 동료 개혁자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하여 한 편의 찬송가를 지었다. 그는 그 찬송을 힘차게 불렀고, 그 즉시 회의장은 물론이고 색소니 주 전체 지역에 널리 퍼져, 낙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힘을 주었다".

그 무렵 루터는 친구 스파라틴에게 편지를 썼다. "대중이 읽을 수 있게 독일어 성경을 만들고 싶다. 또한 찬송가를 부르고 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이게 하는 신령한 노래를 창작하고 싶다. 그와 같은 찬송가를 창작할 수 있는 신앙인을 우리 개혁자들은 찾고 있다."

루터는 찬송가 36편을 창작하였다. 순수한 창작 4편, 라틴어 또는 독일어 노래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 3편, 라틴어 노래를 전개시킨 것이 8편, 독일 민요를 고친 것이 3편, 성경 구절을 중심으로 지은 것이 5편, 신앙 문답용이 6편, 시편에 의한 것이 7편이다.

작곡도 루터의 것으로 되어 있으나, 그 원래 선율은 옛 라틴어 성가 속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루터는 그 곡을 약간 손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찬송가에 실려 있는 것은 루터가 다듬은 곡을 바흐가 편곡한 것이다.  H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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