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칼럼/ 조화로운 사랑이 아름답다

[ 논설위원 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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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9월 21일(월) 19:04

김동문 / 목사ㆍ전주 완산교회


디히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년)는 요절한 독일의 신학자요, 목회자다. 후대 사람들은 그가 10년만 더 살았어도 세계 신학계의 동향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애석해한다. 그는 히틀러 암살 음모에 가담하였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2차 세계대전 종전 몇 달을 앞두고 처형되었다. "목사로서 원수까지 사랑해야 할 사람이 살인을 모의하다니 될법한 일이냐?" 고 따져 묻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버스 운전사가 손님이 가득 탄 버스를 몰고 인도로 뛰어들었습니다. 버스에 탄 손님은 물론 인도 위를 지나가던 사람들을 마구 다치게 했습니다. 그러면 누구라도 그 운전사로부터 핸들을 빼앗고 그를 운전석에서 끌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히틀러라는 미친 운전사를 운전석에서 끌어냄으로써 그와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려 했을 뿐입니다."

본회퍼가 이렇게 말하기까지는 그의 역사적 삶의 배경이 있다. 그의 조국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 본회퍼가 8살 때)에서 참패한 후에 깊은 절망과 혼돈 속에 있었다. 경제는 도탄에 빠져 실업자 수는 급증하였고, 세계 제일의 우수한 백성임을 자랑하던 민족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패전국으로서 짊어져야 할 채무를 감당할 길이 없었다. 국론은 사분오열되어 국론통일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메시아처럼 희망을 약속하며 권력을 손에 잡은 이가 바로 '아돌프 히틀러'였다(1933년). 그는 독일 국민들의 기대에 걸맞게 집권 2년 만에 6백만 명의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주었다. 땅에 떨어진 독일 민족의 자존심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국민들의 정서를 통합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독일 국민들이 그에 대해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자 그는 인류 역사에 없던 끔찍한 범죄행위를 저질렀다.

그는 급기야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을 일으켰고, 그 결과 6백80만 명이나 되는 독일 국민들을 전쟁터에서 죽게 만들었다. 여기에다 6백만 명의 유대인들을 강제 수용하여 노동을 시키고 고문하다가 가스실과 교수대에서 모두 처형시켰다. 히틀러의 허황된 망상은 독일 국민들 뿐만 아니라 평화로운 이웃 나라들까지 전쟁의 구렁텅이로 끌어들였다. 그로 인해 구소련에서는 2천만 명의 젊은이가 전사했고, 전체 사망자 수는 부상자를 제외하고 5천7백만 명이나 되었다.

이 때 미국 유니온 신학대학에서 교수로 봉직하면서 미국 각지를 돌며 순회강연을 하던 본회퍼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기 위해서 고국으로 돌아왔다. 조국과 그리스도인들이 독재 아래 신음하고 있는 것을 외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를 아끼는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귀국 길에 오른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히틀러 총통의 암살 음모에 가담했다. 그러나 그가 참여한 암살 음모는 교활한 비밀경찰의 정보망에 포착되었고, 그는 1943년 4월 5일에 프로이센부르그의 포로수용소에서 처형당하고 말았다. 이 때 그의 나이는 불과 39살이었다. 그는 진실로 사랑이 무엇인지를 삶으로 보여준 사람이다.  

사랑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용납과 관용이다. 끝까지 수용하고, 바라고, 기다리고, 참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그러나 또 하나의 얼굴은 기꺼이 악을 버리고 미워하는 것이다. 흔히 용납하고 관용하는 것만이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악을 미워하지 않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거나 온전한 사랑이 아니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 수염을 잡고 늘어지는 손자가 있다고 해 보자. 이 때 맹목적인 사랑을 가진 할아버지는 날마다 그 나쁜 행위를 참아낸다. 그러나 그 손자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할아버지는 따끔하게 혼을 내고 그 행위를 바로잡아 준다. 손자의 나쁜 행위에 대해 끝까지 관용하는 것은 참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 공동체에서도 마찬가지다. 교회의 평화를 깨뜨리는 자에게는 사랑의 징계가 필요하다. 악한 일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행위를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이것이 사랑이다. 국가 지도자에 대한 경우도 똑같다. 소통을 모르고 일방통행의 정치로 인해 우리 민족이 고통당한다면 우리는 직언을 해야 한다. 바로 잡아주어야 한다. 하나같이 찬양만 하고 있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우리 교계의 많은 영적 지도자들이 한 때 독재정권 앞에서 찬양 일변도의 자세를 취한 적이 있다. 이제 이 비극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는 우리 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우리가 진정으로 교회를 사랑한다면 악의 요소를 미워하고 과감히 버려야 한다. 교회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교회의 평화를 깨뜨리거나 교회 성장의 걸림돌이 된다면 아무도 그 사랑을 믿어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교회를 섬기는 중에 나에게서 발견되는 거짓말과 험담, 비난, 술수, 시기, 게으름, 무책임, 악한 행실 등은 즉각 버려야 한다. 악의 요소를 미워하고 버리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얼굴은 조화가 이루어져야 아름답다. 이는 두 얼굴을 가진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사랑의 두 얼굴에는 조화가 있어야 아름다운 열매를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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