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예식'

[ 논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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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9월 16일(수) 15:16

고세진/목사ㆍ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총장

야훼께서 사람을 야훼의 형상대로 만드신 이유는 무엇일까? 같이 교제하려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형상이 같으니 교제할 수 있지만 아버지와 개는 교제할 수 없다. 어떠한 교제인가?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예배를 통한 교제이다. 에덴 정원에서 나온 인간들은 두 갈래(카인식 예배와 아벨식 예배)로 예배하였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예배)는 받으시고 카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다. 왜 그러셨을까? 이런 저런 학설이 많지만, 사실 정답은 성경본문에 있다. "카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카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셨다(창 4:3~5)". 히브리어 원문에는, 카인은 땅에서 얻은 '과일들' 중에서 얼마를 야훼께 드렸고, 아벨은 '그의 짐승 떼에서 가장 좋은 맏물과 기름(젖)'을 드렸다고 한다. 필자가 '맏물'이라고 번역한 것은 일반적으로 처음 낳은 새끼라는 뜻이긴 하나, 여러 가지 셈족어들을 비교한 연구를 보면, '이른 것'이란 뜻도 있다고 할 수 있다. '기름'은 일반적으로 지방(脂肪)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짐승의 젖(milk)'일 가능성도 있다.

필자는 아벨이 하나님께 '가장 좋은 어린 새끼들과 기름을 드렸다'고 생각한다. 첫 새끼가 아니라 '어린 새끼', 즉, 생후 1년이 되지 아니한 새끼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들을 드렸다고 본다. 왜냐하면, 처음 낳은 새끼라고 하더라도 모양이 잘못된 것이나 흠이 있으면 안된다. 또한 어미 양이 두 번째 낳은 새끼는 제물이 될 수 없는 것이라고 성경에 금한 증거가 없다. 성경에는 흠 없는 1년 된 짐승을 바치라고 하였다(민 7:23, 51; 겔 46:13; 출 12:5, 등). 즉, 생후 1년 이내 된 새끼들 중에서 몸에나 행동에나 이상 징후(흠)가 없는 것을 바쳤다는 말이다.

필자가 청춘을 바쳐서 오랫동안 성지에서 고고학 발굴을 하고 얻은 결론은 고대 성지에서 제물로 바쳐진 짐승들의 잔해는 그 짐승들이 1년 이내의 어린 것들이었음을 시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벨의 제사는 정성껏 최선을 다하여 드린 예배(禮拜)이었고 카인의 제사는 예식(禮式)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카인의 의도가 나빴다고 할 수는 없으며 그의 생각도 하나님을 향하여 고상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식 정도로는 기뻐하실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배를 원하시고 예식을 원하지 않으신다. 예배는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야훼를 사랑하라(신 6:5; 마 22:37)"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요 4:24)"는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예식을 예배로 하나님께 드렸으며, 하나님은 그 얼마나 많은 예식들을 기피하셨을까? '○○○목사 박사학위 취득 감사예배', '○○축하 예배', '○○○고희 감사 예배', '고별(장례) 예배', '결혼예배', 기타 수도 없이 많은 인간 중심적인 예식들을 '예배'라는 이름으로 드린 것을 하나님은 다 받으셨을까? 팔짱끼고 구경만 하셨을까?

예배는 사람이 구부려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는 행위이다. 예식은 사람을 위한 모임이다.

예식을 예식이라고 정직하게 해도 될 일을 '예배'라고 하는 카인의 전철을 밟지 말자. 꼭 예식을 예배로 하고 싶으면, 예배 먼저 드리고 이어서 예식을 하면 좋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예식을 예배라고 하여 하나님을 예배와 예식 사이에서 방황하시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참 진행되고 있는 한국기독교의 세속화에 브레이크를 거는 길은 아벨처럼 온 정성을 다하여 예배를 예배답게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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