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5~10일

[ 가정예배 ]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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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9월 29일(화) 15:21

월-본향을 향하여
본문: 히 11:13-16
찬송가: 235장(구 222장)

인간은 누구나 다 마음 속에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특별히 우리 민족은 고향에 대한 정서가 남달리 큰 민족이다.
 
고향은 우리가 태어나서 자란 어린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마음 한 구석에 살아 숨쉬는 곳이다. 고향은 한 걸음에 뛰어가 안기고 싶은 어머니의 따스한 품과도 같다. 고향은 잊혀지지 않는 안식처와 같으며 객지생활에 지친 육신을 이끌고 가서 편히 쉬고 싶은 곳이다. 고향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늘 가슴 마음 한 구석에 그리움으로 남아있는 곳이다. 그래서 세상 살다가 괴롭고 힘들고 지칠수록 더욱 더 생각나고 그리워지는 곳이다.
 
마음 속에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왜 생기는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인간에게 심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고향인 천국을 찾아가도록 인도하고 계신다.
 
그러면 궁극적으로 우리 인간이 찾아가야 할 영원한 고향은 어디일까?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히 11:16)." 우리의 본향은 이 세상과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더 나은 본향이며 하늘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눈에 안 보이는 하늘나라 본향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았다. 아브라함은 오직 영원한 본향인 하늘나라 천국만 바라보고 일생을 나그네처럼 장막에서 산 것이다.
 
여러분의 인생 목적지는 어디인가? 우리 모든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살다가 영원한 본향인 하늘나라 천국에 기쁨으로 갈 수 있기를 축원한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영원한 고향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 천국임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의 고향을 떠나게 되는 그 날, 영원한 본향 하늘나라 천국에서 함께 다시 만날 수 있는 소망을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 득 섭 목사
늘사랑교회 시무



화-자존감을 회복하자
본문: 렘 1:4-10
찬송가: 310장(구 410장)

자존감(self-esteem)은 자아존중 또는 자기존경(self-respect)과 같다. 즉 자기 자신을 스스로 가치 있고 능력 있는 존재로 인식하는 것을 뜻한다.
 
예레미야는 제사장 힐기야의 후손으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율법으로 교육을 받았고 부모님과 주위로부터 나라와 동족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많은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부끄러워하고 슬퍼하기까지 했다. 예레미야 자신의 낮아진 자존감이 스스로를 '작은 아이'로 여길 만큼 심한 열등감에 빠뜨렸다. 이러한 낮아진 자존감은 자신의 가치를 무시하게 만든다. 사탄은 우리의 낮아진 자존감으로 항상 의심하고 낙심케 하고 절망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를 인생의 패배자가 되게 만든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예레미야에게 "아니다. 너는 아이가 아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지 그대로 전하라"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예레미야의 낮은 자존감을 회복시키시고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삼으셨던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의 인생을 통해서도 위대한 일을 펼치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외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 딸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높이고 자신있게 살아야 한다.

낮아진 자존감 때문에 사람들을 두려워하거나 환경 때문에 좌절하지 말고,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하여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기를 기원하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에게 귀한 직분을 맡겨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자존감을 잃고 주님의 부르심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시켜 주시고,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일꾼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문 성 욱 목사
일산명성교회 시무


수-열매를 찾으시는 주님
본문: 마 21:18-21
찬송가: 591장(구 310장)

 한 해에 가장 풍성한 시기가 지금일 것이다. 그러나 추수할 열매가 없다면 이 계절은 오히려 탄식의 계절이 되지 않을까? 
 
본문에 등장하는 무화과나무는 관상수나 재목으로 쓸 수 있는 나무가 아니다. 오직 열매를 위한 나무다. 이 무화과나무는 큰 수고를 하지 않아도 잘 자라고 열매도 많이 맺어서 사람들이 길가에 심어 두고 지나다가 시장할 때면 이 열매를 따먹는다고 한다. 그러나 주님은 기대했던 무화과나무에서 아무런 열매를 얻지 못하자 실망하시고 이 나무에게 저주를 하셨다.
 
혹자는 결실기도 아닌데 열매를 찾은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상태를 진단하는 교훈을 이 무화과나무를 통해 하신 것이다. 본문의 무화과나무는 잎이 무성했다. 그러므로 그곳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혹시나 열매가 있을까 하며 기대를 하였다. 그러나 막상 가까이 가보니 열매가 없었다. "잎은 무성한데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 그것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상태였다. 그들은 절기마다 풍성한 제물을 바치며 제사를 드렸다. 종교지도자들은 가장 거룩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갔다. 그러나 그들에게 열매가 없었다.
 
지금 우리들의 영적인 상태는 어떠한가? 신앙생활이 건강하여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있나? 아니면 열매 없이 잎사귀만 무성한 것을 가지고 스스로 위로하고 있지는 않나? 주님은 열매를 찾으신다. 식탁에 놓인 온갖 풍성한 과일이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듯 우리의 삶에서 맺는 열매를 통해 우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 신앙인이 되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풍성한 추수의 계절을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가 주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 석 우 목사
성도교회 시무


목-오직 은혜로 살자
본문: 롬 3:23-24
찬송가: 301장(구 460장)

신앙생활을 하면서 '은혜'라는 말을 수없이 듣고 말하며 산다.
 
