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이웃의 친구, 故 매혜란 선교사

[ 아름다운세상 ] 9월 18일 향년 96세 별세, 일신기독병원 설립 등 평생 한국사랑 실천

신동하 기자 sdh@pckworld.com
2009년 10월 16일(금) 16:31
   
▲ 한국 무의촌지역을 돌며 의료선교하는 매혜란 선교사.(1976년 추정)/ 사진제공 일신기독병원
부산 일신기독병원의 설립자인 매혜란(헬렌 맥켄지) 선교사가 9월 18일 오후 6시 45분(한국 시각) 향년 9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매혜란 선교사는 한국과 호주 선교 1백20주년을 맞아 본교단 94회 총회에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호주 멜번 소재의 한 양로원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오랜만의 한국 방문을 손꼽아 기다리던 연로한 여종은 임종 순간에도 한국과 한국인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바라는 것은... 앞으로도 계속 돈 없이 병원에 들어오는 환자가 있다면 도와주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사랑 정신으로 이 사업(편집자 주-의료선교) 계속하시기를 바랍니다." 유족들은 매혜란 선교사가 유언을 남기면서 한국에서의 사역을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고 전했다.
 
매혜란 선교사는 한국에서 나환자들을 보살피고 수많은 교회를 개척했던 아버지 매견시(존 맥켄지) 목사의 대를 이어 동생 매혜영(캐서린 맥켄지, 2005년 별세) 선교사와 함께 한국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돌봐왔다.
 
호주인이지만 부산 출생인 매혜란 선교사는 평양외고 졸업 후 호주로 건너가 의과대학(산부인과)을 수료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1950년대 초 당시 의료환경이 열악했던 한국에서 의료선교를 펼치려는 생각이었다. 동생 매혜영 선교사도 조산 간호사로 의료선교에 동참했다.
 
1952년 9월 17일이었다. 부산진교회 유치원 건물에 침대 10개를 설치하고 일신부인병원(일신기독병원 전신)의 문을 열었다. 그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전쟁통에 변변한 치료도 받지 못하던 수많은 전쟁 고아와 산모들은 새 삶을 살게됐고, 병원은 이후 발전을 거듭하며 국내 최고의 산부인과 전문병원으로 발돋움 하는 등 창대한 결과를 낳았다.
 
매혜란 선교사와 50년 선교 동역자인 변조은(존 브라운) 목사는 "소외된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 자매의 소망이었다"면서, "타종교인과 가난한 자들을 절대 차별하지 않았으며, 의술에 있어서도 소홀함을 두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랬다. 매혜란 선교사는 '돈 없는 사람을 우선 돌봐야 한다'와 '돈이 많거나 지인들의 소개라 해서 특혜를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선교 철학을 가졌던 것으로 지인들은 전하고 있다.
 
제자인 일신기독병원 전정희 총동문회장은 "제자들에게 '소외된 사람을 내 가족같이 돌보며 불의에 타협하지 말고 공과사를 분명히 하라'는 조언을 자주 하셨다"고 추억을 회상했다.
 
특히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배인 것은 유명하다. 더운 여름은 부채질로 참아내고, 변변한 나들이 옷조차 없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호주 귀국 무렵 병원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아 전해 준 위로금은 일생 유일의 목돈이었지만 이마저도 전액 병원 발전기금으로 내놨다.
 
특유의 소박한 삶은 아직도 제자들과 지인들 사이에서 회자되며 정신적 계승이 이뤄지고 있다. 선조의 선교정신을 이어받아 믿음의 본을 보이며 명예보다는 고결한 삶을 선택한 것을 말이다.
 
매혜란 선교사는 1972년 병원 설립 20주년을 맞아 운영권을 한국인에게 모두 일임하고 호주로 귀국한 후 신학을 공부하며 소박하게 남은 여생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로 귀국할 때도 조그만 가방 하나가 20여 년 한국 생활을 정리하는 짐의 전부였다고 유족들은 전했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외국인. 매혜란 선교사는 한국에서의 사역을 물어보는 이들에게 늘 한결같은 답을 했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가장을 잃고 눈물을 흘리던 산모들이 생각납니다. 그들이 아기 잘 낳고 안죽고 살아나니 얼마나 감사했는지요. 저는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봉사와 박애의 정신을 전하며 만족감을 얻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답니다."

   
▲ 매혜란 선교사의 한국 추모식에서 조문하고 있는 변조은목사와 조성기목사.

*매혜란 선교사 추모식
매혜란 선교사의 장례예식은 10월 9일 오후 1시(한국 시각) 호주 멜번 딥딘교회에서 열렸다.
 
동생 가족 등 유족들이 한국과 호주 연합예식을 제안해 다소 늦게 거행됐다. 한국에서는 조문단으로 증경총회장 박종순목사(충신교회)를 비롯해 총회장 지용수목사(양곡교회)와 부총회장 김정서목사(제주영락교회), 사무총장 조성기목사 등 총회 임원과 일신기독병원 이사장 인명진목사(갈릴리교회), 부산지역 노회장단, 정인규목사(일신기독병원 원목) 등이 참석해 의료선교에 헌신한 고인의 뜻을 기렸다.
 
매혜란 선교사는 예식 후 호주 멜번 소재 포우크너 묘원에 안장됐다. 아버지 매견시 목사와 어머니 메리 제인 맥켄지 선교사, 동생 매혜영 선교사 등 먼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가족들 곁으로 묘가 마련이 됐다. 

이와는 별도로 한국에서는 9월 25일 일신기독병원 맥켄지홀에서 지인들과 병원 직원 1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예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본교단 제94회 총회 참석 차 한국을 찾은 호주연합교회 총회 임원들이 동참해 슬픔을 같이하고 위로했다.
 
인명진목사의 집례로 열린 추모식에서 변조은목사는 설교를 통해 "매혜란 선교사는 기독교인들이 지켜야 할 삶의 방향을 알려줬다"면서, "그는 진정 예수 그리스도가 파송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 정부는 매혜란 선교사의 선교 공헌을 인정해 국민훈장을 추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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