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난 공동체의 기쁨을 위한 실천'

[ 연재 ] 제 94회 총회 주제 해설<요약> 2. 인식론의 흐름에서 살펴본 기독교윤리적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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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15일(목) 11:06
곽 재 욱 / 동막교회 목사ㆍ총회 주제연구위원

로고스(logos)와 파토스(pathos), 그리고 에토스(ethos)는 설득의 3요소이다. 설득에는 추종과 동원, 헌신이 뒤따른다. 그 가운데 정념, 충동, 정열 등으로 번역되는 파토스는 이성, 원리, 말씀을 의미하는 로고스와 반대적인 설득을 시도한다. 파토스는 종종 이성의 명령에 반항하기 때문에 스토아학파에서는 그것을 질병으로 규정하였다. 파토스는 '받다'라는 뜻의 헬라어 '파스케인'(paschein)에서 파생된 말로 수동적 의미가 강한 반면, 로고스는 '줍다' 혹은 '말하다'는 뜻의 '레게인(legein)'을 어원으로 가지는 능동적 의미의 설득이다. 로고스는 미지를 추적해나가는 것이고 파토스는 나를 향해 닥쳐오는 것이다. 인간 존재는 수납의 축적일까 아니면 지출의 성취일까? 시간과 조건의 산물일까, 아니면 창의와 추구의 구현일까?

2천년의 교회사와 신학을 통하여서만 본다면, 로고스가 우선이었고 우위였다 하겠다. 그리스도의 양성론으로부터 발론하는 삼위일체론 자체가 로고스적 냄새가 물씬한데다 20세기의 교부 칼 바르트의 '말씀의 신학'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의 로고스에의 집착은 상당히 강하다. 이러한 로고스 기울기의 신앙에 대한 파토스로의 전환과 역전은 현대 기독교 교회와 신학의 한 중요한 특징이요 뚜렷한 흐름이다. 그 선포는 로고스의 한계와 그로 인한 병리의 치유가 시급함의 공감대가 지역과 교파를 초월하여 형성되고 있다. 로고스의 무감각과 탈공동체적인 난점으로 부터의 해방의 욕구가 비등점을 향하여 끓어오르고 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제 94회 총회는 파토스적 의미가 다분한 주제와 실천 방향을 설정했다. 그것은 논단의 사변에서 가슴의 감성으로, 전문가의 연구실 안에서의 사색에서 공동체의 삶의 실천으로의 인식적 반성과 방향적 전환을 꾀하는 획기적 주제라고 하겠다. 총회의 주제는 파토스적 설득이 먹혀 들어가는 오늘의 시대와 문화, 교회와 신앙의 흐름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고 보겠다. 그러면서도 교회의 전통적인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의 낯설고 두려운 느낌이 아니라 아름다움의 미학을 함축한 파토스라고 하겠다.

파토스는 종종 주관주의와 신비주의에 빠지는 위험이 있다. 총회의 주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이다. 미국 부흥운동가 조나단 에드워드를 위시한 기쁨에 관한 신앙적인 탐구들은 주로 믿음의 사람들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주의 자녀들이 느끼는 기쁨과 그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감정의 주체에 관한 차이는 구분될 필요가 있다.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나는 그 분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만 한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정서적으로 무언가 부족하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결핍된 존재라는 의미인가? 하나님의 기쁨은 존재의 양태이다. 하나님의 존재가 포함하고 있는 정서가 기쁨이다. 이 기쁨은 그러므로 하나님의 존재와 구분되거나 이차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로고스와 파토스의 한계와 대립은 에토스로 극복될 수 있다. 하나님은 존재와 정서가 구분되지 않는 것과 같이 그의 존재와 행동이 구분되지 않는다. 에토스는 로고스와 파토스를 묶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는 기쁨과 구분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행동과 구분될 수 없다. 로고스, 하나님의 말씀, 로고스는 파토스와 구분될 수 없고 에토스와도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에토스는 로고스와 파토스를 이간하지 않고 중매한다.

그것을 구현하시는 에토스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의 에토스는 파토스 중심주의의 신앙적, 도덕적 무정부 상태에 대한 바른 대안이다.

또한 에토스에 대한 현대의 더 진전된 연구는 그것이 문화행위와 그 행위의 배후에 있는 동기의 정서적 성질이나 사회 단위 안에 있는 일련의 가치들 간의 관계를 나타낸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중심단어는 '정서'와 '관계'이다. 에토스는 파토스와 정서를 공유하고 로고스의 단위를 개인에서 공동체의 관계로 확장한다. 

에토스는 문화의 도덕적, 미학적, 평가적 측면과 인식적, 경험적 측면의 관계이다. 에토스는 로고스의 직설법에 정서의 생기를 더하고 파토스의 온도에 행동의 운동력을 더한다.

에토스 안에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공동체 안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로고스와 파토스는 에토스의 세례를 받음으로 개인주의를 넘어 공동체로 확장될 수 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의 주제는 그 로고스와 파토스와 함께 에토스를 함축하고 선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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