"오늘 은혜받았습니다." "은혜로 살지요?" "제가 하는 게 무엇이 있습니까? 모든게 은혜지요"라고 말한다. 은혜처럼 좋은 말이 있을까? 내가 이룰 수도, 얻을 수도 없는 것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영원한 멸망의 자녀가 은혜로 죄 사유함과 영원히 사는 천국을 부여 받았으니 은혜 중에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다윗이 베푼 은혜, 주님의 대적자인 바울에게 베푸신 주님의 은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용서하신 은혜 뿐 아니라 생각해보면 나 자신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자녀가 된 은혜가 너무 감사하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천국의 백성이 되고 구원받은 것이 나의 수고와 헌신으로 가능하다면 무엇이 은혜가 되겠는가? 그것은 당연한 대가이기에 은혜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나는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죄의 은혜로 값도 없이 의롭다 하셨다. 오직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 성도가 되었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이 시간 나의 현주소와 존재 인식을 갖고 주님의 은혜 속에서 잃어버렸던 믿음의 삶을 새롭게 회복하자. 그래서 언약하신 풍성한 축복을 받아 누리며 살자.
 
아직도 내가 무엇을 이루지도 못했으면서 마치 다 내가 한 것처럼 자만하며 산다면, 즉시 회개하고 주님이 이뤄주신 십자가 속죄의 은혜를 가슴에 새기며 일평생 잊지 말자. 그리고 우리 가정에게 주신 주님의 은혜를 회복하고 풍성하고도 넘치는 은혜의 복이 오늘도 함께 하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이 시간 주님이 베푸신 은혜의 복을 되찾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은혜의 강수에 젖어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 용 섭 목사
완도주사랑교회 시무


금-믿음 성장의 원리(1)-벗어버리리라
본문: 히 12:1-3
찬송가: 359장(구 401장)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모두 믿음이 성장하기를 원한다. 큰 믿음을 가지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기도가 응답되는 능력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믿음이 성장하는 원리에 대해 계속 함께 나누고자 한다.
 
믿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것을 벗어 버려야 한다. 달리기 선수로 나온 사람이 멋진 정장에 액세서리를 몸에 달고 뛴다면 어떨까? 잘 뛸 수가 없을 것이다. 이기기 위해 뛴다면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것들은 벗어 던져야 한다. 우리가 믿음의 길을 달리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믿기로 결단할 때 믿음이 성장할 수 있다.
 
벗어 버리면 집중할 수 있다. 우리는 믿음을 완전하게 만드시는 예수 그리스도만 집중해서 바라봐야 한다. 우리의 시선이 분산되어 이곳저곳을 바라보다가는 넘어지기 쉽다. 우리 눈은 그리스도께로 고정되어야 한다. 우리 시선을 빼앗는 걱정과 유혹, 헛된 기대와 욕망을 벗어버리고 예수를 바라보자.
 
또한 믿을 때 당하는 부끄러움을 개의치 말아야 한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바라보고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참으셨다. 그리고 마침내 그 보좌에 앉으셨다.
 
세상 사람들의 편견과 오해, 조롱에 붙들리지 말자. 차라리 예수님처럼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둘러 지위와 평판에 개의치 말자. 얽매이기 쉬운 것을 벗어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기쁘게 하자. 이 결단이 우리의 믿음을 성장케 한다.

오늘의 기도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저희에게 큰 믿음을 주시옵소서. 믿음의 길을 달리기 위해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벗어버리게 도와 주시옵소서. 오직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달려가게 하시고, 믿을 때 당하는 부끄러움에 개의치 않고 하나님께서만 기쁘시게 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황 영 태 목사
안동교회 시무


토-영화묵상
본문: 시 23
찬송가: 570장(구 453장)

가정예배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영화를 한 편 골라서 가족이 함께 보는 것은 어떨까? 영화 한 편이 기독교 영성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영화 속에 뿌려 놓은 하나님의 씨앗들을 찾아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가져보자.
 
켄 가이어는 영화묵상에서 "가장 뜻밖의 장소에서 듣는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표현했다.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영화보기를 시도하기에 좋은 작품으로 이정향감독의 '집으로'를 들 수 있다. 영화는 말 못하는 외할머니와 철없는 손자 상우의 기이한 동거로 시작된다. 손자가 힘들게 할 때마다 외할머니는 손으로 가슴에 원을 그리며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 상우는 서서히 변화되어 외할머니 집을 떠날때는 작은 손으로 가슴에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미안함을 표현한다. 이러한 좋은 영화를 통해 우리의 영혼은 영화치료(Cinema Therapy) 효과를 경험하게 된다.
 
본문은 시편의 진주와 같다. 시인의 질곡된 삶에서도 전원적인 시적 감흥을 물씬 풍기는 정갈한 시다.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것은 새 아침의 식탁교제다. 성도의 하룻길 인생에서 필요한 것은 풍성한 영혼의 채움이다. 이제 출발하여 치열한 삶의 장에서 살아간다. 바로 정오의 인생이다. 하지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만나는 중년의 위기가 온다. 관계 건강 가족 경제의 위기가 찾아온다. 하지만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 말씀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보호하신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여호와를 나의 목자로 삼는 것이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목자 삼아 살아가고 있는가?

오늘의 기도

목자되신 하나님. 삶이 무겁고 버거워 주저앉을 때 말씀의 지팡이로 세워주십시오. 영원한 아버지집이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장 헌 권 목사
서정교회 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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